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첫 시작, 건축 매거진 에디터

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영화 '파벨만스'리뷰 포함) -3화

by 푸른

*이어지는 형식의 글이다보니 이전의 글을 읽은 후, 이번 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lue-scene/15


따가웠던 매미들의 울음이 조금은 잠잠해진 8월의 끝자락. 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여름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의 시점에서, 나 역시 탈피하는 곤충마냥 급하게 상경을 했다.


일주일 만에 살 집을 구해 서울에 올라왔다. 출근을 1주일 남짓 남기고 급하게 올라온 서울. 건축학과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8월 내내 봉사활동을 했다. 서울로 이사 가기 전날까지. 휴학했을 때나 방학 때,미리 해두지 않고 벼락치기 마냥 2주 만에 30시간이라는 봉사 시간을 채워야 했다. 서울에 올라갈 계획도 없었기에 미리 해두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나의 성격이 얼마나 준비성이 없고, 생각이 없는지 느껴진다. 이런 내가 갑자기 서울에 취업이라니. 그것도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몇몇은 나에게 너는 진짜 대단하다. 걱정도 많이 없어 보이고, 얼렁뚱땅 사는 거 같은데 결정적일 때 운이 좋냐. 누군가는 본인에게 운이 좋아서 취업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 이건 거의 사실에 가까운 말이라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운이 진짜 좋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내심 자만을 했다. (하지만 이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결정적일 때 운이 좋았고, 결정적일 때 일이 잘 풀렸다. 이런 운을 믿고 절대로 자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로부터 몇 달 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첫 직장에서의 첫 출근을 남겨둔 지 5일 전, 혼자 캐리어 하나를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뭐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KTX역에서 엄마 아빠가 배웅을 해주었다. 이제 진짜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26년간 살았던 고향을 떠나, 부모님과 처음으로 따로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2시간 반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역에 내려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공항철도를 타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으로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 이상하리만큼 과하게 낯설었다. 이제 온전한 혼자였다.


첫 출근 전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괜히 긴장이 되어서 유튜브를 뒤져보았다. 첫 출근 준비물, 첫 출근 인사 등. 출근길도 처음이라 거의 30분을 일찍 출근해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벌벌 떨다가 들어갔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첫날의 분위기와 기분. 다들 반겨주는 분위기였다. 나와 함께 입사한 다른 2명의 신입들도 모두 좋아 보였다.


내 책상을 안내받고 앉아서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앞으로 나의 자리가 될 책상과 컴퓨터. 어쩐지 신기했다. 첫 며칠은 매뉴얼에 관한 안내를 받고, 회사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출근 4일 만에 나는 외근을 나가게 되었다. 회사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전 미팅에 보조로 따라갔다. 신입 3명 중에 나 혼자만 외근에 따라 나가는 것이 의아했다. 아침 8시에 서울시청으로 출근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보조를 했다. 커피를 픽업하고, 책상을 세팅하고, 프로젝트 사전회의에 참여하는 높으신 분들께 인사하고. 건축계에서 다들 굵직한 자리를 맡고 계신 분들을 직접 보는 것이 신기했다. 그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는 것이 꽤 좋았다. 마치 해본 것처럼 익숙했다. 나의 상사도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나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활발한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는데, 역시나 잘해서 좋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입사한 지 2-3주 됐을 때의 일기를 보았다. 그땐 참 기분이 좋은 일들이 많았나 보다.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입사하자마자 맡게 된 프로젝트를 하면서 상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나 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듣기 좋은 칭찬들이 어쩌면 독이었는지 모르겠다. 사회에 나온것이 처음이고, 처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혹시 내가 일을 잘하나? 나 완전 잘 되는거 아냐? 라는 상상과 기대들.


먼저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나에게 조언했다. 처음 입사해서 뭐든 좋다고 괜찮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일만 많이 시키고, 뭐든 다 괜찮은 사람인지 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나는 계속해서 뭐든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일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가 아니지만 여전히 건축과 가까이 있고, 설계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분야. 나에겐 너무나 새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yes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주어진 일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그만큼 나를 믿고 일을 시켜주는 것이 고마웠고, 또 좋았다.


매거진 편집일로 입사를 했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일도 할 수 있었다. 회사가 맡은 외부 프로젝트일도 경험했고, 영상과 관련된 부분의 일도 잠시나마 접했으며, 글도 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시 디자인과 굿즈 제작, 취재, 기사작성, 영상 편집, 커뮤니케이션 등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의 일도 맡아하게 되었다. 일이 정말로 즐거운, 첫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파벨만스 (2023)



연출 ㅣ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ㅣ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등


영화라는 꿈 속에서 꾸는 꿈을 이야기합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거장은 이유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랬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영화제작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군가를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담담하게 전달하는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부분들이 많은 영화였다.



영화라는 꿈 속에서 꿈을 꾸는 소년의 이야기. 스필버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며,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였지만, 우리가 꾸는 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름을 통하여 자신 꿈을 펼치고 또 지키는 스필버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어릴 적 꿈을 생각나게 할지도 모른다. 저렇게 한 가지 일을 좋아하고 또 지켜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John Ford : Now, remember this. When the horizon's at the bottom, it's interesting. When the horizon's at the top, it's interesting. When the horizon's in the middle, it's boring as shit.


이 말을 끝으로 마지막에 새미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수평선을 조정하는 엔딩은 아마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수평선의 위치에 대한 것은 어떻게 보여주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재미있고 즐겁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냐의 차이이고, 그 보이는 것에 따른 관점은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끝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는 각자의 삶에 대한 응원일 것이다.


어쩌면 삶의 힘든 일을 수평선 가운데 서서 절망스럽게만 바라보지 말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며 다르게 이겨나갈 수도 있다고 위로해 주는 듯하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이들이 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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