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x 멋진 신세계

편리함이라는 소마, AI가 만든 멋진 신세계

by 박소형


최근 황석영 작가의 작품 〈할매〉가 AI와 협업해 출간되었다는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는 AI를 조수처럼 활용해 구성과 형식에 대해 토론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아 작품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선택과 완성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겼다고 덧붙였다. 대신 써준 글이 아니라, 함께 고민한 흔적에 가까운 작업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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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소설 〈도쿄도 동정탑〉 역시 생성형 AI를 활용한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다. 작가는 전체 분량의 2% 미만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작중 인물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실제 생성형 AI가 생성한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AI 사용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다고 평했다. 이 작품에서 AI는 숨겨진 도구가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온 하나의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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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들은 이제 AI가 더 이상 글쓰기의 외부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즘 내가 브런치에 연재 중인 〈책, 세상을 잇다〉 역시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 책과 책, 책과 영화를 비교·분석하는 서평을 쓰다 보니, 예전에는 일일이 검색하던 작가 정보나 작품 배경을 이제는 AI에게 묻는다. 비교의 관점이나 분석의 실마리를 요청하면,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한다.


물론 AI가 내놓는 답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출처를 확인하고, 사실 여부를 다시 점검하는 크로스체크는 필수다. 때로는 그럴듯한 문장 속에 오류나 허구가 섞여 있기도 하다. AI는 빠르고 친절하지만, 언제나 정확한 조력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와 함께하는 글쓰기는 분명 이전보다 덜 외롭고 덜 두렵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선별해 주고, 생각의 방향을 확장시켜 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이런 점에서 AI는 글쓰기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사고의 반경을 넓혀 주는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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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과 우려 사이에서,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이제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읽고 쓰는 AI의 등장 앞에서, 나는 어디까지 AI를 활용해야 하고 어디부터는 거리를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 질문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새로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때마침 독서 모임에서 읽은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는 이런 생각들을 정리할 기회를 주었다. 읽기와 쓰기를 더 확장한 개념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주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리터러시’라고 한다면, 이제 리터러시는 원하는 자료를 찾는 단계에서부터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의사소통에 이르기까지 적재적소에 AI를 활용하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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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진짜 글쓰기 실력보다 ‘아는 척하는 능력’이 먼저 자라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커진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처럼 “나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 발견하기 위해 쓴다”는 문장은, 자칫하면 “나는 AI로 대충 아는 척하기 위해 쓴다”로 바뀔 위험을 안고 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고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AI가 발전할수록 삶은 더 편리해지고, 글은 더 쉽게 쓰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모든 판단을 AI에 맡기게 된다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 관계 속에서 AI에 종속된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이 지점에서 몇 해 전 읽었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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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사람들은 ‘소마’라는 약을 통해 고통과 불안을 제거한 채 살아간다. AI 역시 우리의 글쓰기뿐 아니라 삶 전반을 매끄럽게 관리해 주는 또 하나의 소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할 자유마저 잃게 된다면, 그것은 과연 ‘멋진 신세계’일까.


AI와 함께 다가올 미래가 편리함과 안정만 남은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유의 자유가 지켜지는 세계이기를 바란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로 활용되어야 하며, 인간의 사고력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을 선택하는 기준 역시 효율이 아니라, 인간다움이어야 할 것이다.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 〈멋진 신세계〉


소설 속 야만인의 이 말이, AI로 인해 더 편리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는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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