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리뷰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연 ㅣ 박혜수, 김시은
01.
꿈과 현실
세미는 하루 종일 하은이를 조른다. 함께 수학여행에 가서 놀자고. 둘이 캠코더를 팔아 번 돈으로 수학여행을 가려고 한다. 영화는 캠코더 중고거래를 하려는 두 여고생의 이야기처럼 평범하게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세미와 하은이는 즐겁기도, 화나기도, 슬프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는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를 너무나 좋아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매 순간이 재밌었다. 한마디만 하면 빵빵 터지고, 무슨 행동이든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땐 정말 몰랐다. 왜 어른들이 그때가 좋을 때다라고 말했는지, 이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립기도 하고 나의 친구들이 함께 생각나 세미와 하은이에게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었다. 어렴풋이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도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나이를 직접 겪어봤으니까. 그 시간의 친구들이 어땠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미는 하은에게 미안하다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천천히 세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떠한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일.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세미의 하루로 시작하는 꿈 이야기는 어느새 하은이에게로 넘어가고, 마지막엔 그게 하은이인지 세미인지. 너인지 나인지.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죽어있던 얼굴이 너였기도 하고, 엄마 아빠였기도 하고, 선생님이었기도 하고, 우리 반 애들이었기도 하고. 근데 그게 마지막엔 나였던 거 같아.라는 세미의 말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세미는 누워있던 그 표정이 결국엔 편안했다고 한다. 그들과 남겨진 자들 모두를 언급하면서, 편안이라는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남겨진 이들을 향한 위로이자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다짐이 아닐까.
엔딩 크레딧도 좋았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까만색 배경에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흰 글자들만 올라간다.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숨소리조차, 훌쩍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 적막 속에서 아마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 아무런 음악이 없는 것이 신선했고, 그 역시 이 영화에 맞는 완벽한 방식의 마무리라고 느껴졌다.
02.
강아지와 앵무새, 그리고 거울
세미와 하은의 하루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몇 가지 매개체를 두고 있다. 공원에서 주인을 잃은 강아지. 세미와 하은은 강아지의 주인을 찾아준다. 그 장면에서 주인은 강아지에게 '똘똘아, 이제 집에 가야지'하며 여러 번 부른다. 계속해서 우리가 외치던 소리 아닐까.
강아지를 찾아주면서 주인이 세미와 하은이에게 하는 말이 인상 깊었다.
'볕이 좋은 날이었는데, 내가 문을 열어뒀는지, 집에 오니까 사라져 있었어. 모든 게 그대로인데, 얘만 없었어.'. 조이가 사라졌던 세미의 꿈처럼. 세미를 잃은 하은이의 마음처럼. 모든 게 그대로인데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고요하고 평범하던 일상이, 너무나 그대로인 일상에 너만 없다는 것.
거울에 계속해서 비치는 세미의 모습. 연출이 너무 좋았다. 거울과 함께, 계속해서 흘러가지 않는 세미의 시간이 어렴풋 무언가를 짐작하게 한다. 모든 세미의 시간은 멈춰있다. 흐르지 않는다. 강아지 간식을 사러 간 세미가 연락이 안 되는 하은이를 찾을 때의 시간. 꿈에서 조이를 찾을 때의 시간. 아마 둘이 공원에서 놀다가 강아지 간식을 사러 가고 하루를 같이 보낸 것. 이 모든 게 기억이라는 느낌도 든다. 4-5번이나 거울이 비치며 보이던 세미의 모습. 거울 속에 존재하고 현실엔 없었던 것. 남겨진 하은이의 기억.
색깔이 변하지 않는 사과, 아무도 없는 교실 안, 혼자서 하교하는 버스 안. 테이블 끝에 반쯤 걸쳐진 유리컵. 하은이가 견뎌야 했던 것들. 견디고 있는 것들.
Q. 사랑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두 사람의 내면을 영상으로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영화는 표면을 보여줌으로써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 표면을 어떻게 간결하게 생생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를 좀 많이 표면적으로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소품에 가진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많이 집어넣으려고 했죠. 예를 들어서 사과는 변색이 잘 되는데 잘 안 되는 것으로 주문을 했거든요. 사과를 먹은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형태로 좀 세심하게 다루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출처 : SR타임스(http://www.srtimes.kr) 감독 인터뷰 中]
03.
빛이라는 꿈이자 기억
영화는 과하게 빛이라는 요소를 사용하여 씬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뿌옇게 보이는 거 아닌가 하고 했지만, 마지막엔 그렇게 연출한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내가 본 그 뿌옇고, 현실 같았지만 비현실적으로 너무나 즐거웠던 그 장면들이 모두 남겨진 하은이의 회상일지도 모른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모호했다. 확실히 꿈이 현실 같았고, 현실이 꿈이자 기억 같았다.
조현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에서 빛이 주는 질감이 중요했고, 또 꿈같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촬영감독에게 말씀드렸다. 저 개인적으로도 빛이 주는 느낌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의 형태가 빛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새벽에 깨면 공포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해가 나기 시작하면 그런 기분이 사라진다” [SR타임스(http://www.srtimes.kr) 감독 인터뷰 中]
00.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 말
사랑한다는 말. 더 해줄걸. 더 많이 해 줄걸. 더 미리 더 빨리 더 많이 더 자주. 흔하면서도 절대 쉽게 나오지 않는 말 아닐까. 마음이 아팠다. 이제서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헤어지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일까. 수학여행 다녀와서 보자며 정말로 간다며 마지막으로 손 흔들고 가는 세미는 참 행복한 얼굴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혼자 이어폰 줄을 풀던 하은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슬프다.
하루 종일 하은이에게 징징거리던 세미. 하은이는 화가 날 법도 한데 세미를 달래고 먼저 미안하다고까지 한다. 내 기준에선 한참 참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건 지구상에서 가장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를 알고 나니 그 아이들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어리고 미성숙한 마음이 자꾸만 세미와 하은이를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세미의 목소리로 여러 번 사랑해를 외치면 끝이 난다. 이는 세미만의 목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미리 건네지 못했던, 계속 건네고 싶을 말일 것이다. 그 말이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를 위로하듯,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또 살아갈 것이다. '너와 나'라는 작품에서 내가 무언가 얻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여기, 함께 있다.
하은이에게.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좋은 걸 보면 너랑 같이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너랑 같이 먹고 싶어.
이 편지를 보고 네가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마음도 나랑 같았으면 좋겠어.
좀 전에 자다가 깨어났는데 오늘은 너한테
꼭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항상 네가 보고 싶고 걱정돼.
수학여행 다녀와서 우리 꼭 맛있는 거 먹자.
세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