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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Aug 19. 2022

친정에 머무는 동안

친정에 머무는 동안



시간 나는 대로
 여동생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여행 대신
근처를 나들이 삼아 드라이브를 했다.

내가 머물렀던 그 시절과 달리
친정집 주변은
기억 속 풍경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찍었던 풍경사진 속 주택가는
이제는 새로운 도로에 흡수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환경의 변화가 있었지만
또 하나의 변화가 진행 중이다.

바로 인구 소멸 지역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작년에 우리나라 인구 소멸 지역이라는 통계 자료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한 적이 있다.

경북 지역과 그 외의 지역 안에
친정동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는
지금의 이런 인구절벽이 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우리만 해도 5형제
동네의 가구원 중에는 그 이상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두 분 중 한 명만 계시는 집이 대다수고
두 분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만 어쩌다 오가는 그런 집들이 많다.
젊은 세대들이, 어린이 세대들이 보이지 않음이
늙어가고 비어 가는 마을의 기운일 것이다.

어쩐지
그 노쇠한 기운이
우리 엄마 기억까지 점령을 해버린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기억과,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장소,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경험을 엄마에게 드려도
그 재미를 즐기지 않고, 저장하지도 않은 채
엄마는 요즈음 자꾸 옛날이야기만 꺼내고 계신다.

우리 오 형제가 크면서 났던 크고 작은 소리들
엄마가 처녀 적 머물던 고향 이야기
무일푼으로 지금의 동네에 들어와서
온갖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와의 기억이 있던 장소 이야기를
물기 묻은 목소리로 매일같이 반복하셨다.

여동생과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달래려
그중에 몇 군데를 정해서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사식당.
엄마는 분명 뷔페라고 했는데 와보니 기사식당이었다.
1인당 8000원.
나는 자리를 잡고 음식을 담아 엄마를 드리고
실내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버지가 저기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목이 메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 역시 몇 숟가락 드시다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밥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우리의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거꾸로 부작용이 나버리고 말았다.

밥을 먹으러 갔을 뿐인데,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아버지를 만나느라
나중에는
눈이 뻘게진 채로 식당 문을 나섰다.



무거운 공기가 가득 들어찬 차 안에서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엄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그 동네 마트에 들러보았다.


이것저것 장 바구니에 담고서 마트를 한 바퀴 돌아보던 중

한쪽 편에서 나를 보고 방긋 웃는 쫀드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추억의 불량식품.

쫀드기와 호박과 꿀이 들어간 젤리, 호박맛나 앞에서

여동생과 함께 두 개를 사니

세개를 사니 하면서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우리와는 다르게

주름 가득한 얼굴, 새카만 피부색,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옆에서 멍하니 서있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그 옛날 흑백 티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친정엄마는 그 시절 엄마의 부모님의 나이대를

나는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의 나이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무렵

어떤 모습으로 서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고

그 사이 잠이 드신 엄마의 고개가 옆으로 꺾인 줄도 몰랐다.


나의 어깨를 엄마의 고개에 내드리고 잠드신 얼굴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건네 보았다.


엄마, 오늘 우리와 함께 갔던 그 장소를

꿈속에서라도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마주 앉아

식사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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