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X 한강 <희랍어시간>

언어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가 되는가?

by 박소형

최근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 상대방은 전후 사정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고, 그 말들은 마치 비수처럼 들렸다. 나 역시 순간적으로 분노에 휩쓸려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비로소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왜 그때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했을까. 차분하게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감정에 휩쓸려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나 자신이 아쉬웠다.


059.png


언어는 때로 비수가 되어 상대를 깊이 상처 입히기도 하고, 반대로 한마디의 말로 누군가의 하루를 환하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왜 그렇게 했어요?”라는 말은 비난처럼 들리지만 “무슨 일이 있었어요?”라는 질문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단어 하나와 어조의 차이가 관계의 온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처럼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언어로 상상하며, 언어로 세계를 이해한다. 언어는 글과 기록의 형태로 시간을 넘어 다른 이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정체성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이처럼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삶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어떤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곧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며, 반대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얻는 경험이기도 하다.

060.png


이러한 언어의 본질적인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작품이 바로 <문맹>과 <희랍어 시간>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에세이 <문맹>은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던 작가의 경험을 통해 모국어를 잃어버린 삶을 이야기한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언어를 잃어버린 여자와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이미 죽어버린 고대 언어인 그리스어를 매개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 서 있지만, 언어가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책표지-썸네일-058.png



<문맹>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혁명 이후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던 그녀에게 언어를 익히는 일은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썸네일-091.png


반면 <희랍어 시간>의 ‘그녀’에게 침묵은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말을 잃어버린 뒤 그녀는 세계와의 연결을 잠시 끊어 낸 채, 희랍어 수업이라는 느리고 낯선 언어의 시간을 통해 상처 난 내면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이처럼 두 작품에서 언어의 의미는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한 도구로, 다른 한쪽에서는 상처를 견디기 위한 침묵의 방식으로 대비된다.




두 작품을 읽으며 인간에게 언어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때때로 언어의 무게를 잊은 채 쉽게 말을 내뱉지만, 언어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나의 언어를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결국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건너가게 하는 다리일지도 모른다. 내 기분에 따라 흔들리던 말의 온도를 조금 더 따뜻하게 유지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온기의 언어로 세상과 연결되기를 조용히 꿈꿔 본다.

금요일 연재
이전 07화태수<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X YB밴드<흰수염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