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집에서 놀다가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면접은 보지 않았지만 믿을만한 사람의 소개로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 투입되었다. 아니, 대체되었다. 평소 애청하던 프로그램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했는데 알고 보니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작가들이 모두 그만두면서 당장 일손이 급한 상황이었다. 방송국에 프로그램은 많지만 작가들은 더 많았다. 내 자리도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으리라는 걸 느꼈다.
다른 선배들과 구내식당에서 어색하게 라면을 먹으며 첫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어색했지만 자연스레 서열과 역할을 나누었다. 막내였던 나는 자료조사, 장소 섭외, 소품 준비를 하는 역할 맡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대부분 메인 작가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촬영을 할 때엔 메인 작가의 옆에 붙어 뭐가 필요하거나 불편한 건 없는지 살폈다. 먼저 촬영할 장소에 달려가 세팅해 놓을 것, 메인 작가가 대답 없는 혼잣말을 하지 않도록 할 것,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을 것, 그게 내 업무였다. 그밖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섭외를 하거나 구성안을 쓰는 것도 아니었고 오타, 맞춤법 체크 역시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늘 일이 많았다. 오늘 회의를 하면 내일 회의에서 촬영 내용이 바뀌어 새벽까지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모레 아침부터 촬영을 하는 식의 날들이 이어졌다. 늘 잠이 부족했고 배고팠고 피곤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작가란 무엇인지’, ‘내가 작가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 걸까?’ 고민을 했다.
가족들과 연락도 못 하고 친구들에게는 바쁜 척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분명 바쁜데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촬영 중에는 내가 없어도 티가 날 것 같지 않았다. 한 번은 촬영 중에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왔는데 누구도 내 빈자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자괴감에 눈물이 났다.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얘기를 할 곳이 없었다.
드라마에서 ‘직장은 학교가 아니야!’라며 일을 배우면서 호되게 혼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내가 겪은 방송국 역시 그런 곳이었다. 다들 본인 일만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꼭 그렇게까지 삭막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최선을 다했던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만약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면 돈 주는 사람이 잘랐을 거다. 나는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했지만 꼭 필요했던 사람이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그립고 반가워진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꼭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