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5화
*이어지는 형식의 글이다보니 이전의 글을 읽은 후, 이번 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lue-scene/15
나는 학교에서도 그동안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설계 성적은 늘 B+와 B0 사이였다. 조금 잘하면 B+, 조금 못하면 B0. 한마디로 그냥 평범한 학생, 굳이 따지자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설계를 못하는 편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아마 교수님들 중에서도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취업을 했는데 취업계 안 나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오지 않았다. 설계 사무소가 아니라서 그런지 장기 인턴 신청이나 취업계가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설계 사무소에 취업한 친구는 장기 인턴으로 마지막 학기를 과제와 출석 없이 직장을 다닌 후 졸업 하였다.
지방대 건축학과 특성상, 거의 대부분 설계 사무소에 들어가 실무 3년을 채운 후, 건축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무에 나가서 최소 3년을 채워야 건축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3년을 채웠다고 해서 모두 합격하는 것도 아니다. 자격이 주어질 뿐이지 시험을 통과해서 라이선스를 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실무를 계속하면서 시험을 함께 준비한다. 시험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드물게 3년 만에 바로 따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따는 사람들도 많다.)
교수님들 역시 설계사무소를 가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모두가 신기해했고, 이전의 사례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쓸데없이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괜한 자격지심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못하는 학생이 설계 사무소가 아닌 다른 곳에 취업해서 더 과제를 안 해가고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가장 조건이 안 좋은데 뽑힌 것이라 그곳에서도 뒤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디자인을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고, 디자인 프로그램 툴 역시 잘 다루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글을 뛰어나게 잘 써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전부 적당히 하고 적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학교와 직장. 두 군데에서 나의 편의를 봐주기로 하고 입사를 한 것이었다. 교수님은 평일 저녁 따로 시간을 내주시며, 화상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회사는 한 달에 두 번, 직원의 결근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면서까지 나를 입사시킨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괜한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갈수록 그려야 할 도면의 양은 늘어나고, 일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사내 메신저가 울릴 때마다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이번엔 또 어떤 걸로 혼낼까. 어떤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이런 연락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활자들은 읽는 내내 손을 떨게 했다. 휴대폰에 다른 알람이 울릴 때마다 화면을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상사의 연락을 바로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잘 때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자기까지 했다.
결국, 내 의지가 작았는지, 마음이 약했던 건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같이 입사를 한 동기 중에 한 명은 입사 2달을 겨우 채우고 퇴사했다. 그 동기의 일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고, 이조차 배우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글을 배우고 싶었다.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긍정의 눈치를 내보냈지만, 경험만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상사는 그것을 내가 글을 쓰는 직책을 맡아도 상관없다는 의지로 해석했고,
며칠 뒤 나는 기자의 직책을 통보받았다.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기자의 직책을 통보한 일은 이랬다.
내가 고정된 업무가 없어서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웃긴 말이었다.
내가 불안했던 건 시도 때도 없이 메신저와 부름으로 혼내는 상사와 산더미처럼 쌓인 일. 그리고 집에 가면 나를 또 기다리고 있는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였다. 항상 무언가 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과제를 걱정했고, 다음날의 상사의 기분을 신경 썼다.
회사에선 직전에 퇴사한 동기의 일을 맡아하는데, 이 일도 처음이라 계속해서 혼났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30분을 넘게 세워두고 혼이 났다. 알바를 하거나 팀플 등의 경험을 하면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민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는 단순하고 둔한 사람이었고, 일머리는 어딜 가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갈수록 자존감은 떨어졌고, 매 순간이 불안해졌다.
그게 다 맞는 줄만 알았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첫 직장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근로계약서를 한 달 만에 썼고, 연차는 두 달에 한 개가 나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일은 즐거웠으니까.
입사 몇 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고 하면 나보다 나잇대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이 대부분 그렇지 뭐, MZ스럽다, 요즘은 길게 일하는 애들 없더라, 요즘애들은 조금만 힘들면 그만두지 뭐. 실제로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말로만 듣던 MZ인가. 조금만 힘들면 쉽게 포기하는 요즘 애들인가. 내가 너무 쉽게만 살려고 하나. 내가 나약한가.
그렇게 마음속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단 두 달 반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