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는 최소한의 복지가 필요하지만, 있는 사람에게서 강압적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회적 환원을 자발적으로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등이라는 것이 고정된 사이즈의 상자에 다양성을 재단하여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적당한 상자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그 상자를 더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던 그 상자를 잘 관리하지 못해 상자가 찢어지던 그것은 개인의 창조성과 열정, 의지에 맡겨야지 잘 관리하지 못한 자에게 새로운 상자를 주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낳게 된다.
한 정권의 방침이 계약직을 모두 정규직화하여, 그 시점에서 계약직으로 있던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었으나,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취업 지원자들에게는 소위 현실을 인정하게 된 시절이 있다. 역세권에 주택은 청년도 필요하지만, 청년 외 다른 연령의 사람들 모두 필요한 입지이다. 대학원생에게 출산으로 인한 논문 작성 기간의 연장은 출산 당사자인 여성 재학생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출산한 남성 재학생에게도 부여되어야 하는 요건이다. 취업 시 지방인재 가점이 학창시설 고군분투하여 수도권으로 소위 상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또한, 취업 지원 시 5년 이상 경력단절 여성에게 가점이 경력단절은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죽을 똥을 싼
여성들은 가점이 없는 오늘날의 세상이 과연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 취업 기관에서 청년인턴 경험이 있는 경우 가점을 주는데, 청년 인턴 경력이 결혼과 출산으로 7, 8년 전 이력으로 한잠 뒤처져 버렸더라도, 경력으로 포함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나저나 청년의 연령은 도대체 몇 살인 건지..출산과 양육으로 기본 5년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여성들에게 청년의 연령대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온당한가?
나는 여성이라고 무조건적인 우선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제까지 남자들이 사회의 주요 주체가 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무조건적으로 여성의 티오를
확보하고, 실력이 없지만 단순히 여성을 선발하는 것 또한 반대한다. 처음부터 남녀 차별 없이 채용했으면 이런 기형적 채용 방식은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여성이다.
고학력자 혹은 집이 있다고 하여 이를 있는 자, 기득권으로 묶어서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혜택은 없는 게 당연하다는 우리 사회의 시선 또한 불편하다. 고학력자라도 가난할 수 있다. 집이 있어도 집이 없는 사람들보다 부유하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변호사 부부이면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있으면서 청약을 기다리는 주변을 봐온 나는 집이 있는 자=부유한 자로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온당한 논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도리어 역차별을 경험하였던 나의 에피소드에 우리나라의 다양한 삶터를 지원하는 정책에 대한 소회를 몇 자 정리하여 보았다. 다만, 이것 또한 소시민의 한 의견일 뿐 다양한 사회 문제의 견해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참된 정치를 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