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에 타투를 두개 몸에 새겼다. 하나는 왼쪽 팔목에, 그리고 하나는 오른쪽 팔 가장 위에. 귀에도 8개의 피어싱이 있지만 마음이 더는 못견딜 때마다 나도 모르게 늘어나는 것들이다. 나는 짝수보다 홀수가 좋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짝수가 답답할뿐. 그런데 나는 지금 짝수이다. 더는 나눠지지 않는 완전수도 아닌 아직 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숫자. 피어싱은 얌전하지만 더는 어렵고 딱 하나만 더 타투를 하고 싶다. 손가락 안쪽에, 손바닥을 펴지 않으면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내 유일한 사랑인 존재의 이니셜을 작고 선명하게. 음표랑 닮기도 한, 그것을 대문자로 할지 소문자로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인간마다 사연이 다르듯이 세상을 버티는 방법도 다르다. 비밀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라는 장 그르니에의 문장을 아침에 다시 목격했다. 내가 그것에 동의한다는 것에 이 글도 모순이겠지만. 손을 가만히 놔두는 것은 내게 거의 불가능하므로 뇌에게 전달한다. 네번째 소설을 시작해. 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을 또 뒤져야할까. 정말 미워하는 것은 소설에 넣지 않는다. 감정의 쓰레기통을 뒤져도 글을 쓸 때는 손을 닦고, 상상을 하고,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감정 빼고는 실존하는 미움의 대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쁜 소설의 신을 또 부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