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다.
아버지 생각에 티브이 아래쪽 서랍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착용하고 있던 보청기가 아직도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유품은 모두 소각을 했지만, 차마 모든 흔적을 지울 수가 없어서 남겨두었던 그 보청기.
정상적인 소리를 얻지 못해서 보청기를 통해서만 소통이 이어지던 아버지의 또 다른 세상.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본 그 세상 속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텔레비전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청력이 좋지 않은 탓에 양쪽 귀 모두 보청기를 했던 아버지는 텔레비전 소리를 최대한 크게 해놓고는 했었다.
잠이 들어도 티브는 켜놓은 채로 잠이 들어서 우리가 전원을 끄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람들과의 양방향 소통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티브이 속 세상에 귀를 기울이셨던 건 아니셨을까?
티브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버지의 친구이자 위로였다는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평소에도 늘 대화를 피하시고 전화 통화도 잘 안 하려고 했던 아버지는 사실 대화가 하고 싶으셨을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나는 왜 항상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속상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한 마음과 함께 살며시 티브이 전원을 켜보았다.
보청기를 꺼내서 티브 위에 올려놓고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볼륨을 최대한 올려보았다. 집안을 가득 채우는 소리.. 시끄러워서 귀가 아팠다. 서서히 볼륨을 줄여본다. 점점 작아지는 소리에 귀를 집중해 본다.
혹시 텔레비전 소리가 보청기를 통해서 아버지에게 전달이 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리고 다시
티브를 시청하고 있던 아버지 뒷모습이 떠올려 본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과 함께 다녔던 곳을 다시 가보면서 추억을 회상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럴 곳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방식은
그저 아버지가 좋아하던 믹스를 마시면서 사진 속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거나
티브이 볼륨을 최대한 틀어놓고 아버지 뒷모습을 회상하거나
함께 산책을 다녔던 논둑길을 뒷짐 지고 걸어가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거나
비닐하우스 옆편에 놓인 아버지의 은신처에서 주무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들이 전부일뿐이다.
그래도 보청기가 있기에, 오늘은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보련다.
임종 시에 귀가 제일 늦게 닫힌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들렸던 말은 무엇이었으려나. 설마 나의 울부짖음은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사랑한다 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해 드린 못난 딸이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무전기라고 생각하고 들고 있던 보청기에 말을 걸어본다.
"아버지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아버지 정말 사랑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