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주제의 발목을 잡는 감성적인 태도
영화 <배심원들> 2008년 최초로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을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다. 배심원 제도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소재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가이드 수준으로 친절하게 관객들을 안내한다. 하지만 법과 원칙이라는 이성적인 주제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배심원들의 감성적인 태도다. 배심원들의 직관과 감정적인 부분에 휘둘리는 영화의 전개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3배 이상 높다는 엔딩의 문장은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만 돋보이게 만든다.
영화가 영화다보니 당연히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생각날 수 밖에 없고, [배심원들]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나 이 영화를 꽤 많이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균형있게 선정한 8인의 배심원들도 좋았고, 낯선 배심원제에 대해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재판부도 괜찮았다. 하지만 전개가 문제다. 법정 영화라기에는 너무 허술한 지점이 많고, 다채로운 배심원 캐릭터들의 활용도도 떨어진다. 이성과 이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몇몇 배심원의 직관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다양한 성별과 연령, 직업군의 배심원들을 뽑아놓고 굳이 열린 시각의 젊은이들 VS 꼰대들, 가난하지만 선량한 시민 VS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상류층으로 대립시켰어야했나라는 아쉬움도 든다. 법은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국가 부도의 날>처럼 가치에 대한 문제를 자꾸 선 VS 악의 문제로 끌고 가다보니, 신선한 소재의 법정 영화임에도 뻔한 전개로 흘러가고 만다. 또한 문소리 배우의 연기는 좋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설정과 달리 허술하고, 마지막 판사의 선택도 과연 이게 법과 원칙에 의해서 내려진 결론인지 감성적인 태도에 의해 흔들린 결과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차라리 온전히 배심원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거 같긴 한데, 재판부의 이야기는 약간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형식이 연기한 캐릭터도 일반인이라기보다 좀 맹한 인물이라 답답하기도 했고, 이런 캐릭터성 때문에 배심원들에 대한 설득력도 상당히 떨어졌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는 과정에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한 두번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윽박지르기만 하는 반대 입장도 아쉬웠다. <배심원들>이 상업 영화로서 아주 나쁜 만듦새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가 갖고 있는 안일한 태도나 시선에는 지지를 보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배심원들>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쉽게 풀어나가려고 해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