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새끼의 파란 코끼리
[금쪽같은 내새끼]의 부적절한 영향 중 하나.
심리검사실에 "파란 코끼리"를 찾는 보호자가 등장하셨습니다.
아이가 말이 늦되고 새로운 장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불안해 보이는데,
아이의 상태와 마음을 알아보고 싶다는 점이 주호소 입니다.
진료는 이전에 보셨고, 당일은 심리검사를 받으러 온 날.
검사 당일 오셔서 검사실을 보시고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 검사를 진행하냐며 불쾌해하시고 컴플레인을 하신다는 수련선생님의 얘기에 보호자분을 만나뵈러 나갔습니다.
어떤 점이 그리 불편하셨냐 대화를 해나가는데,
이렇게 좁은 곳에서 아이 검사를 어떻게 할 수 있냐,
방송에서 보던 것처럼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보호자님이 방송에서 보셨던 것을 찾으시더군요..
떠올랐습니다.
파.란. 코.끼.리.
혹 오은영선생님의 방송을 보셨냐 하니까 그렇다고 답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방송에서 나오는 파란 코끼리 같은 걸로 아이와 대화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 것은 없냐고 말씀하셔서.. 저를 당황시키셨죠..
그쵸.. 저도 봤습니다. 그 파란 코끼리..
AI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면, 아이가 마음을 술술 얘기하게 만드는 마성의 코끼리더군요.
그걸 보시고는,
'아 검사를 받으러 가면 저렇게 자기 마음을 얘기하도록 만드는 파란 코끼리가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가 봅니다.
임상가로서.. 저도 그런 파란 코끼리 여러 마리 키우고 싶습니다.. 진실로요.
그 코끼리가 말을 걸면, 아이들이 본인의 마음을 너무 잘 얘기합니다..
4시간 검사하고 면담해도 말하지 않을 법한 속마음들을 술술 말하도록 무장해제 시키는,
오픈 마인드를 만들어주는 저 코끼리,
네, 저도 검사실에 키우고 싶습니다.. 진짜로요.
파란 코끼리 같은 매개체가 진짜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그 1시간의 방송분량을 만들기까지 소요되는 뒷 작업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오시는 거겠죠..?
파란 코끼리를 찾으신다면요..
방송은 말 그대로 방송입니다.
그 1시간의 편집된 방송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에너지가 투여되었을 겁니다.
주인공인 금쪽이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보호자 및 금쪽이에 대한 긴 면담과 일상생활 관찰이 장시간 이뤄졌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심리평가와 놀이평가도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 모든 과정들을 진행되고 종합해서 증상을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1시간으로 압축되어 나오는 것이 방송일 겁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파란코끼리와 금쪽이가 만나는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도 본인의 문제를 인지하고 친밀감이 어느 정도 형성된 후에야
아이도 본인의 마음을 얘기하는 순간에 촬영이 이뤄졌으리라 짐작됩니다.
이 마저도 언어발달 지연이 있다면 제한적일 겁니다.
언어발달이 느린 6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
또래보다 언어발달이 느려서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경험한다면,
저 파란 코끼리가 등장해서 말을 건다해도, 술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파란코끼리가 등장한다고 해도..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불편감을 표현하는 거 자체가 극히 제한되니까요.
파란 코끼리가 언어발달을 일순간 가능하게 만들지는 못할 테니까요.
심리검사실은 주호소 문제에 따른 현재의 심리적 상태와 인지적 기능, 그리고 자폐나 주의력 문제 등을
표준화된 검사도구를 가지고 평가하고 분석하는 곳입니다.
물론 다양한 검사들과 더불어 환자 면담은 필수적으로 진행되나, 파란코끼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평가자가 면대면으로 면담하면서, 현재의 불편감을 탐색하지요.
성인이라면, 그래도 본인의 문제를 탐색하고 어려움을 해소하고 싶은 문제인식과 해결욕구가 있어서
그나마 본인의 어려움을 개방적으로 보고하시는 편이지만(물론 보호자의 권유에 오신 경우는 또 다르죠)
아이들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본인이 문제의식을 느끼기 보다는, 보호자가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거나 주변의 부정적 평가를 듣게 된 보호자가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가 대다수이죠.
물론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원해서 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자신의 마음을, 내적 상태를 술술 얘기하고 정리해서 보고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무리 파란코끼리가 있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의 만남동안 검사를 해내기에도 버거운 그 시간에
친밀감을 형성하고 마음을 술술 얘기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훈련된 평가자가 평가 과정을 진행하면서 라포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면담하면서 내담자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해하가는 작업이 이뤄지지요.
이 마저도 언어발달이 느리거나, 인지기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면담이 쉽지 않습니다.
면담은 언어적 소통으로 이뤄지니까요..
그러니, 언어발달이 느리거나 발달장애를 갖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많은 제한이 있는 작업입니다.
혹여나.. 심리검사를 받으러 오신다면, 그리고 심리치료 장면에 오신다면,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서 술술 얘기하도록 만드는 파란코끼리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려두고 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디까지나 방송은 방송입니다..
파란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