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감의 상대성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수박화채에 설탕 등의 단 것을 넣어 먹는데
일본에선 수박을 먹을 때 소금과 같이 먹는다고 한다.
소금의 짠맛이 수박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고대 문헌에도 나온다고 하니
나름 그네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겠다.
이 번엔 평생을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 속에서
살아 온 두 사람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한 명은 평생 태어난 고향에서 살아 왔지만 한 명은
여행을 통해 남극까지 가보고 얼마 전에 돌아왔다고 하자.
과연 두 사람이 느끼는 고향의 더위는 더 이상 같은 것일까?
필자는 20대 초반부터 만년필을 사용해 왔는데
최근 몇 년 간은 독일의 라미(LAMY)사의 만년필
두 자루를 주력으로 사용하였다.
장시간 필기구의 사용이 많은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라미의 가벼움이 맘에 들었었다.
당시 사용하던 라미 사파리는 금속촉인데
지금에 와서 분류하자면 금속성에서 오는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경성(硬性) 촉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에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로 받아
사용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라미의 금속촉 만년필과 같이 사용하는
몽블랑의 (백) 금 14K촉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이 두 종류의 만년필을 번갈아 사용했던 한 동안은
필기감에 다소 혼란을 느낄 정도로
두 만년필은 다른 필기감을 선사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라미는 여전히 주력으로 남았고 종이를 가리고
내 손에 조금 작은 몽블랑 만년필은
편지 쓸 때 가끔 쓰는 데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에 내 필기스타일에 맞는 만년필을 찾다가
최초로 목적성을 가지고 구입한
만년필이 펠리컨의 Souveran 600이다.
고시용 만년필이라고도 불리는 이 계열의 만년필은
알려진 대로 촉을 길들 이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부드럽게 잘 쓰여졌다.
당시 나의 느낌은
펠리컨의 필기감이 커피의 라테와 같다는 것이었다.
이 부드러운 펠리컨 만년필을 꽤 사용하다가
오랜만에 몽블랑을 다시 사용해 봤을 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기존에 라미의 촉에만 길들여져 있던 내가
부드럽게만 생각했던 몽블랑의 부드러운 연성촉이
,또 다른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펠리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에는,
이제 사각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작은 크기로 인해 장시간 필기는 못하지만
간단한 필기를 할 때 사용하는 몽블랑 촉의 사각거림을 나는 좋아한다.
기존에 라미의 경성촉에만 익숙해져 있을 때는
결코 구별해 내지 못했던 숨겨진 거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위에서 펠리컨의 필기감을 카페라떼로 비유했으니
커피에 대한 얘기를 하나 더 해보자.
여전히 커피에 대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20대까지의 필자는 더욱 문외한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커피를 꽤 좋아하고 여러 맛에 대한 경험이 있는
몇 지인들과의 교류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나의 커피에 대한 감각도 조금 개발되어졌다.
이 전에는 커피 회사나 커피 종류에 따른 맛의 구별을 잘 못했는데
여러 맛의 지속적인 경험과 지인들의 평을 반복적으로
듣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차차 여러 커피 및 같은 커피라도
회사나 원두가 다를 경우 차이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같은 회사의 같은 커피라도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질경우 사용되는 우유나 시럽 등의 첨가물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들도 구별이 되는 시점이 오기도 했다.
이 단락에서는 같은 경험일지라도 다른 경험을 통한
학습과 훈련에 의해 기존의 대상을 다르게 보거나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의 커피의 예에 더해 연필에 대한 경험도 하나 더 덧붙이도록 한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연필을 정말 꾸준히 사용해 왔다.
늘 두세 자루를 지니고 다니면서 쉬는 시간 틈틈이 칼로 손수 연필을 깎았다.
연필깎이로 깎으면 원하는 연필심 모양이 나오지 않아서이다.
이렇게 십 년 이상 애용해 온 연필이었건만
정작 연필심의 경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작 아는 거라면 미술시간에는 4B연필을 쓰는 정도였고
보통은 H나 HB정도의 연필을 사용해 왔다.
이것도 지금에 와서야 분류해보는 것이지
당시에는 심의경도에 대한 선호도 없이
그냥 문방구에서 선호하는 색깔과 가격의 연필을 샀던 것 같다.
이러한 연필도 경도에 따라 필기감이
제법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아마 연필뿐만 아니라 만년필이나 볼펜의 다양한 경험 등이
연필의 필기감을 구별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글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는 면이 있지만
연필의 재발견에 도움이 된
다른 필기구 사용의 예를 몇 가지 짤게 언급해 보겠다.
일단 만년필을 오래 사용하다가 가끔 연필을
잡으면서 느끼는 당혹감은
연필이 쥐기에 너무 가늘다는 것이다.
이 전의 만년필의 필기감에 대한 고찰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개개인의 손크기에 알맞은 필기구의 굵기가 있다고 본다.
굵기가 안 맞으면 필기의 피로가 많이 오게 마련이다.
또한 균형이라는 점도 중요한데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 역할의 재발견이다.
오른쪽 그림과 같은 지우개 및 지우개를 잡아주는
금속 부분의 무게는 필기 시 연필의 무게 중심을
약간 뒤쪽(지우게 달린 쪽)으로 향하게 하여
연필심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낮은 필압은 손에 부담을 덜 주고
좀 더 경쾌한 필기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좋은 만년필은 이런 균형(발란스)이 좋아
손에 부담을 적게 주고 필압을 적절히 줄여 주는 준다.
글이 좀 산만해진 듯한데 정리해 보겠다.
우선 수박 맛과 기후의 체험 등에서 절대적이지 않는
우리의 미각과 온도 습도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고
그 후에 만년필의 여러 경험을 통해 기존에 느끼고 있던
특정 만년필에 대한 감각이 절대적이지 않았던 것을
느꼈던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았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커피와 연필과 관련하여 감각이 확장된 경우도 덧붙여 보았다.
여러 경험에 의한 감각의 확장은 더 나가자면 주제는
무한정할 것이나 여기에서는 필기구에 한정하도록 하겠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필기구에 대한 감각은 앞 선 경험에서
비롯된 편협한 산물일 수도 있으니 성격이 다른
여러촉(촉의 재료와 굵기)과 여러 굵기와 균형을
가진 몸체를 가진 필기구를 경험하고 학습해 간다면
좀 더 다양한 필기구의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필기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 사람들이 소금과 수박을 같이 먹을 때
우리가 화채에 설탕을 뿌리는 것처럼 먹는 건 아니고
소금을 손으로 찍어서 맛을 좀 본 후에 수박을 먹었던 것 같다.
올 여름에 시도해 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