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Mar 04. 2024

이 여행 전부가, 앙트레 누

영화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출 ㅣ 알렉산더 페인

출연 ㅣ 폴 지아마티, 도미닉 세사,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곧 있을 2024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된 영화. 이러한 타이틀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제나 시상식 초청작, 수상작이라고 하면 주춤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물론 내가) 그런 영화들은 보고 나면 작품성은 정말 좋지만, 여러 번 생각하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나를 힘들게 했다. 원래는 그런 과정조차 좋아해서 모든 영화를 거리낌 없이 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거쳐도 여전히 나에게 의문으로 남겨진 영화들이 있기에, 조금은 지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고 온전하게 그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에에올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시작한 지 10분 만에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것임을 느꼈다. 털리와 쿤츠의 대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철없고, 막무가내인 학생들의 모습이 저항 없이 편안했다. 그리고 너무나 반대되는 폴 허넘의 고지식한 낡은 작업실. 초반부의 비치는 설원 속의 바튼 아카데미.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어쩌면 제2의 굿 윌 헌팅이 될지도 모르는 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01.

남겨진 사람들


겨울방학이 코앞인 바튼 아카데미. 1970년대 미국 북동부의 한 기숙 고등학교. 학생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기숙사 짐을 싸기에 한창이다.


폴은 교직원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역사 담당 선생님이다. 폴은 떠밀리다시피 방학에 집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지도를 맡게 된다. 그중에서도 집에 가기를 가장 원했던 털리와 만나게 된다. 학교에 남겨진 몇몇의 아이들과 폴 허넘 선생님, 그리고 주방장 메리. 영화는 이들의 2주간의 겨울방학 이야기를 보여준다. 너무나 다르고 맞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02.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털리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삐뚤고, 불만이 많아 보이지만, 아버지를 향한, 가족을 향한 마음이 순수했다. 가족이라는 것을 그리워하고 또 원하는 소년의 모습이 쓸쓸했다. 허넘과 털리, 그리고 메리. 이렇게 셋이 보낸 크리스마스의 아침. 아침식사 중 털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에 누군가가 만들어준 음식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이 처음이에요." 이 대사가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털리는 생각보다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엄마는 늘 그를 전학 보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털리는 친구도 없었으며, 늘 자신을 봐 달라는 신호를 모른 채, 문제아로만 낙인찍어버리는 엄마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털리가 가장 필요한 건 관심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우편으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닌. 그저 같이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의 시간을 선물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털리는 틈만 나면 학교를 벗어나려고 하고, 보스턴에 가고 싶은 마음을 계속해서 표출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 우리는 이 이유를 알게 된다. 그저 크리스마스라, 새해라, 보스턴에 놀러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철이 없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비치는 털리.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속이 깊고, 상처가 많은 어린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가 아버지에게 건넨 스노볼이 그 증거 아닐까. 단지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던 그의 모습에서 폴 역시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그가 아버지에게 건넨 스노볼이 그 증거 아닐까. 단지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던 그의 모습에서 폴 역시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특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만나 이런저런 자신의 일상을 말하면서 관심을 바라는 눈빛이 너무 순수했다. 단순히 어린아이가 자신을 봐 달라고 떼를 쓰는 것 마냥 명확했다.



03.

1970년대 미국은


특히 영화의 연출이 1970년대 미국의 모습을 리얼하게 재연하였다. 노란빛의 타일과 색채. 거기다가 70년대의 향수를 일으키는 사운드트랙까지. 탁월한 색감 연출과 음악 선정이 이 영화가 한층 더 진실하게 보이게 해 준 것 같다.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게 각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는 전개가 진부하지 않았다. 대놓고 외롭거나, 대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그들의 일상과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을 보여주고, 함께라 나아지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바튼맨은 베트남 전쟁에 가지 않아, 코넬에 가지.


이 대사에서 확실하게 시대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메리의 아들 커티스의 이야기와 함께, 바튼 아카데미는 당시 미국의 부잣집 자녀들만 가는 특별한 곳임을 대비하듯 강조한다. 소위 바튼 도련님들은 크게 반항적이지 않다. 장난을 치고, 싸움을 하더라도 선생님의 한마디, 벌 청소 등의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쉽게 복종한다. 이런 모습에서 털리 역시 결정적일 때는 크게 반항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리디아의 파티에서 메리가 울고 있을 때, 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순순히 같이 집을 나선다. 털리는 꽤나 순진하고 어리다.


영화의 곳곳에서 고전적인 미국 상류층 학교의 이야기와 함께, 본 적도 없는 70년대 미국의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연출이 너무 기가 막히게 좋았고, 색감 역시 눈이 즐거울 정도이다.



04.

우리끼리만의 이야기, 앙트레 누


'앙트레 누(entre nous); 우리끼리만의 이야기'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첫 번째로는 팔이 부러진 털리가 병원에서 보험처리를 하지 말아 달라는 거짓말을 할 때. 허넘은 왜 그랬느냐고 한다. 두 번째로는 허넘이 옛 대학교 동창을 만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거짓말할 때, 마지막은 털리의 아버지를 보고 왔을 때.

Entre nous. This whole goddamned trip is entre nous. -paul
바튼맨은 거짓말하지 않아.

폴은 역사, 고고학 선생님이다. 그래서 늘 역사와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학생들에게도  자주 언급한다. 폴과 털리가 보스턴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나눈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과거가 삶이 현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과거를 중요시 여겼던 역사 선생님이 영화 후반부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털리가 아버지를 만난 후 상심했을 때, 폴은 털리에게 이전의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말을 건네며 위로한다. 또한, 원리원칙주의자였던 폴은 마지막에 자신의 직위까지 포기하면서 털리를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런 장면들에서 폴과 털리는 훨씬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Angus, listen.

You’re not your father.

How do you know?

Because no one is his own father.

I’m not my dad.

No matter how hard he tried to beat that idea into me.

I find the world a bitter and complicated place,

and it seems to feel the same way about me.

I think you and I have this in common.

But don’t get me wrong, you have your challenges.

You’re erratic and belligerent

and a gigantic pain in the balls,

but you’re not your father.

You’re your own man.

Man, no. You’re just a kid.

You’re just beginning.

And you’re smart.

You’ve got time to turn things around.

Yes, I know the Greeks had the idea

that, uh, the steps you take to avoid your fate

are the very steps that lead you to it,

but that’s just a literary conceit.

In real life, your history

does not have to dictate your destiny…

                                                    -paul


털리는 폴에게 묻는다. 어느 쪽 눈을 보고 대화를 해야 할지. 물어볼 당시 폴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마지막 교장실을 나오며, 털리에게 이쪽이야 하며 오른쪽 눈을 가리킨다.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그들의 사이 자체가 앙트레 누 아닐까.

카운트다운 직전, 털리는 폭죽을 어디서 주웠다며 터뜨리고 싶어 하지만 폴이 말린다. 그 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악수를 건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잘 보면, 폴은 털리가 건넨 손을 잡지 않는다. 그 후 털리의 폭죽을 뺏어 들어 부엌에 가서 터뜨리자고 한다. 털리는 신나 그의 뒤를 따라간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창밖에서 비춘다. 그 후, 폴은 먼저 털리에게 손을 건네고 둘은 경쾌한 악수를 하며 1971년을 맞이한다.

이 장면도 기억에 남는 악수 장면 중 하나이다.

악수를 하는 장면은 몇 번 등장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의 악수일 것이다. 서로에게 바튼맨이라며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담담하게 건네며 제대로 된 마지막 악수를 한다. 이로써 그들이 함께한 짧았던 겨울방학의 끝이었다.




00.

체리 쥬빌레의 의미


특히 이 체리쥬빌레 장면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유쾌+따뜻한 장면이었다. 중간중간에 미국식 유머도 섞이면서 갈수록 셋의 합이 잘 맞아가는 것을 보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식당에서 거절당한 메뉴를 밖으로 나와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얼렁뚱땅 만들어진 체리쥬빌레 같을지라도 그 속에는 그것만의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와 맞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이 엉망진창인 체리쥬빌레(즉석에서 체리와 아이스크림, 짐빔을 섞어 불을 붙여 만든)처럼 전혀 다른 것들이 모여 만들어질 인생도 분명히 희망적일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서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따듯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허넘과 폴, 그리고 메리. 이 모두는 각자 하나의 상처를 담고 살아가고 있다. 어딘가 하나씩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완전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흔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마지막 엔딩. 폴은 우드럽 교장이 준 위스키를 가글 하듯 마신 후, 차창 밖으로 뱉어버린다. 이는 이전의 그가 지켜왔던 원칙과 삶, 그리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 등의 변화를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떠나며 그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짧았던 털리와 메리의 시간 속에서 그는 변화했다. 이처럼 우리는 부족한 존재이지만, 주변 이들로 인하여 변화하고 성장하며, 새롭고 재미난 일들을 맞이할 것이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 매 차가운 겨울이 다가올 때, 분명 생각날 영화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에서의 첫 시작, 건축 매거진 에디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