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그대에게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의 생각을 넓히는 글이라고 믿어 왔다. 그래서 한동안은 특별한 경험을 했거나, 눈에 띄는 성공을 이룬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 여겼다. 치열한 노력의 과정과 성취의 감정을 정리해 타인의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글, 그것이 제대로 된 에세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 생각은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이 책은 평범한 회사원인 저자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감정들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 기록이다. 불안, 질투, 고단함, 무기력함. 누구나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 앞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행과 불행이 나뉘는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일상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 준다.
혼자가 좋다는 말은
사실 ‘잠시 숨 돌릴 시간 좀 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되고 싶진 않다.
그저 내 사람들에게 보내야 할 다정함이란
의무에서 잠시 피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비겁했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19
저자가 흘려보낸 문장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의 파편을 발견했다. 그의 이야기일 뿐인데 어느새 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만의 감정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조용한 위로가 스며들었다. 생각해 보니 성공한 사람은 소수이고, 평범한 사람은 다수였다. 그렇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어쩌면 평범한 우리 안에 더 많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좀 더 넉넉하게 건넬 줄도 알아야 한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92
우리는 어쩌면 위로와 공감을 얻기 위해 글을 읽는지 모른다. 예술 작품을 보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 또한 결국은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려는 몸짓일 것이다.
지난달 생일에 남편에게 YB 콘서트 티켓을 선물 받았다. 몇 해 전부터 우리는 기념일마다 물건 대신 음악을 선물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낸 시간을 축하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무대를 만나는 일은, 우리만의 작은 이벤트다.
그날 공연에서 내 마음속 깊이 남은 곡은 〈흰수염고래〉였다. 힘든 시간을 지나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위로가 되어 준 노래. 윤도현도 암투병 후에 자신도 이 노래로 위로를 받았다고 했던가. 함께 떼창으로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 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를 부르던 순간, 울컥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곡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수염고래(대왕고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흰수염고래는 축구장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을 지녔지만 성격은 온순하다. 거친 바다를 묵묵히, 그러나 당당하게 자신의 속도로 헤엄쳐 나간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두려워도 괜찮다고, 지쳐도 괜찮다고. 그래도 너는 이미 충분히 크고 단단하다고.
AI 시대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 에세이를 통해, 예술을 통해,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건넨다. 위로와 공감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조용하고 차분하게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책의 문장과 어떤 노래의 멜로디가 내 안으로 들어올까. 그 작은 기대를 안고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