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원윤경

관람객들은 연어 떼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 중앙 계단을 올라와 마치 냇물에 박혀 있는 돌인 양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의 어머니는 배우. 아버지는 지방은행 직원이다. 피아노 연주가 취미셨다. 바흐, 듀크 엘링턴. 음악을 좋아했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듯 그녀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완벽한 고독으로 충만한 하루를 시작하며.

티치아노에 얽힌 이야기
1533년 어느 날,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베네치아의 한 화실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황제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티치아노가 붓을 떨어뜨렸어요!

그 순간, 전 유럽을 지배하던 황제가 무릎을 꿇고 붓을 주워줬답니다! 주변 사람들이 "폐하, 그러실 필요가..." 하며 말렸지만, 카를 5세는 이렇게 말했어요:

"티치아노는 언제든 또 다른 황제를 만들 수 있지만, 나는 또 다른 티치아노를 만들 수 없다."

베네치아. 물의 도시에서 탄생한 색채 혁명.
베네치아는 정말 특별한 도시였어요.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라서 빛과 색채가 끊임없이 변했어요.

베네치아만의 특별함
물에 반사되는 빛. 하루 종일 빛이 춤을 추는 곳.
동서양 교역의 중심. 비잔틴, 이슬람 문화의 화려한 색채가 숨 쉬는 곳. 부유한 상인들. 화려한 색깔의 비단과 보석을 사랑하는 곳. 독립적 분위기. 교황이나 황제의 간섭이 적은 곳이 베네치아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에 미쳤어요! 피렌체 화가들이 완벽한 선과 형태를 추구했다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눈부신 색채와 빛을 추구했죠.

비눗방울처럼 뿜어져 나오는 맑은 미소.
우리는 경배를 할 때는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통곡을 할 때는 '삶은 고통이다'라는 의미를 깨닫는다.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은 600 명이다.
그는 자꾸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대개 졸리거나 멍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올라오는 모습.)

나무뿌리는 그 나무의 가지만큼 뻗어나간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에 마중물을 부었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는 1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예술이 나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개를 주었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하나는 네 소원만큼이나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던지거라.

눈은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둘러본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은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 직관적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트의 경비 팀에는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사람, 택시를 몰던 사람,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한 사람, 목조가옥을 짓던 사람, 농사를 짓던 사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 순찰을 돌던 경찰, 그런 경찰들의 활동을 신문에 보도하던 기자, 백화점 마네킹의 얼굴을 그리던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와 뉴욕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 열의가 넘치는 사람도 있고 매사에 뽀로통한 사람도 있다. 경비 전문가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승객들은 창문 너머로 미끄러져 가는 세상을 공허하거나 몽롱하거나 예리하거나 졸리거나 닫혀 있는 온갖 종류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사후관은 시대와 사상에 따라 다소 변화했지만, 공통적인 틀은 비교적 분명하다.

기본 개념 : 하데스의 세계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몸을 떠나 하데스의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하데스는 지하세계이자 그 세계의 신의 이름이다.

죽음 = 형벌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사후 세계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기력한 곳이라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죽은 자들은 기억과 개성은 있으나 생기 없는 그림자처럼 묘사하였다.

사후 세계의 구조
1. 일반적인 죽은 자들의 영역
선인, 악인 구분 없이 대부분이 가는 곳.
특별한 고통도 보상도 없음.
삶보다 못한 상태로 여겨짐.

2. 엘리시온
신들에게 사랑받거나 영웅적인 삶을 산 자들이 가는 곳.
평온하고 행복한 사후 세계. 후대로 갈수록 천국적 성격이 강화됨.

3. 타르타로스
극악한 죄인들이 벌을 받는 곳.
시시포스, 탄탈로스 같은 인물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음. 후대의 지옥 개념에 큰 영향.

4. 사후 심판
죽은 뒤 미노스, 라다만튀스, 아이아코스 같은 재판관들이 삶의 행위를 판단한다고 여겨짐. 하지만 이 심판은 윤리적 보편 심판이라기보다는 신과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한 판단에 가까움.

5. 장례와 매장의 중요성
그리스인들은 제대로 매장되지 못한 영혼은 하데스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믿었다. 카론에게 줄 뱃삯(오볼로스)을 입에 넣어 매장했다. 매장 거부는 극심한 모욕이자 형벌이다.

10년 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근무하며 내가 제일 좋아한 작품은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제리코가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나는 오래된 작품이 좋다. 단단한 나무판 위에 입힌 템페라의 느낌도, 잘게 금이 간 금박 아래로 붉은 진흙 베이스가 살짝 얼굴을 내미는 것도 좋다.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그림이 톰(죽은 형)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 준다.

모여 있는 구경꾼 한 무리를 상상했다. 옷을 잘 갖춰 입은 사람, 말을 타고 있는 사람 등등 꽤 많은 구경꾼의 얼굴에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반응과 감정이 떠올라 있다.

침통해하는 사람,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 지루해하는 사람,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람도 있다. 옛 거장들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리얼리즘이다.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단이 좋다.

그곳에서 그림의 톤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거기에는 슬픔에 겨워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수동적인 구경꾼과 달리 그들의 삶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한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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