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

영화 해피투게더 리뷰

by 푸른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출 ㅣ 왕가위

출연 ㅣ 양조위, 장국영, 장첸




01.

춘광사설 ;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 빛


말해 뭐 해. 양조위인데.라는 말이 적절하다. 해피투게더. 양조위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 때문에 부국제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리마스터링 한 것을 다시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다. 첫 장면과 끝장면에서 보여주는 이구아수 폭포가 환상적이다. 화면에서도 느껴지는 현장의 압도감으로 인해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현장감을 지키면서 색감은 양조위 특유의 분위기를 살렸다.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듯하면서도 흐리다. 그 느낌은 마치 보영을 생각하는 아휘의 마음 같았다. 그래서 폭포는 그렇게 슬프고 외로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독하게. 영상을 보는 내내 그 외로움에 빠지면 정말 슬프고 두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택시씬. 이것은 해피투게더 명장면 중 하나이다. 붉은빛이 돌면서 도시의 불빛이 사이사이 희미하게 비치게 된다. 택시는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알 수 없다. 일반적인 택시라면 직진을 하고 목적지를 향해 한 곳으로만 달려간다. 하지만 이 택시는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도는 듯한 느낌으로 그려졌다. 불빛과 영상이 모두 혼란스럽다. 이 장면에서 보영은 아휘의 어깨에 기대어 편안히 잠을 자고 있다. 아휘의 얼굴만 혼란스럽게 보인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아휘의 마음을 대변하는 연출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옥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은은하게 배경으로 깔리는 하늘의 풍경과 보영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까지 완벽하다. 아마 이 영화 중 가장 밝은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이 아르헨티나의 뒷골목이나 밤의 탱고바와 거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탁 트인 낮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은 가장 밝은 장면이라고 꼽을 수 있다. 보영은 일을 하는 아휘를 기다리면서 질척거린다. 아휘는 귀찮은 듯하지만 썩 싫지 않은 표정이다. 장면 장면이 햇살이 든다.




이 외에도 아휘가 보영에게 담뱃불 붙여주는 씬, 녹음기를 붙들며 오열하는 아휘를 보여주는 씬, 장이랑 아휘가 오후에 뒷골목에서 축구하는 씬 등등 여러 명장면(사실은 그냥 영화 전 체신을 다 말하고 싶다)들이 많은데, 그러면 이 글이 끝이 안 날 것 같다.




02.


영화 내내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미장센의 천재 같다. 아휘의 집 벽지와 모든 색깔, 물품들이 무심한 듯 섬세하다. 장숙평 미술감독님은 진짜 천재 중에 천재 아닐까.


해피투게더를 몇 번을 본 지 모르겠지만 영화관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그 몽환적이면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색감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지금부터 서술하는 것은 방구석 1열의 정보를 토대로 기술된 것임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예전에 '방구석 1열'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이 회차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특유의 영화 특징과 촬영기법에 대해서 말해 준 적이 있다. 부국제에 다녀온 후로 그 회차를 한 번 더 보면서 해피투게더를 보면서 느낀 것과 비교해 보았다.



왕가위의 영화는 '스텝 프린팅'과 '핸드헬드'라는 그 당시 이미 존재하던 촬영기법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겹쳐서 지나가는 장면과 흔들리는 카메라 기법은 중경삼림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하지만 기존의 기법으로도 그의 영화가 돋보이게 된 건, 그가 이 두 가지 기법을 섞어 다른 감독들과는 다른 새로운 감정을 화면에 담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장면에선 시간이나 공간이 텅 빈 느낌을 주기도 한다. 비현실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거나 빠르게 간다거나, 공간이 텅 비었는데 마치 감정이 텅 빈 듯한 느낌을 준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들이 빠르든 느리든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어떤 이의 꿈속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왕가위 총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 장숙평 미술감독. 거기다 양조위 주연. 이 영화는 천재들의 집합체이다. 그렇게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영화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전부 좋지만 그중 단연 최고는 해피투게더라고 생각한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담겨있다.


'왕가위 영화는 서사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닌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다.'라고 말한 변영주 감독님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처음 왕가위 영화를 보았을 때는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중경삼림 같은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기 때문에 그 연결부에서 혼란이 생기기도 했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넘어가지? 물론 내가 옴니버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접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생소한 것도 컸다.


감정을 보여주는 영화. 예전에 봤을 때는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 되던 말이었다.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게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만 났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에서 본 '해피투게더'와 '2046'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해피투게더는 퀴어 영화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모습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 것이다. 보통은 영화가 서사를 쭉 전개해 나가면서 그 안에서 인물의 연기로 그들의 감정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왕가위의 작품은 우리가 인물의 내면을 유추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인물의 행동과 더불어 모든 영상과 연출 속에서 인물의 감정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내가 무슨 느낌일지 예상하려고 생각하려는 순간 감독의 모든 그림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현재 나오고 있는 영상의 그림에만 집중하면 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나중엔 서사와 사건의 순서를 유추하고 있게 된다. 일반적인 영화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과정 아닌가. 그래서 그의 영화가 남들과 똑같은 사랑 얘기를 다루어도 전혀 똑같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03.

연약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이야기


양조위 배우도 워낙 유명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배우라는 사실을 익히 안다. 하지만 이번에 해피투게더를 예매한 건 '장국영'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몇 달 전 아비정전을 다시 보았는데,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의 명장면과 함께 해피투게더 탱고가 기억났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껴먹는 영화 중 하나인 해피투게더. 오래오래 넣어두고 아껴 꺼내 먹고 싶을 때마다 늘 틀어보는 영화이다. 그래서 꼭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장국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더 꿈처럼 느껴졌다. 화면 자체에서 오는 몽환적인 느낌이 영화를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면서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상기시키는 듯해서 영화 후반에는 조금 슬펐다. 보영이 아휘집에 돌아와 혼자 그의 담요를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그의 외로움이 극대화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과 행동은 누구보다 순수하지만 누구보다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이 잘 보이는 영화가 아마 해피투게더가 아닐까 싶다. 천진하게 웃다가도 어느샌가 외로워 죽을 것 같다는 눈빛을 하는 그를 보면, 내가 마치 아휘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에게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저 장국영이 보고 싶었다. 탱고를 추는 장면이 보고 싶었다. 둘이 춤을 추는 장면만큼은 서로를 재지 않고 즐거워 보였다. 몇 안 되는 둘의 행복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영은 아휘의 성질을 받아내지 못하고, 아휘는 보영의 자유로움을 다 감싸줄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아휘의 방과 호텔 주방에서 추는 탱고는 아무런 조건 없이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라 좋았다. 둘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 된 것처럼.






04.

피아졸라의 탱고


'아르헨티나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듬이 흐르는 도시다.' 프롤로그로 시작해 피날레로 끝나는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영화의 모든 분위기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렇게까지 탱고 음악을 열심히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피아졸라의 첫마디만 들어도 마치 내가 아르헨티나 한복판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모든 장면들이 떠오른다. 정적인듯하면서도 수없이 흔들리며, 때론 슬프기도 한 음악이 두 인물의 혼란을 잘 표현하는 듯하다.



탱고 음악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나오는 대니 청의 해피투게더도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노래다. 홍콩으로 돌아온 아휘는 일상을 회복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즐거운 음악이 나오며 홍콩 다운타운의 정신없는 모습과 함께 섞여 들어가는 듯한다. 너무나 신나는 마지막 노래에 마치 기억을 조작당한 듯 이게 해피 엔딩이었나 싶지만 결국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휘와 보영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 사랑해서 서로를 밀어내다 하나가 되지 못한 둘에 비유해 '해피. 투게더.'라는 모순적인 노래가 울려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슬프지만 신나는 노래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내리는 그들의 사랑에 걸맞은 노래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