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영화 '레이디버드'리뷰 포함) -2화
*이어지는 형식의 글이다보니 이전의 글을 읽은 후, 이번 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lue-scene/15
인생처음으로 지원서를 낸 회사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건축 매거진 출판사였다. 아주 습하고 더운 수요일 아침이었다. 이틀 전인 월요일 오후, 이력서 마감 당일까지 고민을 했었다. 포트폴리오를 급하게 만들었다. 건축설계 관련된 포트폴리오만 만들어봤지, 다른 분야에 지원할 포트폴리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급하게 이전에 썼던 블로그 글들과 여행 사진을 긁어모았다. 그럴듯하게 매거진처럼 편집을 했다. 내가 설계한 작품들도 좀 더 보기 쉽도록 편집했다. 편집하면서 계속 의문점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선배들이나, 이전 포트폴리오 자료들을 모아보아도 전부 다 자신의 설계 위주의 포트폴리오들 뿐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가본 적도 없는 분야를, 어떠한 지표도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교수님들도 종종 나를 뜯어말리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설계를 해라. 그래야 잘 된다. 돈을 많이 번다. 실무는 다르니까 학교에서 못한다고 포기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건 절대 못하는 성격답게 교수님들의 말을 흘려들었다. 설계는 절대 못하겠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급하게 포트폴리오를 내고, 자기소개서를 첨부하였다. 이제 겨우 5학년 1학기를 끝마친, 설계를 못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 그런 학생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후인, 수요일 아침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당장 1주일 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9월에 바로 출근할 수 있겠냐는 질문과 함께.
그렇게 나는 5학년 2학기 개강과 동시에 첫 출근을 했다. 같은 학년 친구들 사이에서도 빨리 취업한 편이었고, 그 사실이 제법 자랑스럽기도 했다. 졸업까지 한 달에 두 번, 평일에 학교를 가는 조건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학교에선 취업계가 나오지 않아서, 수업에 출석하지 못하는 날은 전부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와 회사 두 군데 전부 다 나의 편의를 봐주기로 한 것이다.
학교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회사 눈치를 보는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들어간 회사에서의 일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시작이라면 정말 뭐라도 될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전부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건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관심 있었던 것들은 전부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취업 걱정을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들어주면서 솔직히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 중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겪어보지 못하면 모른다고, 그때는 내가 그런 기분을 영영 모를 줄만 알았다. 조금 거만했던 것 같다.
연출 ㅣ 그레타 거윅
출연 ㅣ 시얼샤 로넌, 로리 멧갈프
섀크라멘토에서 시작된, 섀크라멘토를 떠난, 하지만 결국 섀크라멘토인 것.
캘리포니아 작은 마을 섀크라멘토. 주인공 크리스틴은 이 작은 마을이 너무나 싫다. 어떻게든 벗어날 궁리를 하며 저항한다.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칭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그녀의 지루한 일상은 이따금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크리스틴의 어색하고, 서투른 어린 시절의 모습은 각자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끔찍이도 싫고 지겨웠던 동네. 매일 똑같은 풍경. 똑같은 사람. 반복되는 엄마의 잔소리. 변화 없는 시간.
크리스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방황하며 새로운 것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섀크라멘토를 벗어나게 된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면서 크리스틴은 마음 둘 곳도, 기댈 곳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도 섀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었어?
난 그랬어. 그 얘길 하고 싶었는데, 그땐 우리가 사이가 안 좋았지.
평생 지나다니던 그 길들. 가게랑 건물들이 정겨웠어. 엄마한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모든 이의 유년시절에게 보내는 이야기.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지겹도록 반복했던,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위로해 보자.
평소에도 제가 좋아하던 영화인 '레이디 버드'와 함께 두 번째 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언제 한번 레이디 버드 소개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 주전 투고 신청을 한, 한 웹 매거진에서 운 좋게도 제 이야기를 실어주셨습니다. 그 글에서 공교롭게도 썸네일로 '레이디 버드'가 올라왔더라고요. 부족한 짧은 글이지만, 이번 브런치 글과 연관되어서 슬쩍 공유해 봅니다.
https://www.instagram.com/p/C3hwEiBPu20/?igsh=MWFzdXU5cTZyZWN4bw==
(출처: 아워익스프레스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