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도피는 아주 인간적인 반응이다. 스트레스와 학업, 일, 인간관계, 경제적 압박, 놀라운 사건 등으로 감당이 안 될 때. 뇌가 잠깐 쉬자 하고 비상탈출 버튼을 누르는 거다.
노력해도 상황이 안 바뀔 때. 불안, 우울, 죄책감, 상실감 같은 감정을 마주하기 힘들 때. 현실은 느리고 힘든데 도피는 빠르게 즐겁고 편안함을 줄 때.
정신적으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고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해 준다. 잠깐 거리를 두면서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잘 쓰면 회복용 휴식 역할이 가능하다.
현실도피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도피만 하고 돌아오지 않을 때. 도피가 습관이 되면, 힘들 때마다 현실을 피하는 패턴에 고착되고 현실이 더 버겁게 느껴진다.
오늘 주인공 기호태가 겪게 되는 현실도피를 본다. 지하철 2호선 역사 내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기호테.
그의 아버지 기현승은 2호선 지하철을 운전하는 기관사이다. 호테가 보기에 아버지의 가방은 가벼운데 어깨는 늘 무거워 보였다.
회사는 인력 감축을 하고 인력이 부족한 기관사들은 피곤과 수면 부족으로 늘 위험에 처해있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부당한 정책에 대한 시위를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승강장 문을 고치던 직원이 문에 끼여 위험한 모습을 보고 그를 구하려다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던 S204호 기관사 최산은 기호테의 아버지를 보고 열차의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브레이크 정비 불량으로 지하철은 멈추지 않았다.
호테는 아버지를 잃고 기관사는 직장을 잃었다.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앞에 호테는 순간 아버지가 즐겨 읽으시던 돈키호테를 떠올리며 용(지하철 S204)이 아버지를 집어삼켰다고 생각하고 용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돈키호테가 되어버린 기호테.
피자 박스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아버지를 죽게 한 기관사 최산은 죄책감으로 산초가 되어 호테와 용을 찾아 떠난다.
현실 도피라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현실을 맞아 호테는 돈키호테가 되어 현실 돌파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세상의 수많은 현실 도피자도,
세상의 수많은 현실 돌파자도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길. 마지막 연극 문구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작가의 의도
이 공연은 <현실 도피자>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던 상대와 조각이 빈 피자처럼 누군가 떠난 자리는 채워질 수 없지만, 우리는 어딘가에서 자기처럼 조각이 빈 사람을 만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자와 동료가 되고, 그와 동행하며 삶의 원점을 되찾을 수도 있다.
토핑에 따라 맛이 달라는 피자처럼,
현실 역시 한판의 피자와 같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맵고 짜고 때로는 느기한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