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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별 Jan 03. 2021

호비튼에 살고 싶은 호빗

한 문장부터 시작, 판타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 '망설임 없이 쓰는 글'의 '소설 쓰기' 확장판 => 일단 생각의 파편들을 모으는 정도라는 얘기죠ㅋ)


소설을 쓰고 싶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생각이다. 감히 ㅋ

그때는 '감히'였다면, 지금은 '한 번..? 정도로 나름 용감해졌다. 진짜..?

작은 한편은 용감해졌는지 몰라도, 나머지 커다란 구십구 편은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이렇게 브런치에 공표까지 하며 도전하는 이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 독자/작가님들이라면 거의 공감-응원해주실 만한 이유에서다.

'해보고 싶으니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이제는 좀 많은 건가..ㅜㅡ), 그동안 나이에 비해 다양한 삶을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의 축적에 감사했다. 쉽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던 일과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처음에 글은 아니었다. 두 회사에서의 짧은 직장생활과 나름 길었던 문화예술 쪽 일 이후, 30대 초반 시작한 인문학 공부와 글쓰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고 잘하는 건 아니고, 안 힘든 건 절대 아니다. 20대에 공대를 졸업하고 연구원 잠깐 하다가, 영업하고, 춤추던 사람이 대학원 몇 년 다녔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불면증까지 걸려가며 써낸 석사논문은 공식적인 나의 첫 글쓰기 결과물이었다. 이후 또 수년 동안 박사논문, 칼럼들, 다른 장르의 책 두권 등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름 많은 글쓰기를 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글쓰기는 어렵다는 것, 노력해야 하고 꾸준해야 한다는 것, 성장 속도가 느리기에 오래 걸린다는 것.


더 대박은 장르마다 글쓰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설을 써보겠다고 하니 참... 다시 한번 정확히 말하지만,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써보고 싶다는 거지ㅡㅡㅋ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거 아니겠는가.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글쓰기 방법론은 당연히 배울 거다. 하지만 일단 기본 글쓰기와 풍성한 상상력이 중요한 거 아니겠냐는 멋모르는 허세를 떨어본다. 이것도 처음이니까 이럴 수 있겠지. 그럼에도, 신화, 판타지, SF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주입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소설을 쓰고 싶으니까..ㅎ




문득 백지에 쓴 한 문장 


'땅속 한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옥스퍼드대학 강의실에서 채점을 하던 J.R.R. 톨킨 앞에 우연히 놓인 백지, 그리고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문장, 그때 톨킨은 바로 펜을 들어 무작정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고 한다. 이 시대 최고의 판타지 문학 중 하나인 <반지의 제왕>의 대서사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사실 위 문장은 <호빗>의 첫 문장이다.)


재미있는 건, 당시 톨킨도 호빗이 어떤 존재인지, 왜 땅속 굴에 살고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저 찰나의 번뜩임 속 떠오른 한 문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던 것이고, 아마 본인도 그 이야기가 얼마나 넓고 깊게 퍼져나갈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건 <반지의 제왕> 시리즈 관련 작품들만 정리해봐도 알 수 있다.


원래 첫 작품은 <호빗>, 이후 태양 제3시대의 방대한 이야기 <반지의 제왕> 시리즈 세 권이 집필되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실마릴리온> 시리즈 두 권이 있는데, 이는 중간계의 창조와 이후 시대를 다루는 프리퀄 작품으로 톨킨 사후 아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실마릴리온> - <호빗> - <반지의 제왕>, 강의실에서 무심코 한 문장을 썼던 톨킨은 이후 남은 생동안 거대한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걍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판타지 대서사시가 그런 우연(또는 운명) 같은 한 순간 한 문장에 의해 탄생했다는 게 놀랍고 가슴 벅찰 뿐이다. 예전부터 이런저런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도 보고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고대-중세-현재에 이르는 타임슬립, 우주를 포함한 다양한 평행 세계들, 이런 것들은 요즘 부쩍 늘어서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 시장 간판을 보다가 문득 나도 톨형님처럼 한 문장을 떠올렸다..!

 

'제주도 숨골에 흑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 여기서 당신의 반응은? : 1. ㅋ, 2. ..., 3. ?)



판타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판타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투영한다. 톨킨의 중간계(middle-earth), 루이스의 나니아, 롤링의 호그와트, 어떤 곳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위 이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은, 클래식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문학이 그렇듯, 세상과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 방향과 미래를 담고 있다. 이는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상황까지를 포함한다. 


판타지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통과 절망의 실존 속에서 희망과 구원을 찾아가는 여정, 즉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위로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C.S. 루이스 형님이 <나니아 연대기>를 쓰고 하신 말씀처럼 '그냥 보면 된다'. 아이든 어른이든, 이해되고 느껴지는 만큼, 보고 즐기고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누리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 아닐까. 시의 단어 하나까지 밑줄 그으며 해석할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다.



* 문득 붙여본 제목, '호비튼에 살고 싶은 호빗'은 내 소원의 표현이다.


사실 호비튼은 호빗이 사는 샤이어 마을 이름다. 그러니까 그들이 거기에 사는 건 당연한 거다. 응? 그게 무슨 말? 원래 평화로운 마을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던 4명의 호빗이 넓은 세상 속으로 나와 경험하는 실존, 악, 위기, 종말, 그 모험의 과정이 바로 우리 삶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샤이어 호비튼은 단순히 고향마을이 아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유토피아, 즉 천국이자 낙원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삶의 여정 중간 어디쯤에 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처럼 보물을 찾아 세상 여기저기를 돌고 있는 중이다. 결국 그 또한 원래 있었던 곳 고향터로 돌아와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영원의 고향 호비튼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결국 아직은 닿지 못하는 것을 향해, 닿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한껏 손을 뻗쳐보고 싶은 한 호빗의 마음일 것이다.


진짜 제주도 숨골에 사는 흑돼지로 시작해야 하는 건가...ㅋㅋㅋ


(*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이 소설 관련(연재 시작이면 더 좋고ㅋ) 매거진을 생성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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