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하지만 강렬하진 않은 신고식
<캡틴 마블>은 2019년 역대급 라인업으로 무장한 디즈니의 첫 타자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MCU는 일 년 전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로 전세계 관객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앞으로 한 달 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캡틴 마블>은 두 메인 이벤트 무비를 잇는 중요한 브릿지이자 MCU의 프리퀄이면서 앞으로 MCU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를 선보이는 신고식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MCU 영화들을 챙겨본 팬들이라면 도대체 '캡틴 마블'이 얼마나 세길래 어벤져스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는지 궁금해서라도 안 보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처럼 온갖 기대와 우려를 등에 업고 새로이 등장한 이번 히어로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고 기대보다는 다소 무난한 오리진으로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MCU 영화 중에서 이번 영화만큼 외적으로 시끄러웠던 작품이 있었나 싶다. 주연 배우 캐스팅 때부터 불거진 논란은 페미니즘 마케팅, 주인공 '브리 라슨'의 인성 문제로 끝없이 이어졌다. 영화 내적으로는 20여편의 영화 동안 개고생해서 쌓아온 것을 한 방에 정리할만큼 강력한 캐릭터의 파워 밸런스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논쟁에 비해서 놀랍게도 영화 본편은 생각보다 얌전하다. 이제까지 MCU 히어로들의 오리진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익숙한 전개를 차분하게 선보인다. 오히려 다소 우려되었던 부분들은 크게 문제가 없고, 기대치가 높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캡틴 마블, 즉 '캐럴 댄버스'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90년대가 배경인만큼 당시 문화적인 요소들도 곳곳에 들어있고, 젊은 '닉 퓨리'와 '콜슨' 요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캡틴 마블>이 다른 MCU 오리진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캡틴 마블'은 처음부터 센 캐릭터라는 것이다. 사실 거의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캐릭터로 보인다. 남을 위해 희생할만큼 고결한 인품을 지닌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캐릭터다보니 그녀에게 시련을 주기도 쉽지가 않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나 다른 슈퍼히어로들에 비하면 그건 약점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도 지시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여성의 모습은 좋았지만, 워낙 빈 틈이 없이 완벽하다보니 캐릭터로서 심심해져버리고 만다.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낼 수는 있어도,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해보였다. 주인공보다 고양이가 더 매력적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우려와 달리 '브리 라슨'은 '캡틴 마블'과 꽤나 잘 어울렸지만, 다소 딱딱한 캐릭터와 연출 때문에 오스카 수상자의 면모를 뽐낼 요소는 적었다. 옆동네에서 고전 신화에 나올법한 클래식한 캐릭터인 '원더 우먼'을 어떻게 훌륭하게 그려냈는지 생각하면 <캡틴 마블>의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좀 더 크게 느껴진다. 심지어 볼거리도 그리 충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절대 강자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연출해낸 애니메이션 <원펀맨>이나 최근 개봉작인 <알리타 : 배틀 엔젤>, 그리고 뛰어난 CG로 눈호강을 시킨 <아쿠아맨>이나 자사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생각하면 <캡틴 마블>의 액션은 강력하나 인상깊게 강렬한 장면은 없다. 오히려 영화 본편보다 <엔드 게임>과 이어질 첫번째 쿠키 영상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이니, 기억에 남는 액션 시퀀스가 별로 없다는 게 오락 영화로써 <캡틴 마블>에 대한 큰 아쉬운 점이다.
이처럼 <캡틴 마블>은 기대보다는 심심한 신고식이었다.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서사나 클리셰를 깨부수는 시원한 대사들도 좋았지만, 재미적으로는 닉 퓨리와 보여준 90년대 버디 무비스러운 케미가 좀 더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력하고 완벽한 차세대 리더가 이끌어갈 앞으로의 MCU와 어벤져스가 약간 궁금해지기는 한다. 온 우주를 누비는 '캡틴 마블'의 등장으로 인해 앞으로의 세계관과 빌런들도 차원이 달라질 예정일테니 말이다. 당장 <엔드 게임>에서 어떻게 '타노스'를 응징할지부터가 궁금한데, 그녀의 무지막지한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원시원한 액션도 한 번 기대해본다.
P.S. - 시작부터 뭉클하게 만드는 마블의 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