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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23. 2022

이제 각자의 자리로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경험은 남편의 외할머니를 제외하고 늘 방문객의 입장이었다. 이번엔 거꾸로 타인들을 맞이하면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아무리 울고 불고 한들 떠나신 분의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으리라. 장례식을 치르고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유품을 정리하고 며칠 후 나는 몸과 마음 모두 탈이 나버렸다. 병원 대신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뵈러 납골당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비었던 자리들이 하나둘씩 주인을 맞고 있었고 그 위에 가족들이 남기고 간 슬픔의 흔적들이 가득 묻어있다. 우리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즐겨 찾던 믹스커피를 들고 '아버지 드세요.'라며 눈물 섞인 커피를 마셨다. 나는 그런 동생 곁에서 조용히 눈물을 마셨다. 그러는 사이 납골당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리고는 우리보다 더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보았던 책의 일부분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한식날 아버지 무덤에 성묘 가서도 나는 울지 않는다. 내 여동생들도 이제는 다들 늙어서 울지 않는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오는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광야를 달리는 말 일부(김훈 / 라면을 끓이며 책중에서)


'새로 들어오는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울고 있는 저 사람들도 우리도 이 글의 일부분이고 당사자인 셈이다.  글 속처럼 더 이상 울지 않을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싫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옆 사람들의 애도에 밀려 우린 잠시 밖으로 나왔다. 로비에 마련해놓은 재단 위에 여기저기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들이 보였다. 그중에 하나가 나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아마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가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작은 메모지에 빼곡히 쓰여 있던 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아프세요. 고쳐주실 거 아니면 어머니도 모시고 가세요 제발'이라는 글과 '아버지 사랑합니다'로 마무리된 편지였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현실은 별게임을 알 수 있다. 슬픔보다 현실이 더욱 무거운 게 사실이니까. 떠나신 분의 돌봄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돌봄이 현실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후로도 우린 틈 나는 대로 아버지를 만나러 다녀왔다. 그 덕에 여동생과 저녁 산책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서 우리와 4개월을 함께 보내주고 가신 건 아닐까'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이야깃거리를 주고 간 게 아닐까 하는 말을 많이 했다. 우리가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만 나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월세집을 정리하고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기기 전까지 우리는 산책길에 늘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주로 나는 '이곳에서 호흡이 힘드셨는데 그곳에서만큼은 맘껏 숨 쉬며 하늘나라를 산책하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고, 동생은 '숨 쉬는 게 힘드셔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그곳에서만큼은 맛있는 음식 많이 드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산책 끝에는 캔커피를 사서 '아버지가 커피믹스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고는 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우리의 수다는 아이들의 '엄마 어디야? 언제 들어올 거야?'라는 호출 전화가 와야 간신히 마무리가 되고는 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살피는 신랑의 시선이 따라다녔고 덩덜아 아이들도 ”오늘도 이모랑 할아버지 이야기하면서 또 울었어? 하면서 나의 부은 눈을 안쓰럽게 바라봐 주기도 했다. 


지금은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동생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그 아파트 앞을 지나갈 때면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저녁 무렵 동생과 함께 걸었던 산책길을 나 혼자 걸으면서 피식 웃기도 하고 훌쩍이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나누었던 그 벤치에는 바람과 낙엽들이 옹기종기 몸을 부대끼며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끝자락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을 보면서 부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던 나. 그분들을 그냥 더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혼잣말도 해보고는 한다. 아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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