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직장 생활에서 배운 것들, 에디터가 하는 일

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4화

by 푸른

*이어지는 형식의 글이다보니 이전의 글을 읽은 후, 이번 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lue-scene/15


매거진 에디터. 거기에 건축 매거진. 그리고 건축학과 출신의 신입.


학교 다닐 때에도 즐겨보던 매거진이었다. 워낙 퀄리티도 좋고, 책 자체가 고급져서 대단히 멋져 보였다. 건축학과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 집어 들어 펼쳐 보았을 매거진이었다. 이 매거진에 나의 이름이 적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헀다.


2023년도 늦여름의 기록이다.


생각보다 회사의 규모는 작았다. 그중에서도 편집부원은 나 포함 고작 7명이었다. 7명의 사람이 만들어가는 책이 그 정도의 퀄리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와 함께 신입이 총 3명이었는데, 그 말인즉슨 그전엔 4명의 인원으로 책을 발행했었다는 이야기이다.


회사가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신입을 3명이나 뽑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늘 손은 모자랐다. 신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정신이 없는 날들을 보내야 했다.


일은 점점 늘어만 갔다. 직장 상사의 부름과 꾸짖음 역시 함께 늘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아래 사원들을 불러 세웠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사회생활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며 지나쳤다. 부모님께 가끔 연락해 회사에서 이렇다 저렇다 징징대었다. 부모님은 그러셨다.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래.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회사 나오면서 그냥 잊어버려. 취업한 주변 친구들도 그랬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말라고. 나만 손해라고.


회사에서 한 일을 크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건축분야 에디터가 하는 일

1. 편집 디자이너

처음에 입사한 직책이 편집 디자이너, 즉 에디터이다. 웹과 실물 책자에 실릴 자료를 요청하고, 입수하여 정리하는 일을 한다. 해외 작품을 많이 실는 매거진이라 해외 건축 사무소로 청탁 메일을 자주 작성했다. 스터디 브리핑시간을 가지는데, 각자 배당된 건축 작품을 스터디한 후, 발표를 한 후 회의 형식을 통하여 그 작품을 포스팅할 것인지 아닌지를 상사에게 컨펌받는다. 그 후 메일을 보내어 자료를 받아 정리를 한다. 이 과정에서 도면을 보기 좋게 리터치하고, 사진, 도면, 글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한다.


2. 영상 업무

매거진에 실린 작품을 영상 업체에 보내여 의뢰한다. 그 후 모든 장면을 잘라 순서를 재배열, 색감 보정, 폰트 설정 등의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매 씬마다 회사가 원하는 순서와 장면의 분위기를 정리한 후, 다시 업체로 보낸다. 이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여 업로드 한다.


3. 정보 전달

건축과 관련된 정보는 자사 사이트에 거의 매일 올라간다. 이를 위해 짧은 정보전달 기사와 안내문을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짧은 글을 쓰기도 하며, 취재를 나가기도 한다.


4. 전시 관련

회사가 담당하는 건축 관련 전시의 전반적인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기획, 디자인, 공간배치 등 모든 시공간적인 것들을 디자인하고, 예산적인 부분을 비롯한 사무적인 것들까지 정리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작은 회사여서 그런지 주어진 직책의 업무보다 크고 작은 다른 일들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학교과제와 회사의 일을 함께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연유인지 지난 년도와 다르게 교수님들은 과제를 더 열심히 시켰다. 코로나가 끝나 100퍼센트 대면수업을 시작한 한 해이기도 했고, 전년도에 비해 교수진이 많이 바뀌었다.


모든 건축학과가 그렇듯 5학년 2학기엔 다른 학기에 비해 과제의 양이 적다. 이유라 하면, 취업을 준비하기도 하고, 다른 과들과 마찬가지로 졸업 직전의 학기라 이수하는 학점 자체가 매우 적다. (나의 경우도 설계 수업 하나만 수강하였다.)


보통 건축학과의 마지막 학기 과제는 실시도면(;건축 실무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도면을 말한다. 보통 학부생 때는 디자인을 위주로 한 도면이라 실시도면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실무에 나가기 직전인 마지막 학기엔 실시도면을 그리는 과제를 주로 진행한다)을 치는 일이다. (캐드로 도면을 그리는 것을 도면을 친다고도 말한다)


오전 7시 반에 일어나 회사에 갈 준비를 하였다. 8시 반이면 버스를 타러 나갔다. 집 앞이 바로 버스 정류장이고, 회사랑 가까웠다. 그래서 남들과 다르게 지옥의 출퇴근 지하철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통근 시간 자체도 매우 짧았다. 가끔 버스에 홀로 앉아 회사에 출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설계 담당 스튜디오 교수님과 줌으로 크리틱(;과제로 내가 진행한 설계를 피드백받는 과정을 말한다)과 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과제는 매 수업 때마다 설계를 디벨롭해 가는 것이었다. 화상 수업은 평일 저녁 6시 반쯤에 진행했다. 정확하게 6시 칼퇴를 하지 않는 이상 수업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 외에도 한 달에 2번 설계 수업에 참석을 해야 했다. 지방, 본가 근처에 있는 대학이라 매번 한 달에 두 번은 내려가야 했다.


보통은 월요일 수업에 참가했는데,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수업이 끝나는 저녁,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늘 정신없는 생활을 했다. 새벽 3시까지 과제를 하고 출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몰아치는 일 때문에 잠이 올 시간조차 없었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어나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8시간을 꽉꽉 채워 일을 했다. 수업이 없는 날은 정시퇴근을 거의 못했다. 업계 특성상, 그리고 학과 특성상 야근과 밤샘은 익숙한 것이었다. 당연히 정시 퇴근은 기대할 수 없는 분야였다. 대학 내내 과제 때문에 밤샘을 해본 사람은 안다. 최종 크리틱 같은 경우엔 새벽 3-4시를 넘기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기에 시간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나 역시 어딘가 구멍나 바람이 숭숭 통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어딘가 공허한 사람처럼 늘 마음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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