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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후기

우상(偶象)의 우상(愚相)

by 조조할인

*스포일러 있음


<우상>은 <한공주>라는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 '이수진' 감독의 5년 만의 차기작이다. 익숙한 스릴러를 선보일 것 같았던 예고편과 시놉시스와는 달리, <우상>은 관객들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복잡하게 흘러간다. 인기 정치인이나 아들의 뺑소니 사건으로 한 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위기에 놓인 '구명회', 그 뺑소니 사건을 통해 아들을 잃고 사라진 며느리를 찾는 '유중식', 그리고 비밀을 가진 채 사라진 여인 '최련화'라는 세 인물을 통해 그들 각자의 욕망과 이상을 그린다. <우상>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복잡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안개 속에서 명확히 빛나는 등대의 불빛처럼 선명한 주제를 선보인다.



뭘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라는 <우상>의 예고편 속 대사처럼, 영화 <우상>은 각자가 가진 우상과 믿음에 대해 다룬다. 예고편만 보고는 <침묵>이나 <특별시민> 같은 영화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니, 흐릿했던 플롯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가졌던 <황해>나 믿음의 이면에 대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렸던 <사바하>, 그리고 메타포로 가득 찼던 <버닝> 같은 영화들이 떠올랐다. 이처럼 <우상>은 장르 영화의 재미나 흡입력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촘촘히 짜여져 있다. 예상치 못한 뺑소니 사건을 통해 얽히게 되는 세 명의 인물은 참 미스테리하다.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기 모호해보일만큼 그들은 그들 각자의 양심과 욕망, 이상으로 뒤엉켜 있는 복잡한 인물들이다. 러닝 타임이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속마음은 점점 흐릿해지고, 강렬한 이미지만이 남는다.



'유중식'은 스스로 우상을 파괴하고야 만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목을 가져오라는 무당의 말에 그는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의 목을 폭파시킨다. '유중식'은 지키지 못한 혈육에 대한 죄의식과 분노, 그리고 구명회의 이름을 짊어지고 테러를 저지른다. 하지만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련화에 대한 진실은 구명회를 향한 박수 갈채 속에 묻힐 뿐이다. '최련화'는 세 명의 주인공 중 가장 미스테리하다. 마치 맥거핀처럼 느껴질만큼 극이 한참 진행될 때까지 그녀가 왜 사라졌는지, 그녀가 지닌 비밀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입으로 지은 죄는 씻을 수 없다는 그녀의 말과는 상반되게 사실 그녀의 하얼빈 대사들은 관객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련화가 집요하게 꿈꾼 소박한 이상은 끝내 잔혹한 현실과 맞부딪치며 엔딩으로 치닿는다.



<우상>에서는 들여는 볼 수 있지만 들을 수는 없는 창에 가로막힌 상황이 이어진다. 보이는 이미지로 평가받는 정치인 '구명회'는 이 상황과 환상을 가장 잘 이용한다. 관객들은 '구명회'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지만 극 중 유권자들에게는 그저 죄의식을 가진 아버지로 비춰질 뿐이다. 영화는 이런 구명회를 예수에 비유하며, 신이라는 존재에 맹목적으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을 밟고 올라서면서까지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손에 넣으려는 '구명회'의 일그러진 욕망은 끝끝내 단절된 대화를 통해 그려진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어도 박수를 보내는 청중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내내 하얼빈 사투리를 쓰는 조선족들의 대사들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대사들이 씹히는 경우가 꽤 많아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오프닝의 나레이션이나 마지막 구명회의 연설 장면을 통해, 감독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그대로 믿을 것인지 또 믿을 수 있는지, 영화는 수많은 창들로 들여다본 시선으로 대신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우상의 이면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우상>은 묵직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담아낸다. 비록 영화가 많이 불친절하고 감독의 과욕이라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들이 담겨있긴 하지만, 놀라운 흡입력과 에너지는 외면하기 힘들었다. <우상>의 이런 쉽지 않은 선택이 얼마나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지는 몰라도, 극장을 나서서 한 번 곱씹어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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