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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11. 2022

효도의 이분법과 아버지의 눈물

"퇴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최종 진단명과 상관없이 폐렴이 차도가 있고 산소량도 안정이 돼서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 뒤이어서 간호사가 집에서 사용할 가정용 산소발생기 안내책자를 주었다. 처방받은 산소 처방전으로 대여업체와 통화를 하면 된다고 한다. 이 생소한 물건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행히 업체의 담당자는 친절하고 신속하게 앞으로의 일정을 조율해줬지만 한편으로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나를 침범했다. 병원에서 안내받는 대부분의 내용은 항상 나를 당황하고 경직하게 만들었다. 


퇴원 전날 마지막 회진을 온 의사 선생님과 무거운 내용이지만 꼭 들어야 할 주의 사항들을 노트에 적었다.

1. 가정용 산소발생기 용량 잘 조절할 것 

2. 사람 많은 곳 피하기

3. 먼지 나는 곳 가지 않기

4. 위급 시 응급실로 바로 갈 것

5. 목욕은 긴 시간 불가

6. 체위변경 신경 쓰기

7. 무엇보다도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우선으로 한다. 


듣는 내내  나의 입에서는  네. 네.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폐렴으로 입원해서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 치유가 어려운 특발성 폐섬유화증 진단이 내려졌다. 처음엔 고용량 산소치료부터 시작했고 그다음 단계별 처치를 통해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까지 코에 산소를 이동해주는 줄의 굵기도 달라져갔다. 


퇴원을 하라는 말에 입원 당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들었던 그 무서웠던 상황들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퇴원의 의미가 완치가 아닌데도 자꾸만 희망을 품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의 투병 기간 중 몸의 상태가 좋은 어떤 날들이 주로 그랬다. 그런 모습을 본 여동생과 막냇동생도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좋은데 앞으로의 일들을 믿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에 아버지는 폐렴, 기흉, 저산소증으로 응급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결국 폐렴이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퇴원수속을 밟고 보니 다음 외래가 2주 후였다. 그만큼 상태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병실을 떠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산소 사용이 가능한 129 차량으로 그렇게 첫 번째 퇴원을 하게 되었다.


시골집에 내려와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방문을 밀어냈다. 대문에 안내문을 붙여 양해를 구하고 집안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엄마는 그동안의 맘고생을 수척해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자리를 비운 안방의 아랫목에는 의료용 침대가 아버지를 대신 맞이했다. 가정용 산소발생기 업체 직원도 제시간에 도착해 우리에게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나와 엄마 그리고 막냇동생은 작동을 직접 해보며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다. 외부인이 모두 사라지고 아버지는 그제야 집안의 공기를  본인 앞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다시는 못 오는 줄 알았다며 울먹이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겁먹은 어린아이들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천천히 본인의 집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기대어 갔고 불안을 견디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시간이 흐르던 오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연장들로 가득한 헛간을 정리하는 중이다. 그동안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지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다른 자식들 모두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동선을 위해서였지만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송골송골 맺혀갔다. 나중에 직접 정리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은 작심하고 나선 아들의 효도를 멈추지는 못했다.


 평생의 손때와 숨결이 녹아있는 아버지의 살점 같은 존재들이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당으로 꺼내졌다.  아버지만의 질서가 부여된 창고 속의 연장은 아버지의 삶이었고 몸의 일부였다. 연장의 손잡이에는 아버지의 지문이 이식되어 있었고 자식들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고 그들이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줬을 것이다. 주인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던 연장들을 일제히 깨우던 그날 익숙했던 살 냄새가 아니어서 당황했겠지.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한참 후에나 알았을 것이다. 

부모님, 아빠의 창고


모든 것 하나하나에 생(生)과 사(死)의 의미로 해석을 했을 아버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창고는 정리되어갔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말문을 열면 상황이 시끄러워질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옆에서 휴대용 산소발생기의 모터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지극한 효심으로

한 사람(엄마)은 아들 덕분에 창고가 깨끗해졌다며 만족했고

한 사람(아빠)은 내가 건강했을 때 정리했어야지 하며 슬퍼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쓰러진 다음에 고치면 무슨 소용이냐는 물기 머금은 혼잣말을 병실에서 오래도록 쏟아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린 불효에 불효를 저지른 것이다. 아니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를 위한 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정리된 그 창고의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채 떠나셨고 결국 아버지의 부재로 연장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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