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영화 '미드 90'리뷰 포함) -1화

by 푸른


건축학과 5학년.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졸업전시를 위해 열심히 설계실에 붙어 있었다. 어디 가서 건축학과라고 하면 여전히 따라붙는 질문들이 있다. '건축학과면.. 남자가 많지 않아요?', '그럼 내 집 지어줄래?', '야 그거 막노동 아니야?'.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건축학과에 여자가 더 많은 학년도 많고요, 막노동 아니라 디자인하는 과입니다. 속으로는 푹푹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또 하나하나 반박하며 설명한다.

'건축학과는 그런 데가 아니고요.. 여자애들도 엄청 많고요. 막노동이 아니라 디자인을 하는 과에요.'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이러한 과정을 학교에 다니는 지난 6년간 숱하게 많이 겪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건축이 좋아진 걸까. 아니면 더 싫어진 걸까.


5학년 1학기 개강 날, 담당 교수님과의 첫 면담이 있었다. '그래.. 진로를 결정했니? 어디 취업할 거니?'. 이제 나도 취업을 걱정해야 할 졸업학년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휴학을 하고 돌아온 학교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위주로 했던 3, 4학년. 그리고 휴학을 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걱정도 없이 놀았던 직전의 1년. 멈췄던 지난 3년이 다시 움직이는 듯했다.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차 설계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여행, 사진, 글, 영화 등등 설계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 캐드를 들여다보고, 뚝딱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재능이 없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한창이던 나의 대학교 3, 4학년은 말 그대로 날로 먹은 시간이었다.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코로나의 여파로 각자의 집에서 설계를 진행하는 탓에 큰 성과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과제를 점점 더 대충 하게 되고, 의욕도 사라졌다.


모든 수업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건축의 역사나 담론, 이론 등을 배우는 것들은 꽤나 흥미로웠다. 설계 대신 다른 과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설계 이외에 것들에 관심을 가진 것이. 현대 건축론이나, 디자인론 등 건축의 이야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진로는 설계사무소에서 멀어졌다.


5학년이 된 시점, 교수님은 설계 사무소에 취업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설계는 절대 안 할 겁니다.'라고 개강 첫날 당당하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의 5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년 만에 제대로 된 설계를 한 후, 졸업 전시를 끝냈다.


전시 후, 주변의 친구들은 취업을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취업에 대해 고민했다. 여러 모집 공고를 찾아보던 중 눈에 띄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 바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설계 사무소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하나로 무작정 지원하기로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설계이기 때문에 '건축'이라는 분야에서 멀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건축을 다루지만 설계를 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미드 90 (2018)



연출 ㅣ 조나 힐

출연 ㅣ 서니 설직, 캐서린 워터스턴, 루카스 헤지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우리 모두의 끝내주는 VHS TAPE 이야기, 그리고 스케이트 보드


어느 비디오 테이프에서 재생되는 그들의 모습, 낡은 비디오 속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와 스케이트 보드가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하다. 1990년대 LA의 여름, 작은 소년 스티비의 자유롭고 뜨거운 날이 그렇게 시작된다.


무언가 하고 싶고, 좋아하게 되는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스티비의 눈에 스케이트 보드가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 후, 스티비는 점차 빨라지는 보드의 속력처럼 그의 마음의 크기도 빠르게 커진다. 보드에 빠져든 스티비는 밤낮 할 것 없이 길거리에서 보드를 탄다.


'그에게는 넘어져도 좋은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함께 일어서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 (나무위키 시놉시스 참고)


이 영화는 무언가 시작하는 설렘과, 그 과정에서 겪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는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보드를 열심히 타는 영화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방황하는 우리와 닮아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친구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아파진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사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밤낮 가리지 않고 하나에만 몰두하는 사람, 누군가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 그저 더 나쁜 것을 회피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전부 다른 이유로 각자의 길을 선택한 우리이지만, 그 속에서 나쁜 것들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함께 그것을 겪어나갈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겪은 시간이며, 모두가 겪고 있는 시간이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 이 영화와 함께 조금은 단단한 하루를 시작해 보자.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여름 한가운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