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은 어디가고 자스민만 남았다
MCU의 대대적인 흥행에 가려있지만, 최근 디즈니의 실사 영화들의 성적표는 꽤 암울하다. 작년에 개봉한 <시간의 주름>(심지어 국내는 VOD 직행),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얼마 전 개봉한 <덤보>까지, 모두 낮은 평가와 부진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이처럼 자신들의 빛나는 유산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은 디즈니의 최근 행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디즈니이기에 가지는 기대도 없잖아 있었다. 아쉽게도 <알라딘>이 공개된 이후의 미적지근한 평가나 예상 성적은 이런 부진을 크게 뒤집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지만, 다행히도 생각보다는 꽤나 즐길 요소가 많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물론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예고편에 대한 기대치에 비하면 말이다.
<알라딘>은 최근 디즈니의 흐름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굉장히 잘 수용한 사례다. 캐스팅 때부터 잡음이 없도록 꽤나 신경을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원작의 매력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만다. <알라딘>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주인공인 '알라딘'은 무색무취 무매력에 대우도 뒷전이고, 아예 제목을 <알라딘과 자스민>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자스민'의 비중은 대폭 늘어났다. 당시에도 꽤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였던 자스민이지만 현대의 시각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으므로 이에 맞게 각색하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단독 스코어를 두 개나 붙여주면서 밀어주는 바람에 주인공인 알라딘은 물론이고 빌런인 '자파'까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자스민 캐릭터가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말레피센트>처럼 자스민을 주인공으로 해서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을만큼 나머지 캐릭터들이 상당히 부실하다. 특히 빌런인 '자파'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인데, 원작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실종되면서 실망감만 안겨며 공주의 시종인 '달리아'보다 존재감이 떨어진다. 심지어 자파의 사이드킥인 '이아고'조차 실사화에서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장 우려스러웠던 '윌 스미스' 버젼의 '지니'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는 것이다. 원작에서의 '로빈 윌리엄스'의 지니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윌 스미스'의 지니가 이 작품의 윤활유 역할을 해낸다. 물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파란 모습의 지니는 적응이 되지 않고 별로였지만, 그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유쾌한 활약상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더 별로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가장 기대했던 'A whole new world'를 비롯해서 삽입된 OST는 마음에 들었다. 자스민 공주의 솔로곡 또한(뜬금없고 상당히 별로였던 연출과는 별개로) 나오미 스콧의 열연과 열창을 통해 실사판만의 인상적인 요소로 자리 매김했고, 화려한 뮤지컬 시퀀스는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즐겁게 한다. 또 원숭이 아부와 마법의 양탄자도 큰 활약을 하면서 실사만의 재미를 살려준다. 결과적으로 실사 <알라딘>은 무언가 큰 성과를 거두거나 원작의 아성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보긴 힘들고 단점도 눈에 많이 띄지만, 나름대로 엔터테이닝한 매력의 구색은 갖춘 오락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작의 수려한 OST와 지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크게 기댄 것인만큼 디즈니의 다음 행보에는 정치적 올바름 이상의 특별함이 필요해보인다.
P.S. - 아무 매력도 못보여준 것은 가이 리치 감독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