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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15. 2022

검색의 노예가 되다.

아버지의 입원과 동시에 처음으로 했던 것은 검색이었다.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 중 하나가 '동의하십니까'? 와 '보호자분' 이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처음이라서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돌림노래처럼 했다. 입원기간 동안 의학용어들을 단번에 기억하고 대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뒤부터 나는 내 의지를 가지고 동의하십니까? 에 대답하기 위하여 노트를 준비하고 적고 또 받아 적었다. 검색을 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체크를 했다가 의사에게 물어보고 예상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묻고 또 묻고 다시 검색하는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록되었던 노트에는 정자체로 쓰여 있는 글씨는 거의 없고 날아가는 글씨체뿐이었다.


아버지도 처음 나도 처음인 이 상황이 영원히 처음인 것만 마주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들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입원하자마자 중증환자였던 아버지를 돌볼 때 검색을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설사 검색해도 그 정보 하나만으로 안되었고 파도타기를  통해서 모르는 단어는 다시 또 검색 검색을 했다. 폐이식 또한 65세 이상은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환우회 카페에 들어가 사례를 읽어보고 보호자들이 남긴 과정을 꼼꼼히 읽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폐섬유화 폐이식 대상은 65세를 기점으로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보다 살날이 조금 더 많고 예후가 좋은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신약, 기적, 그런 것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돌보는 시간 외에 대부분을 검색을 하는데 보냈었다. 침대 아래서 검색을 하느라 얼굴보다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나의 정수리를 더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건 퇴원 후 집에서의 생활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호흡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된다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즈음은 미세먼제와 코로나로 인한 영향으로 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뉴스도 종종 보인다. 환우회 카페에 코로나의 영향으로 폐섬유화증에 대한 문의가 갑자기 늘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검색을 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검색을 많이 했던 것 중 또 하나가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매뉴얼이었다. 검색 결과 대부분 의료인이나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기으로 한 매뉴얼만 나오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자료는 없었다. 카테고리별 의료, 간병, 정책, 영양, 환자나 보호자의 심리상태 체크, 입퇴원 준비, 가정간호 매뉴얼 그리고 응급상황별 대처 사항 등 질환에 따른 기본 정보를 제공해주는 안내책자 등 그런 게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다. 산부인과에 가면 제공해주는 아기수첩처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래진료를 다녔을 때도 막상 의사 앞에 가면 할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난감한 적이 많았다.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환자 수첩 또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의사가 진료 시 의학적인 판단이 가능한 환자의 증상별 객관적인 기본 체크리스트들 말이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환자를 보살피는 방법을 간병인 여사님들께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본인들의 경험을 통해서 알려주기도 했던 당시의 간병인 여사님들은 때로는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였고 때로는 내가 간병을 잘하고 있는지 학습을 담당하고 수정해주는 나의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 과정 중에서 또 하나의 과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였다. 폐암 말기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 여사님이 그 가족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는 통화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가족들과 사전 연명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논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그 환자는 의사가 건네주는 서류에 직접 사인을 하고 며칠 후 정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내 손으로 그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병원이라는 곳이 과연 사람을 살리는 곳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집행하는 곳인지 혼란스러웠다. 무섭고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놓았고 살려고 들어왔던 최고 상급병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늘 죽음 앞에서 패배자였다. 가 그렇게 전투력을 상실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6인실의 병실에서 점점 이방인이 되어갔다.


입.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아버지의 움직임은 나무늘보처럼 주변의 시간을 늘어트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네 달이 지났다. 나중에는 티브의 화면조정처럼 지지직 소리를 내면서 아무 내용이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아버지는 '왜 하필이면 나야'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나 또한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마다 '왜 하필이면 나야'라는 원망을 원가족에게 많이 했었다. 


 아직도 우리 집 책꽂이 한 칸에는 아버지의 진료  영수증, 가족관계 증명서, 보험용 진단서, 병원 갈 때마다 챙겨 오던 리플릿 등 나의 손때 묻은 흔적들이 한가득이다. 입원부터 임종 시까지 네 달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많은 정보를 찾아서 공부를 했다. 그때의 상황을 적어놓았던 세 권의 노트를 꺼내서 차례로 읽어보았다. 그 안에는 세명의 글씨체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퍼져있다. 나, 여동생, 막냇동생 이렇게 셋이서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적어 놓은 내용들이다. 병원에 가장 가장 오래 있었던 내 글이 제일 많다. 아버지의 상태나 검색할 것들을 잊어버리전에 적느라 제대로 된 단어들은 몇 개 없고 노트 몇 장을 넘겨보면 그제야 의료용어들이 올바른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다.


지금도 나는 생각날 때마다 그 단어로 검색을 해보곤 한다. 계속 그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라는 커다란 산으로 존재했던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나는 아직도 검색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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