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시련을 살아내는 슬기로운 일상생활
※ 스포일러 주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복은 지루하다.
새로운 경험은 삶에 활력을 주지만,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일은 썩 반갑지 않다. 목표를 향한 과정이라면 감수할 수 있겠지만, 공부처럼 복습의 느낌이 강한 재독이나 재관람은 늘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용 확인을 위한 부분 재독은 그래도 괜찮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다시 읽는 일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다시 펼친 <죽음의 수용소에서> 역시 그랬다. 4년 전 두 개의 독서 모임에서 이미 읽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한 재독을 제외해도, 독서 모임에서만 세 번째 읽는 책이었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책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저자를 전쟁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은 안쓰러운 인물로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수없이 생사의 문턱을 넘고 살아남은 존재의 강인함이 먼저 보였다.
이 책은 결론 3장을 제외하면, 강제수용소 체험을 다룬 1장과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립한 로고 테라피를 설명하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수용소의 참상이 담긴 1장이 강렬했다면, 이번에는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사유가 담긴 2장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4년 동안 500권이 넘는 책을 읽은 덕분일까. 이번 재독에서는 수많은 책과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시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읽었던 삶의 방향성에 관한 고전과 철학서, 그리고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특히 지금 연재 중인 글과 연결할 작품을 고민하던 중, 최근 극장에서 본 <왕과 사는 남자>가 떠올랐다. 홀로코스트나 수용소라는 공간을 넘어, 현대와 조선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저자가 주창한 로고테라피는 인간을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본다. 삶의 의미는 세 가지 방식으로 발견된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일을 수행할 때, 누군가 혹은 어떤 경험을 만날 때,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태도를 선택할 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이홍위가 계유정난으로 세조에게 쫓겨나 유배길에 오르면서 시작한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잃은 그의 눈빛은 죽음에 가까웠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뒤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서서히 변화한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밥을 먹으면서 정을 느끼고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호랑이를 화살로 쏘아 그들을 구해주고 자신이 백성을 지켜야 하는 왕임을 깨닫는다.
이후 그의 눈빛은 살아난다. 유배라는 시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금성대군과 함께 왕위를 되찾기 위한 선택을 한다.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나지만,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태도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재독이라는 주제로 돌아와 보면, 좋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작가가 숨겨둔 보석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같았다. 1회독에서 금을 찾았다면, 2회독에서는 사파이어를, 3회독에서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반복은 단순하고 지루한 되풀이가 아니라 의미를 깊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에게 재독은 질문을 되살리는 행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피할 수 없는 시련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래서 이제 첫 문장을 이렇게 고치고 싶다.
반복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