다시 이력서를 쓰다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by 멍든새

어제 오랜만에 이력서를 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한동안 기분이 가라앉았다. 선택받는 입장이 되는 건 늘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내가 했던 일들을 쭉 적어보며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방송작가가 되고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다른 직업을 택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매번 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힘든 일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만큼의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마음이 크다. 직업이 아니라 재주가 된다면 글쓰기를 취미로 즐길 수도 있었을 거다.

방송작가로 직업병이 생긴 걸 체감하는 순간 다시 한번 싫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 타임테이블을 짜는 내 모습을 보았다. 효율적인 이동경로를 고민하고 찾아본 장소가 별로일 경우를 대비해 2안, 3안을 준비했다. 여행이 즐겁지 않고 업무처럼 느껴졌다.

또 TV를 볼 때에도 “와~ 너무 재밌다!”는 생각보다는 “저 사람은 어떻게 섭외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본일까? 준비하느라 힘들었겠다. 며칠 전까지 투표받던데 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까?” 일을 쉰 지 5년 가까이 됐는데도 방송이 그냥 재미로 보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PD인 남편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내가 방송작가면 이해를 잘해주겠네요. 방송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니까.” 너무 잘 알기에 일을 효율적으로 못 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신혼 초에는 자신을 후배처럼 대하는 것 같다며 자주 다투었다. 이젠 가끔 자막도 도와주고 아이디어도 줘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일 후회했던 순간은 내가 방송작가를 한다는 이유로 내 주변 사람들이 피해받는다고 느꼈을 때였다. 5개월 이상 되는 기획기간 동안 돈을 한 푼도 받지 못 한 적 있다. 그때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에 믿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획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지금처럼 대나무숲이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간 부족한 생활비와 월세를 부모님께 빌렸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작사 대표가 돈을 안 주는데 다른 선배는 노동청에 신고해서 소송도 했대. 그런데도 못 받는대. 어쩔 수가 없어.”라고 부모님께 말했다.

방송국이란 세계를 내가 말한 대로만 알고 있는 부모님은 이 바닥이 모두 그런 건 줄,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있다. 노조가 있는 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화를 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방송작가가 되기로 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이력서를 쓰긴 썼지만 연락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렸을 때 추억이 되면 좋겠다. 누구나 휘청이는 시기가 있고 갈팡질팡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될 사람은 된다. “내가 그때 사진도 없이 이력서를 냈잖아.”라고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