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주목받는 소재가 변한다. 우리나라가 IMF구제금융을 받은 1997년 이후 2000년대에는 구조조정의 시대적 상황에서 한창 활동해야 하는 나이대의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 등의 애환을 이야기하거나 이를 극복하는 내용의 에세이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2010년대에는 팍팍한 삶에서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내용의 에세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정은길, 다산3.0, 2015)는 가족과 조직을 위해 힘들게 버티며 열심히 일만 하는 회사원들에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노년 및 은퇴에 관한 테마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5년 이내에 출간된 에세이들을 살펴보자. 서점에 방문하여 매대에 전시된 책들을 훑어보면 자존감을 높이거나 회사생활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도 여전히 눈에 띈다. 하지만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은 다양한 테마의 에세이들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최근 관심이 모아지는 대표적인 테마들을 몇 개로 정리해 보면 첫 째 은퇴 및 노년과 관련된 에세이다. 물론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계기로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메시지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것이 상당히 오래전이어서 이전부터 관련 에세이가 많이 등장하였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0.7명 정도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은퇴와 노년에 관한 소재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유명 서점의 매대나 홈페이지에 은퇴나 노년과 관련된 주제를 따로 분리하여 운영하는 것을 보면 이런 동향을 알 수 있다. ‘예스24’는 <나이 듦에 대하여>, ‘교보문고’ <노년에세이>등의 명칭으로 분류하여 책을 판매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출간이 예정된 『60, 다시 쓰는 청춘 일기』(권부기, 미다스북스)의 목차를 훑어보면 “금은보화보다 값진 나잇값”이라며 자신감 있는 노년의 삶을 추켜세운다. 또 “배우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수다 떠는 여행 마니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등 은퇴 후에 찾아야 할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은퇴 소프트랜딩 - 나의 명예퇴직 성공기』(이상재, 부크크, 2022)는 명예퇴직을 준비하며 자신이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냈다는 평범함 외에 독특한 특징이 있다. 최근 책을 내고자 하는 예비 저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POD(Publish On Demand) 출판을 통해 나온 책이다. POD출판은 독자가 원하는 책을 필요한 양만큼 필요한 때에 제작하여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한 부씩 제작하니 출판사 입장에서도 재고의 부담이 없고 저자의 입장에서도 출간의 벽이 대폭 낮아져, 책의 디자인이나 질적인 열세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세이를 출간하려는 예비 작가들에게는 관심이 가는 수단인 것 같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에세이가 많아졌다.
두 번째 테마는 ‘반려동물’이다. 최근 급증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를 겨냥한 에세이가 부쩍 늘어났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연합뉴스TV, 2024. 10. 24.).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함께 늘어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 요즘 반려동물과 관련된 에세이가 늘어난 것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관련 에세이에 등장하는 반려동물의 대부분은 단연 개나 고양이와 관련된 것이다. 『안 자고 묘하니?』(주노, 모베리, 2024)는 인간이 잠든 밤에 고양이의 관점에서 관찰된 세상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는 반려동물과 공감하고자 하는 반려동물 보호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이토 히데노리 글, 김난주 역, 소담, 2024)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형성된 애착과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상실의 상황인 ‘펫 로스’를 포함한 에세이다. 이 책의 목차만 보아도 반련 동물의 죽음과 관련된 반려인의 심리를 세세히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하다 말고 통곡한 사진작가” 부분은, 내가 근무했던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울면서 ‘우리 집 ○○이가 저 세상으로 갔어요’하며 갑자기 휴가를 쓰겠다는 에피소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당시로서는 상사로서 어쩌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과 일상에 관한 에세이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셋 째는 여전히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에 등장하는 삶 또는 일상에 관한 에세이다. 최근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에세이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저, 김희정, 조현주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3)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이라는 테마가 에세이의 단골이며 지속적인 테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형의 사별로 인해 잘 나가던 뉴욕 잡지사를 그만두고, 단순한 일인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가족과의 이별은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형과의 사별이지만 실제 360쪽에 달하는 짧지 않은 분량의 대부분은 미술관에 근무하며 관찰한 것과 예술 작품에 관한 식견을 기술하고 있어서 이 에세이 역시 직업적인 일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삶과 일상에 관한 에세이들도 눈에 많이 띈다. 『어른의 기분 관리법』(손힘찬, 어센딩, 2024.), 『즐거운 어른』(이옥선, 이야기장수, 2024.),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것들』(방종우, 라의눈, 2024.),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김수현, 하이스트, 2022.) 등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힘듦이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어려움 등을 위로하고 극복해 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시기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에세이의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
더욱 다양하고 세분화된 소재가 에세이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에세이 동향을 살펴보았다. 사회·경제적으로 암울했던 2000년 즈음에는 직장인은 물론 모든 국민들의 힘겨운 삶에 관한 소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나’를 찾자는 소재가 에세이의 주요 테마가 되었던 2010년대를 거쳐 최근에는 소재가 점점 다양해지는 모양새이다. 가장 특징적인 현상으로 시대적인 흐름에 맞게 반려동물에 관한 에세이가 부쩍 늘어났다. 프로 스포츠단에 관한 덕질이 소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테마로 하는 등 에세이의 소재가 에세이의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SNS를 통한 특정 분야에 관련된 정보의 신속한 교류와 입수가 가능해진 것도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특성의 사회적 분위기라면 이동성이 보장된 모바일기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개인적인 취향을 즐기는 것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좀 더 사소해지고 세분화된 소재가 반영된 에세이가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여행을 소재로 할 경우에도 특별한 취향이 반영된 여행을 소재로 에세이를 써도 좋을 것이다. 또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바일 라이프를 소재로 에세이를 써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수도 없이 사용하거나 마주치는 사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상에 관한 관찰을 글로 옮겨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에세이는 다양해진 우리 삶과 사회가 투영된 다양한 소재가 상당한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