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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04. 2022

아버지가 작아지고 있다.

아버지와 나의 혼잣말이 늘어가는 동안  병실의 시간도 그만큼 흘러갔다. 같은 공간이지만 우리 둘의 세상은 달랐다. 아버지의 증상을 적은 노트가 그것이다. 처음 몇 장은 몇 줄 없는 내용이지만 글씨가 다 누워있거나 제멋대로이다.  그때는 의료진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이해를 해서 적은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노트의 줄에서 벗어나지 않고 내용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조바심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했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환우회였다. 입퇴원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실질적으로 마음에 위안이 되는 존재가 있었다면 환우회와 간병인 여사님들이었다. 환우회는 다양한 증상들에 대한 실절적인 정보를 얻는 곳이었고 간병인 여사님들은 병실의 생활과 환자 케어에 대한 이것저것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입원으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으로 환우회 카페를 찾아서 가입하는 일이었다. 방송에서 가끔 의학다큐를 보면서 환우회를 접했던 것 같다. 그들의 절절함이 느껴졌지만 타인의 경우였기 때문에 화면 밖에서 시청자의 입장으로 슬픔과 애잔함에 공감을 했을 뿐이었다. 막상 나의 상황이 되었을 때는 의학적 지식과 정보가 낯설기도 했고 무얼 먼저 해야 할지도 몰라서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폐섬유화증과 간질성 폐렴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을 시작해서 가입한 그곳에는 같은 상황의 본인(환자)과 보호자들의 슬픔으로 이미 가득했다. 그곳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씩 둘씩 글을 읽어갈 때도 환자의 사망으로 슬픔이 더 짙어지기도 했다. 폐이식을 대기 중인 분들이 쓴 글 중에 '천사님'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도와주세요'라고 시작되는 글로 환우회의 보호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을 대부분 중복 질문이었다. 먼저 그 안의 구성원이 된 분들에게는 중복 질문이었지만 처음 가입한 사람에게는 간절한 첫 질문이었다. 무작정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인 것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기에 이곳은 나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말기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살피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어도 봤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합병증으로 폐암 등 무서운 말들만 보고 말았다.


아버지를 돌보며 얻었던 정보들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얻었고 특히 가정방문간호나 휴대용 의료용 산소통, 폐에 좋은 영양제등은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폐섬유화로 시작해 합병증으로 현재는 폐암 말기라고 했다. 모든 진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투병 중이라며 나에게 어쩌면 좋겠냐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환우회를 알려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주었다. 알려줘서 고맙다는 친구의 울음은 곧 나의 눈물이었고 친구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었다.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그곳의 카테고리 중 마지막으로 살펴봤던 곳이 있었다.  '하늘에 보내는 편지'라는 곳이었는데  가족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이 썼던 편지였다. 곧 그 일이 내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저절로 글을 읽게 되었고 떠나보낸 자들의 심정을 미리 체험을 하고야 말았다. 그중에도 다 소용없으니 맛있는 것 많이 드시게 하고 이야기 많이 하라는 말에 더 이상 읽기를 멈추고 아버지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아보았다. 되도록이면 그런 일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주로 아버지가 잠든 시간에 몰래 환우회 글을 살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낮에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실행했던 두 번째가 아버지에게 묻고 묻고 또 묻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일상의 기능을 상실해 갔다. 보통의 안부를 물을 수 없고 평범하고 소소했던 말들조차도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야 하는 것처럼 조심조심 물었다. 말의 온기를 불어넣어야 했고 의사의 사실적인 언어를 전달할 때 내 목소리에 묻어있는 물기를 털어내야 했다.


또 어느 날은 아버지의 기운 없는 말에 힘을 실어주어야 했다. 또 어느 날은 이런 말도 물어봐야 했다. 퇴원하면 제일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버지는 한 곳이 아닌 전국일주를 해보고 싶다고,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렇게 자유롭게 다녀보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병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꼭 그렇게 하자고 대답을 했지만, 아니 여행을 꼭 가려고 했지만 퇴원 시 여행은 자제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내 안에 담아두고 묻어버렸다. 결국 부모님과의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첫 퇴원 시에 한 시간 동안의 주변 드라이드가 아버지와 함께한 산책같은 나들이의 마지막이 되었다.


또 어느 날은 이런 혼잣말을 자주 하곤 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이제 좀 살 만하면 죽는다더라' 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은 아니었다. 먼 타지에서 이사와 그곳 동네 사람이 되기까지 동네에서 제일 가난했고 텃세에 시달려야만 했던 집이었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 한편에는 무슨 일이 있을 적마다 우리 집을 찾아와 트집을 잡았던 사람들이 존재해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땐 현실적인 문제로 바쁘고 고단한 삶을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얼른 커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한 어른의 기준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결과론적으로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어른 실천 공약은 이행되지 못한 채 수 십 년째 표류 중이다. 나 역시 먹고 사니즘에 저당 잡힌 채로 그저 나이 먹기만 바쁜 어른이 되어버렸다. 불효는 현재 진행 중이다.


부모

그렇게 내가 공약을 실천 못하고 있는 사이에 부모님은 악착같이 돈과 전투를 벌이고 때로는 패잔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승리하기도 하면서 동네 지도의 일부를 아버지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로 동네 사람들의 이유 없는 무례함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농사채가 늘어갈수록 부모님은 고되다는 말보다 재미있다 라는 말을 여러 번 하고 또 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던 울 아버지, 11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늘 용돈을 주면서 '고생은 했지만 이런 게 행복이다'라고 늘 말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쓰러지기 이 년 전부터  '난 나쁜 짓도 안 하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이제 좀 살 만하면 죽는다더라, '라는 말을 자주 엄마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무엇인가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병실에서 뱉어내던 그 혼잣말이 이 년 전부터 아버지 곁을 서성거리고 있던 거였다. 그런 말을 한 날의 아버지는 더욱 긴 밤을 보내고는 했다. 밤이 돼도 불을 끄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해하는 아버지 곁에서 나의 불안함을 잠재우려 상실의 시대를 아주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지 두꺼워서였고 시간을 보내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 이참에 이 책을 한 자 한 자 분해해보자 했던 것인데 페이지가 나아갈수록 아버지를 이들이 데리고 가면 어쩌나라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이 아버지에게 말을 걸까 봐. 나는 노르웨이 숲(상실의 시대)을 왜 가지고 왔을까. 가끔 아버지가 천장에 무언가가 있다며 멍한 시선으로 한 곳을 응시할 때마다 그곳에 우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 어두침침한 세계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나의 아버지. 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자식을 아끼는 사람이었고, 이 세상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했으며 하루 두 번 강아지 순이와 온 동네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산책하는 걸 사랑했고, 믹스커피와 밤막걸리, 누룽지 사탕을 좋아하는 소박한 욕심의 소유자였다. 그런 아버지가 희망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난치병이라는 정거장에 강제하차를 당했다. 이것은 누구의 뜻이란 말인가.


나의 영혼의 후원자에서 나의 애틋한 손가락이 되어갔다. 아버지가 자꾸 작아지고 있다.


▷ 환우회 : 비슷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및 가족들의 모임
▷ 찾는 방법 : 다음이나 네이버 카페 검색창에 "폐섬유화"를 입력 후 검색하면 해당 질환 관련 카페가 나열된다.  

▷ 우리가 가입했던 폐섬유화증 극복을 위한 모임 ( https://cafe.naver.com/lunghealth)
- 폐섬유화증, 특발성 폐섬유화증(IPF), 간질성 폐질환 환자 및 가족들의 모임이며 투병기, 폐이식, 신약 임상정보, 병원정보 및 현직 호흡기내과 의사의 게시글도 확인 가능하다.

한국호흡기장애인협회 (pulm.or.kr) : 호흡기 질환 환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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