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나 공가를 내고 병원을 비우는 날이면, 어떻게들 그리 잘 아는지 꼭 찾는 연락이 온다(병원에 부재직원 안테나라도 있는 걸까? 이런 편집증적인 생각 같으니라고! ^^;). 평소에 잘 연락올 일이 없는 인사팀에서 연락이 올 때도 있고 총무팀에서도 연락을 주기도 한다. 행정부서에서의 연락은 사실 바로 관여해서 처리해야 할 다급한 일들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이고, 단지 사무실로 연락이 되질 않으니 핸드폰으로 온 연락이기에 '내일 출근해서 연락드릴께요' 라고 답하면 마무리된다. 하지만 외래와 심리실의 연락은 다르다. 두 파트에서 연락이 온다는 것은 내가 부재한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나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 진행되는 상태라는 뜻이며, 긴급하게 논의해서 응대해야 할 일에 의사결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날도 그런 연락이었다.
심리실 3년차 치프 선생님의 연락이었다. "선생님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불길한 느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가요?"
계획했던 입원기간 보다 빠르게 퇴원한 환자였다. 빠른 퇴원 결정으로 입원 시에 진행하지 못한 검사는 외래 일정으로 예약을 잡은 터였고, 환자는 바로 그날 오후에 검사를 받고자 내원한 상태였다. 검사 전날 환자를 담당하게 될 3년차 치프 선생님과 환자에 대해 미리 논의할 때에 환자가 민감할 수 있겠다고 얘기나누었으나, 그래도 검사 진행까지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환자였다. 환자는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였고 안내에 따라 심리실 입실까지는 오케이, 괜찮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하였다.
낯선 임상심리사(평가자)와 환자가 만나는 자리, 그리고 인지기능부터 정서 상태를 살펴보는 다양한 검사들이연속적으로 이뤄지고 면담까지 진행되는 작업이 심리검사와 평가적 면담이다. 이 낯선 경험을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단 한번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경험할 수도 있다. 대체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여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증상의 변화 정도에 따라서 여러 차례 검사를 받기도 한다.
통상 실시되는 종합심리검사에는 15개 내외의 다양한 검사들이 포함되어 있고 평가적 면담도 진행되기에, 보통 3시간~4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더불어 다른 의학적인 검사들이 수동적으로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MRI나 수면내시경 검사들처럼), 심리검사는 환자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검사이기에 환자의 참여도에 따라서 검사의 질(quality)가 달라지는 유동적인 검사이기도 하다. 심리검사의 진행에 있어서 임상심리사는 객관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안내자이자 촉진자일 뿐, 검사와 면담 안에서 자신의 능력과 어려움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환자 그 자신이다. 그렇기에 검사의 초입에서 임상심리사는 환자에게 우리가 함께 하게 될 세부 검사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떻게 시행되는지, 그리고 검사의 종료 후 평가적 면담이 진행될 것을 차근히 안내한다. 더불어 어떤 사유 때문에 병원에 내원하게 되었는지를 질문하고 우리의 오늘 만남이 당신의 치료 계획을 세우는 작업의 일부임을 설명하며, 이를 탐색하는 이 검사에 솔직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독려한다. 검사에 대한 안내를 통해 우리가 심리검사의 수행과 완료, 그리고 환자의 어려움을 파악해가는 일련의 과정의 동행자임을 인식시키고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형성해간다. 이 과정은 모든 환자들에게 동일하게 진행되는 부분이다.
헌데 이 초입부에서 환자와의 문제가 발생한 것.
"검사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 어떤 불편감 때문에 입원하셨는지를 여쭤보았는데, 갑자기 제 근무경력을 질문하셨고, 그점이 왜 궁금하신지 다시 여쭤보니 '얼마 안 되신 거 같아서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거죠? 저도 대답할 가치가 없어요. 이 검사는 안 해도 될 거 같네요.' 하시더니, 검사를 거부하셨어요."
검사 소개를 마친 후 이어진 주호소 문제에 대한 질문이 환자에게는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검사로 진행하기 위해 이뤄지는 브릿지(bridge) 질문, "이러한 불편감이 있으셔서 치료를 받으시는군요. 오늘은 경험하시는 불편감과 관련하여 심리검사와 검사 종료 후 면담이 이뤄지게 될 예정입니다." 라는 검사로 안내하는 저 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환자의 어떤 한 부분이 돌부리에 탁,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퇴실하셔서 보호자분께 이런 검사가 필요없다고, 앞으로 여기서 치료받지 않을 거라며 가자고 화를 내시는 상태이고, 보호자분은 환자분을 달래고 계세요."
"보호자분께 환자가 흥분되고 과민한 상태에서 검사 진행은 어렵다고 설명드리고, 다른 날짜로 검사 일정을 변경하시거나, 검사 취소를 원하시면 환불과정과 귀가를 안내하세요. 환자분이 검사받는 상황을 불편해 하시는 거 같네요. 현재는 검사 취소와 환불을 원하시니, 환불 절차 안내해드리세요. 우리는 현 상황을 외래에서 주치의에게 공유해주면 됩니다."
나와 통화하는 사이에도 보호자는 환자에게 검사를 받자고 설득하고 환자는 본원에서 더 이상 진료도 검사도 받지 않겠다며 대치하는 상태이었다고 한다. 담당 선생님이 내 지시에 따라 보호자에게 현 상황에서의 검사 진행의 어려움과 환불 절차를 설명하고 귀가를 안내하는 것을 환자는 옆에서 모두 지켜보았다고 하며, 그 후 보호자가 다시 한번 검사 받기를 권유하자 앞선 태도와는 달리 검사받기를 잠시 고민하였다고 한다. 내게 상황을 보고하는 전화가 다시 왔다.
"잠시 검사를 진행할지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주시고, 검사를 하겠다 결정했을 경우 다시 한번 더 검사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되면 검사가 중단됨을 설명한 후에 이에 대해 보호자, 환자 모두에게 확답받으세요. 그런 후에 동의가 되면 검사를 재개하세요. 현재 검사지연 상황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라 환자의 충동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고, 이 과정에서 선생님이 검사 수검을 설득하거나 죄송해 할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검사 진행 과정에서 또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다면, 검사 진행하지 않습니다. 검사 중단하고 환불하고 귀가 안내하세요."
동일한 언행을 취할 시 검사가 중단됨을 설명한 후 검사는 재개되었다. 환자는 30살의 성인이었음에도 보호자의 동석을 원하여 환자의 뒤에 보호자를 동석한 채로 검사는 진행되었고, 다행히도 검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차분하고 협조적인 태도로 임하여 검사와 면담은 종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감정 조절이 힘들다는 어려움을 토로하였다고. 다음 날 출근해서 외래 간호사와 얘기를 나눠보니 외래 진료의 대기 시에도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점이 두드러지는 환자였다 하니, 증상으로 인한 행동이었다.
환자의 행동은 증상 조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동이니 평가자 입장에서는 그 순간 당황스럽고 불편한 감정이 들어도 증상 발현의 형태로 환자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쏟아내는 공격적 언행과 무례한 태도가 증상의 일부라 할지라도 검사 수행을 위해서 이를 무조건적으로 참아야 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환자의 공격적 태도에 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물리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기에, 임상심리사는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검사의 중단 여부를 판단해가며 진행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환자도 자신의 내적 상태를 반영한 검사 수행이 가능해지고, 평가자도 물리적 & 심리적으로 상처받지 않으며 환자를 평가하고 직업적인 전문성을 유지해갈 수 있다. 임상심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도 보호와 존중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환자의 날선 반응과 거부적인 태도, 이후 안정적인 검사 수행과 종료까지 긴장감이 높았던 검사 및 면담이 종료된 이날의 검사는, 보호자의 한 마디에 최종적으로 넉다운되었다.
"우리 애 좀 달래주지 그랬어요...!"
30살 환자를 달래야 하는 것이었나요???!!!
물론 보호자의 심정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보호자의 말씀은 검사 수행의 관계형성을 위해 좀 달래주지 그랬냐 하는 아쉬움을 담은 표현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치료와 외래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으로 이해되셨을 터이고, 그러니 약하고 과민해진 상태의 자식을 더 부드럽고 포용적인 태도로 달래주면 좋지 않았겠냐 하는 의미였을게다. 보호자의 눈에는 10살이건 30살이건 똑같이 아이처럼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더욱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하여 치료까지 받은 내 자식이니 걱정과 안쓰러운 마음은 더 커졌을 것이고,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환자의 증상과 태도에 이리저리 맞춰주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의 마음이 편해지면 증상이 완화될 것이라 기대해왔을 터이니까. 보호자분의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 진행을 위해 환자를 달래라니.. 심리검사라는 전문적인 과정의 수행에 비위를 맞추라는 요구인건가 싶은 생각에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검사 진행을 위해 환자를 달래야 하는 건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 검사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해야하는 것이지 검사를 진행하는 임상심리사를 위한 것이 아닌데 왜? 라는 의문과 그리고 이걸 왜 보호자는 당당하게 치료진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꼬리물듯 이어졌다. 더불어 라포 형성이라는 것이 비단 환자를 달래준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닌 것을, 단지 환자의 불안정한 수검 태도까지도 다 수용해야만 라포가 형성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심리검사' 라는, 이 이름에서 파생되는 기대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환자분들이 심리검사를 심리상담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내 어려움을 얘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왜 이런 걸 하느냐며 거부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왜 이리 문제를 많이 풀게 만드냐며 당혹스러움과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상담이라 할지라도 내 어려움만을 토로하고 위로받는 자리가 아니긴 하지만, 심리검사는 환자의 현재 인지능력, 심리적 자원의 정도, 자아 강도, 정서적 상태, 성격적 특성, 대인관계의 특성 등을 타당화된 도구를 가지고 측정하는 과정이기에, 환자의 주관적 호소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주관적인 어려움의 호소는 검사의 진행 시에는 우선 배제된다. 검사의 수행에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환자도 자신의 내적 상태를 투영한 반응들을 형성해갈 수 있다. 대신 환자가 경험하는 호소의 청취는 검사가 종료된 후 평가적 면담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심리검사에 대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온 환자분께는 이내 이 자리는 환자분의 어려움을 여러 검사도구를 사용하여 측정하는 검사 수행의 자리임을 설명드리고 하실 수 있는 만큼 검사에 충실히 임해주시기를 독려하면서 검사를 진행해간다.
병원 장면에서의 '검사'는 다른 장면과는 달리 수동적인 의미가 강하다. 검사를 '행하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검사를 '받는' 객체의 입장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의학적 검사 상황에서 환자는 의학적인 처치를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이다. 체혈이나 MRI, 뇌파 등의 검사를 받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검사자의 지시에 따라 손을 뻗거나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해당 검사들에서 환자의 능동성은 배제된다. 오히려 말을 줄이고 가만히 있어야만 검사의 진행이 원활해진다. 이런 수동적인 의미가 강한 '검사' 앞에 '심리' 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만들어진 '심리검사' 라는 이름은 마치 가만히 있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술적인 기대를 갖게 하는 측면도 있는 듯 하다. 미팅 자리에서 심리학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독심술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 거 같아요? 저랑 몇 마디 하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되나요?" 하고 묻던 흔한 질문처럼 말이다. 그러니 살살 달래면 우리 아이가 본인의 마음과 어려움을 말해줄 텐데, 하는 보호자의 기대도 슬쩍 붙일 수 있고, 정신과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환자가 검사하도록 그거 하나 마음을 못 달래고 움직이지 못하냐 하는 핀잔도 던질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향한 마음읽기를 환자에게 해주기를 바랬을 수도 있고... 그리고 마치 검사 독려가 임상심리사의 능력 유무인 것처럼 생각하며 평가절하하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한켠 든다.
물론 검사와 상담 등의 임상경험이 많아지면, 환자의 특성을 좀 더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를 활용하여 검사 진행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는 환자에게는 그 어떤 경력도, 수용적인 태도도 소용없다. 더욱이 이번처럼 근무경력을 묻고는 이러한 질문을 건네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질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충동적으로 의료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분명한 것은, 심리검사는 그 검사를 수행하는 개인의 참여도와 개방성에 따라 능력 발휘의 수준이 달라지고 분석의 정확성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여느 의학적 검사들과는 달리, 환자, 즉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의 능동적인 참여와 솔직성, 의식적인 참여가 필요한 검사의 고유한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 다루듯이 달랜다고 검사에 본인의 상태를 투영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일방적이고 단순한 달래기는 환자의 조종 욕구(manipulation need)만 충족시켜줄 뿐, 환자의 검사 진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상가는 환자의 이러한 검사태도를 환자의 주된 어려움의 발현 증상으로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이는 검사를 포함한 종합적인 평가 부분에서 다뤄지는 것이고, 우선 우리가 당면한 검사 진행에서는 환자의 이러한 태도는 검사 수행 및 관계 형성이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친다. 따라서 이 충동성이 조절되지 않고 자기 고집만을 피우는 환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장면이 있음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경험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아마도 이 환자에게는 심리검사 장면이 그러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심리검사는 환자의 상태를 현재 시점에 명확하게 파악하여, 환자의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증상 개선과 치료를 위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치료진을 위한 수검이 아니다. 그렇기에 심리검사는 본인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인식하고 능동적이고 수용적으로 검사를 참여하는 것이 나의 회복에 필요하다. 그러니 검사 참여의 책임을 평가자에게 전가하면서 부적절하고 무례한 요구는 하지 않으시기를, 자신의 상태를 알아가는 그 과정의 주인으로 참여하여 회복의 첫 단추를 채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