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다정함에 관한 이야기
우연히 유튜브를 보던 중, 이적의 적수다 라는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첫 화였다. 첫 화의 주제는 ‘다정’이었다. 다정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들어봐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영상을 바로 재생했다.
다정이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나, 접해본 경험이 있는지 생각한다. 이 영상은, 나의 일상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또는 놓치고 있었던 다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방면에서 그 단어를 적용하고, 분석하는데, 40분의 시간 동안 나오는 모든 말들을 빠짐없이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0. 친절은 강함의 표현
‘나의 친절을 약함이라고 여기지 마라 ’
왜 그렇게 요즘따라 사람을 막 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다. 설령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결국엔 나를 함부로 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는 굳이 오랫동안 친분을 맺을 필요가 없다. 웃으면서 네네~ 하면 여기저기 막 부려먹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 친절을 그냥, 얘는 막 써먹어도 되는 애인가보다, 얘는 싫은 소리 잘 안 하니까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넘어가겠지 하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는 요즘이다. 그런 것들을 알아채는 것도 눈치이고 재능이고 사회적 지능인데, 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각자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나도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나라는 비뚤어진 생각이 든다.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사회에 나와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학교폭력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상사라는 이유로 폭언을 퍼붓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어른들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학교 밖을 나와 만난 어른들 중 아직 좋은 어른을 보지 못했다. 어떤 어른을 보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숫자가 나보다 많다는 이유로 횡포를 부리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1. 다정은 체력에서 나온다
이슬아 작가님의 말이 언급되면서, ‘누군가 날마다 상냥하다는 것은 뿌리 깊게 강인하다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주변에 상냥한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떠올린다.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상냥이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 상냥과 다정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 베푸는 게 호구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내 것을 챙기지 않으면 그나마 있는 것마저도 뺏긴다는 생각 때문에, 내 것을 지키는데만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신경 쓸 여유도, 다정을 베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제일 강한 사람임을 잊지 마라. 날마다 상냥하다는 것. 그것만큼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없다. 그것만큼 여유롭고 큰 사람은 없다.
2. 바쁜데 다정할 수가 있어?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다정할 수가 없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시간적 여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에 늘 쫓기면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다정할 수 없다. 당장 눈앞의 불을 끄면서 살아가는 데에 급급하기 때문에, 다정이라는 단어와는 무조건 멀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불가능이다. 사람은 바쁘면 짜증 나게 되어 있고,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살필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누구나 여유를 잃고 다정을 잃게 된다.
3. 죄송하면 을이 되는 세상
대한민국 특인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나도 고맙다, 미안하다, 감사하다, 죄송하다를 자주 썼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특히 사회에 나와서는 더욱더 그런 표현을 잘 해야 한다고. 그래서 직장에 들어가서도 당연하게 이 말들을 썼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런 말을 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인 걸까. 예의가 있고, 친절하면 어떤 사회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바보가 된다.
이는 친구 사이든 연인 사이든 똑같다. 매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만 미안했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만 그 고마움의 따듯함을 안다. 가끔은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나 하는 의문도 든다. 왜 그런 말은 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질까. 왜 그 말을 내뱉는 사람만 내뱉고, 안 내뱉는 사람은 끝까지 안 내뱉을까. 나도 가끔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후회가 남는다. 다음부턴 이런 상황에서 꼭 고맙다고 말해야지, 다음부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다가가야지 하고. 사람들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곁에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두고 싶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최소한의 예의다. 하지만 이 말은 가끔 독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자주 이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의 무게를 모르게 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먼저 그런 예의의 말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먼저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4. 저는 그냥 계속 죄송하면서 살래요
그럼에도 그 말이 누군가와 나 사이에서 패배자가 된다거나, 을이 된다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잘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요즘은 혼란스러운 마음이 자꾸 든다. 자꾸만 나의 방식이 실패하는 것만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식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누군가 알려주면 참 좋겠지만, 이것 역시 어렵다. 그냥 알아서 잘 살아 남아라는 것 같아서 가끔은 의욕이 떨어진다.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람의 뿌리가 깊을수록 단단하다는 증거니까.
중심이 있는 사람. 깊게 어딘가에 뿌리내린 사람. 단단한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수동적이고 친절하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그토록 떠돌아다니며,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했는지.
*이 모든 내용은 유튜브 콘텐츠 ‘적수다’에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