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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23. 2022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아빠가 그리고 부모가 되어 주셔서 ...

평소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죽음이 완벽하게 나의 일이 되고 몇 개월이 지났다. 아버지 임종 당시 연명 중단 서류에 사인을 했다는 그날의 기억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사전에 가족들이 의논을 마친 상태였지만 그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될 당사자가 나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도 가족과도 이런 나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연명치료 포기라는 단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환우회 카페에 방문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피고 나의 슬픔을 위로받는 것이었다. 아프신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도와주세요 제발' 하는 글에 경험담을 적어주어서 정보를 알아보는 시간을 많이 단축했었다. 진정성 있는 공감과 위로를 아낌없이 나누었던 이곳을 나는 아직도 방문한다. 그중에 환자가 사망을 하면 보호자 대부분 탈퇴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작성했던 글과 정성스레 답을 해주신 분들의 마음까지 잊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오가면서 나도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도 아버지가 곁에 없는 이 상황이 믿을 수 없었다. 글을 올리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우회 카페에서 글을 보았는데 우리 이야기 같아서 내가 쓴 글 맞냐고 묻는다. 그렇다는 대답에 읽는 내내 자책하는 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고 곁에 없는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러게 아버지 아프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이 환우회 카페 가입하는 일이었어"라고 나는 대답했다.

" 정말 많이 위로받고 도움받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분들께 너무 고마웠던 것 같아" 라면서 동생도 훌쩍인다.   


동생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사연이 내일 같아서 탈퇴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리우면 내가 쓴 글을 보면 되겠다고 말하는 동생의 들썩거리는 어깨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아버지 덕분에 많은 일들이 있었네"라는 혼잣말과 함께 오늘도 환우회 카페에 출석을 해보았다. 슬픔을 꾹꾹 누르면서 썼던  '하늘에 쓰는 편지' 카테고리에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끝까지 쓰고 싶지 않았던 편지


부모님이셨던 친정아빠가 8월 3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편지였지만 써야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네요.     


올해 4월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고, 그때부터 응급실을 통한 입. 퇴원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집 근처에 3차 병원이 있는 관계로 아버지를 모셨고 멀리 지방에 있는 여동생은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달려와주었고 5형제 중 둘째인 저와 여동생, 그리고 막냇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간질성 폐렴, 특발성 폐섬유화증으로 진단을 받았고 결국은 폐렴으로 떠나셨습니다. 4월 초 응급실에서 의사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족에게 전하라는 사형선고를 내리더군요. 저는 일주일 전만 해도 건강했는데 믿을 수 없다고 소리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에 올라가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매일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있는 거라고는 가족 앨범을 넣어드리고 병실밖에 큰딸이 대기하고 있다고 전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기적적으로 일반 병실로 내려오셨고 짧지만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을 저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못 해 드린 것만 생각이 난다고 하더니 그중에 제일 후회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본인이 마지막 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실대로 이야기를 못했다는 것,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괴로워하느라고 유언조차 못하시고 차라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연명 중단을 안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감만 듭니다.


아빠가 쓰러지시기 전 3월 말 즈음 저희 집에 왔을 때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셨지요.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엄마 아빠가 이만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다 자식들 덕분이라며 고맙다"라고요. 그때 들었던 불안한 예감은 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 응급실에서 연명 중단한다는 싸인을 떨면서 작성하던 그날 이후로 저는 공황상태에 있습니다. 괴로워하는 저에게 한 친구가 "고인이 가장 아끼는 사람만 임종을 지킬 수 있다며" 기운을 내라는 말을 듣고 간신히 멘털을 수습 중입니다.     


아버지의 손. 발톱을 정리해드리고, 목욕을 해드리고,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함께 추억을 회상했던 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호흡이 힘들어 괴로워하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못 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저에게 "이보다 더 어떻게 잘해주냐며 괜찮다"라고 말하시던 아버지, 아직도 저의 손을 꼭 잡아주던 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임종을 지킨 저에게 입관을 못 보게 하는 신랑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모습을 한번 더 보았지만 화장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괴로워 지키지 못했습니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 탓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말을 하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이 시간이 약이라고 위로해주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시다면 환자분과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그게 힘들면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드리세요. 이제 쓰고 싶지 않은 편지의 마지막 줄입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젠 꿈 속에서 뵈어요 아빠

글을 다시 읽고 보니 고마웠던 분들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마른 들판에 서서 말라가는 나무라고 생각했고 너무 외로웠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주위에 나와 아버지를 염려하고 격려해주었던 사람들을 정리해보니 정말 많았다. 그들의 존재로 인해 고목 같았던 내 마음에 고마움이란 새순이 돋아나는 것 같다.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운 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달이 되기를 바라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래본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두서없이 묻는 질문에도 진심으로 댓글을 달아주시던 환우회 회원님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어찌 돌봐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나에게 머리 감 기는 법, 몸을 씻기는 법, 욕창 방지를 위해 체위를 변경하는 법 등을 알기 쉽게 알려주던 병실의 간병인 여사님들은 저의 어머님이나 마찬가지였답니다. 같은 병실에 있던 아버지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함께 해주시는 에스더 님, 그리고 나의 빈자리를 대신해 우리 집으로 반찬을 날라주던 동네 친구들, 집에서 간호를 하는 우리에게 많은 응원과 지지를 해주던 가정간호 방문 간호사님들, 같은 경험을 공유해주고 마음산책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들리라고 해준 미용실 원장님의 응원,  아버지 모시느라 수고했다고 건네는 담당 호흡기내과 교수님의 진심 어린 위로, 요양병원 대신 가정간호의 선택을 응원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해주던 호흡기 병동의 수간호사 선생님, 마지막으로 129 사설 응급차를 타고 이동할 때에 호흡이 힘든 아버지를 위해 더 세심하게 운전을 하고 상태를 살펴주셨던 응급대원분들, 더불어 응급차에게 길을 내주던 도로의 모든 운전자분들께 모두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여전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아빠

하늘나라로 바로 발길을 돌리시지 않고 우리와 4개월을 함께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우리를 보듬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여동생과 막냇동생 하고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버지 덕분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 생은 딸로서 돌봐드렸지만 항상 옆에 있어드리지 못했습니다. 다음 생애는 아빠 아들로 태어나서 곁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제 그만 저는 아빠가 좋아하던 믹스커피 한잔 하러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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