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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Dec 06. 2022

나는 밥이 싫어졌다.

1인실에 도착을 했다. 호흡기 병동이 아닌 암병동이다. 아버지가 지방의료원에서 내성균 감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다른 환자에게 감염이 될 수도 있어 1인 격리실을 배정받았다. 3번 항문을 통한 샘플검사에서 정상이 나와야 일반병실로 이동이 가능하다. 호흡기 병동엔 1인 격리실이 없어서 결과가 정상이 나올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곳 병실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비닐 가운과 장갑 착용이 의무였고 하루 한번 소독은 필수였다. 출입을 하는 사람을 통해 다른 환자에게 옮기면 안 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2중 관리를 해야만 했다.


입원기간 내내 격리라는 의미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나누어주고 싶은 아버지의 인심을 말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전염의 불씨가 될 수도 있어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이유 따위는 베풀고 싶은 79세 노인의 심기만 불편하게 할 뿐이었다. 아마도 본인을 잘 돌봐달라는 작은 마음의 뇌물이었을 텐데 말이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기본적인 안내를 받는 것만으로 아버지와 나는 진이 빠져갔다. 날개에 상처를 입고 공포에 떠는 작은 새처럼 변해버린 아버지를 얼른 편안하게 해드리고픈 마음인데 이번엔 온갖 장치들이 아버지를 가둬버린다. 침대 주위로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오른손가락엔 산소를 체크하는 센서, 왼쪽 손은 링거, 코에는 산소호흡기 줄에 포위를 당한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장치가 코의 호흡기로 연결이 되어서 모든 생활이 침대에서만 가능했다.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실은 깔끔쟁이 아버지에게는 없어야 하는 일들 중 하나였다. 속상해하는 아버지를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는데  침대 앞에 서서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투병 기간 내내 대변만큼은 침대를 벗어나기를 원해서 가정간호시 움직임이 가능했던 기간에는 화장실을, 그렇지 못한 때는 이동용 변기를 구입해서 사용을 했다. 1인실이었지만 아버지의 영토는 침대뿐이었다. 그 사실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을 수 있는 자리만큼이었다. 결국엔 죽어서도 그랬으니까. 아니 납골당이니까 더 줄어든 거겠지.


일반병실의 첫날이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잠을 깊이 못 들고 가위에 눌린다. 이곳에 내려왔지만 불안함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의 아침은 아직 열리지 않았는데 병동은 아침을 맞는다.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긴장감을 몰고서 분주한 발자국 소리들과 함께 병실로 침입을 한다. 나의 평화는 병실 문이 닫힐 때만 가능하고 아버지의 평화는 잠을 잘 때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평소에 덜렁 대마왕이었던 나는 최선을 다해 덜렁 거림에 밀리지 않도록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아버지의 불편함을 최소화하여 평화를 확보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래야만 했다.


아침 9시경 회진시간에 호흡기내과 담당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호흡기 병동 회진을 하고 오기 때문에 조금 늦을 수도 있다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좀 어떠냐고 묻는다. 그 물음에 대답 대신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반대로 의사에게 질문을 하는 아버지. 식사 많이 하시고 기운 차리면 그때 가능하다고 답변하는 의사. 그 목소리에는 계면쩍음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러 가지를 체크하고 병실을 나서는 의사와 본격적인 대화는 복도에서 이어졌다.


중환자실 담당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나에게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한다. 폐섬유화 지연 약을 처방할 예정이며 본인에게 병명에 대한 이론적인 의미를 전달했냐고 물어왔다. 가족들과 상의해 보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어찌 내 입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 아빠의 마음이 부서질까 걱정이다. 의사가 다녀간 후로 하루 종일 아버지는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거 같다.


4일째다. 문자 알림음이 온다. 나의 카드로 딸은 시장을 본 모양이다. 취업준비를 하기도 바쁜데 엄마의 부재를 아이가 채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느라 신경을 못써준 탓에 항상 부채의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잘 키워졌으니 이번에는 자기들 차례라며 말하는 아이들에게 탕감할 수 없는 채무가 쌓여만 간다. 미안하고도 고마운 아이들이다. 마파두부를 해서 저녁에 들를 테니 필요한 물품을 적어 보내라는 말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꼭 챙겨달라고 강조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정신없이 흐르다가도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려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의 수면제 대용으로 말이다.


저녁에 가족들의 방문에 기운을 좀 충전한 나는 아버지도 잠을 푹 자서 우리 둘에게  순조로운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래보았다.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에게 모처럼 편안한 밤이 찾아와 주었다. 낮에는 산소포화도가 안정적이지만 밤에는 측정기의 경고음이 몇 번이나 울려서 안정적인 수치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런 날 다음에는 아버지는 어김없이 식사를 끝내지 못했고 덩달아 나도 밥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밥뿐이었을까? 매일 고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본 체크들과 채혈, 호흡기 치료, 채혈침에 의한 혈당검사 등은 아버지의 평점심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무기들이었다. 당뇨는 없었지만 링거로 투여되는 치료제에 당성분이 들어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믹스커피와 누룽지 사탕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버지에게는 먹을 수 있는 양조차도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속상해했다. 그럴 때면 몰래 더 드리고는 했는데 그때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다음날 간호사에게 눈치를 받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활기를 불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재활치료 담당자였다. 붙임성 있게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잘하고 있어요. 다리 힘이 좋아요 라는 말로 아버지의 웃음을 담당해 주었다.


산소포화도의 경고음, 불면, 식욕저하,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들과의 숨바꼭질, 그런 날들이 한동안 이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원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열심히 설명을 해야만 했는데 나중에는 의례적인 말들에 지쳐서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애써 목소리에 온기를 끌어모았지만 노력으로만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엄마와 형제들에게 걸려오는 영상통화를 차단하느라 애를 먹었다. 본인조차 낯설고 힘든 이 상황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 같은 당부 때문이었다. 호흡기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말 때문에 영상전화가 걸려오면 복도에 나가서 1차적으로 통화를 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바꿔주고는 했다. 가족 단톡방에 수 없이 공지를 했음에도 영상으로 걸어서 화가 많이 났다. 그중에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 진격의 거인 같았다. 엄마도 분명 내 부모지만 이럴때는 너무 힘들기만 했다.


나는 되도록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 동안 외부에서 따라오는 궁금증을 차단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말들이 있었다. 그래도 고비를 넘겼으니 좀 지켜봅시다. 이 병은 희소병으로 아직까지는 치유약이 없습니다. 맛난 거 많이 드시고요 라던 의사의 말, 아버지 맛있는 거 먹으면 기운 차릴 수 있대요 라는 나의 제일 무책임 한 말, 기운내고 밥 잘 챙겨 먹고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해, 라는 그런 말들이 자꾸만 불편해졌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는 말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점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내 주위를 서성거리는 말들 중에서 밥 잘 챙겨 먹어라는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밥이 더 먹기 싫어질 뿐이었다.


아버지는 잠도 못 자고 밥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는데 나에게 밥이 뭐라고. 그 말의 후유증으로 나는 밥이 더욱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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