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과 운명 - 데미안의 가르침

헤르만 헤세가 이야기 한 것에 대한 고찰

by Blue Duck

예시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 앞에서 나비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나비를 그냥 지나쳐 갔다.


반면 뒤에 있던 사람은 그 나비를 보고 그물을 이용하여 잡았다.


나비가 지나간 것은 똑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물을 들고 있었고 심지어 그것을 그물을 휘두르는 행위를 통해서 채집을 했다.


만약 그 나비가 1000만원짜리 나비라면? 앞 사람은 한 몇 달 뒤에 그 사실을 깨닫고 굉장히 분해 할 것이다. 내가 잡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물이 없었고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한 자는 절대 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그물을 가진 인간은 왜 그물을 갖고 있었을까? 그 인간은 나비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비를 원했기 때문에 나비를 찾아다녔고 그물을 챙겨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인간이 원했기 때문에 나비가 다가왔을때 나비를 잡은 것이다. 그것에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비를 알아 보기 위해 훈련하고, 그물을 만들고, 그물을 들고 다니며 나비를 기다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나비를 과거의 어떤 시점에 원했던 사실 하나가 미래의 현실에서 나비를 채집했다는 물리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심성이 운명이다.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길 때, 시간의 누적과 합해져서 그것을 현실로 변화시킨다.


이때 나비는 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물은 준비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비같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비의 가치를 모르면 그냥 지나쳐가듯이, 어떤 잠자리라던지, 고양이라던지 수도 없는 운들이 있는 것 아닐까? 그런 것들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생각보다 삶에는 운이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수도 있다. 단지 우리가 못 보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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