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클라이맥스? 마침표 없는 어나더 클래스!
※스포일러 없게 쓰도록 최대한 노력했지만, 경우에 따라서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도 있음
강산도 한번 변한다는 10년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아이언맨'(2008)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사실 돈만 있다면 계속해서 만드는 것은 쉽다. 그냥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보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마블은 이걸 한두 편도 아니고 무려 10년이라는 기간동안 해냈다. 한편의 영화가 다음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즉 안볼래야 안보고 버틸 수 없는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을 탄생시키면서 전세계의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는 10주년을 맞은 마블의 메인 이벤트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인피니티 워'는 기대 이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하나의 영화를 뛰어넘어 문화계 전반에 자신들만의 이정표를 기어이 세우고야 만다.
'어벤져스'라는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인피니티 워'의 진주인공은 '타노스'이다. 그간 다양한 MCU 시리즈들을 통해 간간히 얼굴만 비췄던 것에 비해, 이번 영화는 온전히 그의 시점과 감정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인피니티 워'의 연출을 맡은 루소 형제는 이번 영화를 하이스트 영화, 즉 강탈 영화라고 미리 귀띔했었고 이는 낚시가 아니었다. 인피니티 스톤들을 모으기 위해 발벗고 나선 '타노스'의 여정과 각지에서 펼쳐지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활약이 고루 펼쳐져있다. 무엇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서 확인한 루소 형제의 장기인 '분량 분배'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수십 명의 히어로들이 등장시키면서도 각자의 매력을 뽐낼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면서 각각 시리즈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피니티 워'는 누가 뭐래도 '타노스'의 영화다.
매력적인 빌런의 부재는 마블의 아킬레스 건과도 같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시빌 워'의 제모 남작이나 '블랙 팬서'의 '킬 몽거'같은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이런 아쉬움을 덜어주긴 했었는데, '타노스'라는 체급이 다른 빌런의 등장은 이전의 비판들을 다 털어내고도 남는다. 단순히 '세상을 정복하겠다' 같은 이유가 아닌, '세상의 균형을 바로 잡겠다'라는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런 숙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진중한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기는 그의 모습은 여타 빌런들과는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괜히 '인피니티 워'가 MCU 영화 중 러닝타임이 제일 긴 것이 아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여정과 감정을 묵직히 따라가면서 '메인 이벤트'를 열어젖힌다.
'인피니티 워'는 대체로 진중한 분위기로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거운 영화만은 아니다. 그간 갈고 닦은 캐릭터성을 활용해 적재 적소에 유머로 기름칠을 하는데, 특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의 활약이 뛰어나다.(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얼빠진 토니 스타크의 표정도 일품) 유머뿐만 아니라, 러닝 타임 내내 각지에서 펼쳐지는 각개 전투들 또한 슈퍼 히어로들이 가진 각자의 특성들을 잘 섞어서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마치 '반지의 제왕'이 생각나는 마지막 와칸다에서의 하이라이트 대혈투다. '클라이맥스'라는 자신감 넘치는 홍보문구는 빈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영화를 통해, CG를 뚫고 나오는 배우들의 감정 연기 또한 제대로 보여진다. 괜히 이 분들이 많은 돈 받는 명배우들이 아니고, 괜히 마블이 이런 명배우들을 긁어모은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재치있으면서도 장엄하게 결말을 향해 달려가던 '인피니티 워'는, 놀라운 결말로 마무리 짓는다. 온갖 팬서비스 요소들을 잊지 않고 챙겨 넣어준 것이 메인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알게 된다. 감독들이나 배우들이나 '스포일러 절대주의'를 요한 것은 결코 오버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블의 진짜 무서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볼드모트'를,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사우론'이라는 끝판 대장으로 마무리되었지만,(물론 이쪽도 끝나도 끝난 게 아니긴 하다) MCU는 여전히 다음 페이지가 남아 있다. 어쩌면 이번 영화가 마블의 '클라이맥스'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영화 역사를 바꿀 메인 이벤트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