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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별 Jan 21. 2021

아무렇지 않게 이상한 스페인 영화
<나의 집으로>

현실에는 비가 온다, 그리고 수도꼭지가 샌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듬성듬성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아무렇지 않게 이상한 영화


넷플릭스 영화 <나의 집으로>(The Occupant, Hogar, 2020)는 좀 독특하다.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다. 차분하게 어둡고, 차분하게 우울하다. 끊임없이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은 그런 분위기를 은은하게 도우며 시청자로 하여금 아무렇지 않은 이상함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주인공 하비에르는 한때 광고업계의 전설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바르셀로나 중심에 좋은 집을 소유하고 있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아내와 아들과 살고 있는 그는 행복한 가정을 이끄는 능력 있는 가장으로 묘사된다.

그랬던 그가 해고를 당한다. 실직자가 된 하비에르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전설이 아니다. 퇴물, 계륵, 인생은 순식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돼버린다. 


수차례의 면접 후 드디어 계약을 하려 한다. 제의 받은 조건은 3개월 동안의 인턴. 자존심이 짓밟힌다. 왕년에 잘 나갔던 중년의 광고기획자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까인다. 사람 더 서럽게 만드는 건 주차권, 불러서 면접 보러 갔는데 정산이 안된단다. 참 더럽고 치사한 인생이다.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하비에르의 인생이 낯설지가 않다. 점점 빨라지는 중년들의 은퇴, 그나마 잘 되면 명예퇴직, 나쁘게 되면 정리해고. 그의 인생-상황은 우리네 삶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하비에르 가족은 집을 옮기게 된다. 유지할 수 없는 좋은 집에서 외곽에 있는 집으로.

그래도 살아야 하니,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본다. 그런데 잘 안 된다. 그러다가 엇나가는 선택.


처음에 하비에르는 그저 살던 집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한번, 두 번,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 부럽다. 그런데 점점 보기가 싫다. 내 자리인데.. 성공을 추억하고, 실패를 되씹는다. 그러다가 순간 자기 자신에게 치밀어 오른 분노, 마지막 남았던 소중한 차의 문을 걷어찬다! 바로 후회, 늦었다.. 찌그러진 문을 어쩔 것인가...


문득, 반납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집 열쇠가 손에 잡힌다. 하비에르는 결국 선을 넘고야 만다.




# '나의 집으로' 들어가다 


하비에르의 입장에서는 원래의 자기 집을 잠시 방문한 거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무단침입이다.

이전에 누렸던 삶을 잊지 못하는 그는 얽매여있는 과거 속 하루를 끄집어내어 그 일상의 행동을 복기한다.

커다란 통창의 자동 커튼을 열고, 가족사진을 보고, 음악을 깐다. 식사를 하고, 배변을 하고, 아이의 방을 들여다 본다.


그러다가 현재 집주인 토마스의 컴퓨터에 손을 댄다. 일정을 체크, 급기야 남의 일정에서 약점을 훔치고, 삶을 변경한다. 나의 것이라 착각하는 걸 되찾겠다고 거짓말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 


 

영화 <나의 집으로>의 원제는 '거주자'(The Occupant), 그리고 '집/가족'(Hogar)의 의미를 지닌다.

하비에르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집과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하비에르에게 고급 맨션은 '나의 집'이다. 자신이 '거주자'이며, 토마스가 '침입자'이다. 이미 스스로를 세뇌시킨 하비에르에게 거짓말은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다.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투쟁의 도구일 뿐이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거짓말과 음모의 스토리는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그 자체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비 속에서 토마스를 미치게 하고, 일부러 맞고 피 흘리며 연기하는 하비에르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그 소름 끼치는 가면이 혹시 우리 내면의 얼굴을 투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서운 생각이 든다.




# '나의 집'을 되찾다


침입자 토마스를 속이고, 미치게 하고, 죽인(그것도 토마스 아내의 손을 빌어) 끔찍한 하비에르...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집을 되찾는다. 원래 자기 집이었던 고급 맨션의 거주자가 된다.


그뿐이 아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하비에르새로운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가 된다.

원래의 아내와 아들이, 새로운(원래 토마스의) 아내와 딸로 치환되었다.

하비에르에게 집과 가족은 좋은 것, 최고의 것이어야 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바뀌는 가족...


묵직하게 돌아오는 질문은 똑같다: '나에게 집 그리고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 항상 물이 새는 '나의 집'


영화는 초반에 등장했던 장치들을 마지막 장면에 한 번 더 등장시키며 암시를 남긴다.

광고 속 배경음악, 자동 커튼, 수도꼭지...


영화 초반 하비에르의 광고 속 '당신에게 걸맞는 삶'이라는 카피와 함께 흘렀던 배경음악이 다시 흐른다.

토마스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집과 가족을 모두 빼앗은 하비에르, 그는 그 집과 가족에게 '걸맞는 삶'의 주인공이 본인이라고 생각하며 흐르는 음악 속을 거닌다.

그리고, 더 고급스러운 집을 비추며 페이드 아웃되는 장면 속에서 하비에르는 '자동 커튼'을 작동시킨다.


진짜 마지막 컷, 수도꼭지가 새고 있다.

하비에르가 무너지고 이사했던 좁은 집의 수도꼭지도 샜더랬다. 그런데 초호화 빌라의 그것도 새고 있다.

어쩌면 새고 있는 것이 수돗물만은 아닐 것이다.


'leaking', 무엇이 샌다는 것은 '결핍'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의 삶, 가족, 관계에서 새고 있는 것은 없는지, 결핍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더더더... 끊임없이 추구하고 올라가는데만 집착하고, 거기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본다.


너무나 차분해서, 어두워서, 그리고 비가 와서, 이상했지만 익숙했던 <나의 집으로>.

우리 실존의 현실이 담겨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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