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을 쫒는 것이 아닌,
이 세상에서 경험을 하고, 도전을 하고, 인내하며 뭔가를 하고, 칭찬을 받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구역질 나는 일을 겪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잘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하며, 수치심과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달 혹은 몇 년 단위로 자신의 같은 과거에 대해서도 평가가 달라진다.
좋은 때도 있다. 하지만 점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줄어들고, 알고보니 이전에 좋게 생각한 것들이 크게 가치가 있지 않은 것이었다는 깨달음이 늘어간다. 지금 힘들어서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생기면 반짝임을 쫒아보려고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 여유의 본질은 돈을 벌기 위한 부모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모아둔 돈이었다. 이제 자신이 그것을 할 차례가 되니,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그저 생존과 당장 눈 앞에 닥친 두려운 일을 피하기 위한 조급한 몸짓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모범과 안정을 택한 인간은 쾌락과 환상을 동경하기도 한다. 유흥과 카타르시스, 짜릿한 스릴과 명예를 쫒은 이들은 가정과 안정적 삶에 대한 갈구를 느낀다. 손에 쥔 것을 괄시하며, 없는 것을 동경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SNS는 그 현상을 가속시켰다. 쇼츠를 넘기면 오토바이를 타고 목숨줄 당기고 묘기를 부리고선 박수갈채를 받는 20대 남자, 그 다음 장면에서는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엄청난 근육을 뽐내며 인간 승리를 자랑한다. 이후에는 실제 전쟁 중 군인들이 참호 속에서 영상을 찍는 것이 나오고 댓글에서는 그것을 마치 유희처럼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영화 장면이 나오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
이제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도 알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도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며, 그것을 떠들고 거리로 나가 시위하는 이들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를 지도 모른다. 단지 인정 욕구와 돈 이 2가지만이 2000년 전부터 인간에게 중요했을 뿐이다.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온갖 매체들에서 쏟아지는 환상적인 간접 경험들은 보기만 해도 피로감이 든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바라면 저런 광고를 만들었을까? 얼마나 죄책감이 결여되었으면 저렇게 뻔뻔하게 틀릴 수 있을 말을 진리인 듯 떠들며 간절한 이들의 지갑에서 빼낸 돈을 수금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돈을 번다. 그래… 돈을 번다. 인정을 받기도 한다. 사실, 돈을 벌면 인정을 받기도 한다. 자신에게 평생 희생하며 먹이고 재워준 부모에게는 무시나 원망 따위를 던지고선, 평생 일면식도 없는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은 그저 돈을 잘 벌고, 뭔가 성공하는 것 같으니 편지나 메일 따위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최대치의 존경과 감사 등을 퍼붓는다.
인간이 열심히 살아왔는 지, 배우자 감인 지, 성실한 지, 대단한 지 등은 모아둔 돈의 수치로 결정되기도 하는 듯하다. 아니 그게 전부일지도… 25살에 1억을 모았으면 대단한 친구이고, 30살에 1000만원을 모았으면 천하의 몹쓸 불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보는 사람과 시대상, 마케팅적인 목적에 따라서 늘 다르다. 그런 사실들에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가치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라는 고민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는 매일 쇼츠를 5시간 씩 보는 무능하기 짝에 없는 사람같은데, 누군가가 부러워하거나 쌓아둔 학력이나 지식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에는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같고 기회만 주면 잘 할 것 같은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실적없는 사기꾼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묘한 점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 그러한 시기가 계속 번갈아가며 나타난다는 것이다.
언제는 이 나라의 관습과 한계, 인간 특성을 비판하며 자신은 그것을 초월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 주변에 호언장담한다. 그러다가 토익이나 대입 시험에 떨어지고선 그 관습과 관성을 칭송하며 그 안정적 구조에 들러붙으려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선 과거의 자신을 잊는다. 왜냐하면 한 인간 안에 그런 것들이 동시에 있으면 그 인간의 정신은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잊는 것이다. 이후에는 댓글 등에서 과거의 자신이 한 무모하며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이들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모두가 꿈을 동경하면서도, 그런 꿈을 가졌던 자신을 혐오하기도 한다. 당장 돈이 안되니까. 가슴 아픈 일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 돈이다. 돈은 많을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부족해지거나 더 나아가서 빚이 생기면 1,000원 하나 쓰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당장 과자 하나를 사는 일도 고민이 되는데, 돈이 될 지 안될 지 모르는 꿈을 붙잡고 있는 일은 고된 것이다. 그렇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서 돈이 모이고 나면, 또 꿈을 쫒기도 한다.
도전하는 이들에게서는 더욱 더 진한 피의 향기가 난다. 그 모든 모순에 부딛치면서도, 합리화는 최소화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하며 나아가려는 이들은 피투성이이며 아름답다. 아마 대부분이 그런 인간을 대단하다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다시 쫒아볼 미래를 위한 귀중한 표본일 수 있기에.
그렇지만 돈은 가혹한 법이다. 주거, 식사, 안정감이 결여된 삶에서는 생존이 최우선이 된다. 최소한 부모의 피투성이 희생을 연장하는 불효자는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그 몫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할 뿐이다. 타인의 희생에 언제까지고 의존하려 하는 개인의 삶에서는 분유 썩은내가 나기에, 반짝이지는 못할 지라도 남의 도움 없이 제 입에 풀칠은 하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