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장 수집가 Jan 30. 2024

딸이 회사로 컵밥을 보내왔다.

거꾸로 육아일기

얼마 전 재취업을 한 나를 위해서 딸은 매일같이 '엄마 뭐해'라고 안부를 묻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물어오는 말은


" 엄마 밥은?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였다.


그때마다 나는 먹었던 메뉴를 카톡에 적어주고는 했는데, 어느 날부터 컵밥이란 단어만 보이게 되자 왜 나가서 안 먹고 컵밥을 먹는 거냐고 궁금해했다. 처음 며칠만 컵밥을 먹는 줄 알았는데  계속 컵밥을 먹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거냐고 캐묻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십 분이라도 산책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루틴이 이어져야 하는데, 지금 근무하는 지역은 점심시간이 빠른 회사들이 많은지 12시에 나가면 식당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하는 날이 많아서 왔다 갔다 하면 한 시간이 홀랑 날아가버리곤 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오후 업무를 시작하다 보면 소화도 잘 안되고 몸과 마음이 둔해지는 느낌조차 드는 것 같아서 회사 주변을 둘러보다가  20분 정도 걸을 수 있는 공원 산책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밥시간을 줄이는 대신 산책을 선택했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첫 번째도 즐거움이요. 두 번째도 즐거움이다.


그런 연유를 딸에게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그날도 어김없이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가는 중이었다.


딸 : 엄마? 오늘은 뭐 먹었어?

나 : 황태 콩나물 국밥 먹었는데

딸 : 그래? 오늘은 나가서 먹었어?

나 : 아니 컵밥 먹었는데

딸 : 왜 나가서 안 먹고 왜 컵밥만 먹는 거야?

나 : 그냥

딸 : 혹시 돈이 없어서 그래? 그 동네 밥값 비싸서 아끼려고 컵밥 먹는 거야?

나 : 아니야. 그런 거

딸 :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용돈 더 줄게 그걸루 나가서 사 먹으면 안 돼?


그렇게 그냥이라는 나의 대답이 딸의 신경을 건드리는 지도 모른 채, 점심으로 컵밥 먹었다는 대답만 열심히 해주던 어느 날이었다.


딸 : 엄마네 회사 주소가 oo빌딩 708호 맞지?

나 : 응 맞는데 주소는 갑자기 왜 묻는 거야?

딸 :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나 : 뭐야, 엄마 궁금하게


대화가 그렇게 끝나고 며칠 뒤에 딸이 보내온 두 개의 택배가 도착을 했다.  그 박스를 열어보니 여러 종류의 컵반(컵밥)과 햇반, 김, 그리고 메추리알 장조림등이 딸아이 웃는 얼굴처럼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딸에게 택배가 도착했음을 알려주자 마음대로 골라서 보냈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맛있게 먹으라는 아이의 문장에는 무언의 걱정이 묻어났다. 아 엄마의 이 눈치 없음이란...


그제서야 나는 제대로 이유를 설명해 줬다. 돈이 없어서 컵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산책이 필요했다는 말과 진작에 말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뾰로통한 말투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엄마가 그렇다니까 존중을 한다는 딸아이에게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엄마에게는 네가 보내준 컵반이 제일 맛난 음식'이라는 아부도 빼먹지 않았다.


그 뒤로 아이는 뭐 먹었냐는 질문 대신 산책 잘 다녀왔냐는 말로 바뀌었다.


딸아이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지만, 산책이 주는 만족도가 매일매일 커지고 있기에 당분간은 산책을 지속하고 싶다. 


오늘도 딸아이가 보내온 컵밥 하나를 먹고 

오늘도 즐겁게

오늘도 느긋하게

오늘도 편안하게

오늘도 자유롭게 산책속으로 떠나볼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잣말의 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