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기차를 놓치고, 버스를 반대 방향으로 타고, 종이 뚜껑도 떼지 않은 소금을 한 달간 뿌려 먹고, 튀어나온 것이나 닫히지 않은 문에는 빠짐없이 부딪혔지만, 바닥의 머리카락 몇 톨을 견디지 못하고 쌓인 설거지거리를 가만히 미뤄둘 줄 몰랐으며, 이 모든 것들을 미적거리며 처리하는 주제에 머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머리통이 없다면 나을까? 하는 하나마나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일을 못 하잖아. 사람들도 만날 수 없었고 엄마아빠와 안부를 주고받을 수도 없었으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일을 할 이유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일을 할 이유를 못 찾아내면, 그렇지. 다시 원점이다.
이런 나를 교정해 키우려 했으나 아마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엄마에게, '대체 그렇게 해서 월급은 어떻게 받는 거냐'는 말을 듣는 출퇴근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의 출근조차도. 어떤 날은 그냥 병원에서 사는 게 어떨까, 하고도 생각했다. 눈 뜨면 그냥 일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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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몸의 몇 군데가 어설프게 성치 않고, 직장으로 향하는 길에 '투모로우'같은 눈길을 뚫어야 하더라도 밥벌이를 위한 여정은 계속되어야 하는 이 질긴 삶에. 출근을 위해 살고 퇴근을 위해 죽.. 지는 않지. 쓰러지면 퇴근도 출근도 못 한다. 아니, 반대인가?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밥벌이만큼 신성한 건 이 삶에 없다. 숨이 붙어 있고 몸이 달달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제기능을 하는 동안은 그렇다. 이것은 과연 축복인가 재앙인가.
아무튼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서도 해야 할 것이 미치게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그 옷을 적당한 옷걸이에 걸거나 빨래바구니에 잘 넣고, 화장을 지우고, 손을 씻어 렌즈를 빼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잔뜩 뭔가를 바르고, 또 옷을 입고, 이것저것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감사하게도 나를 찾아 주는 이들과 연락을 하고, 잠에 들고, 아니. 내일의 출근 전에 먹어야 할 것을 냉동실에서 꺼내 놓기라도 하고, 아. 머리를 말렸으면 바닥의 머리카락들도 열심히 치워 줘야 한다 - 거스러미가 너무 보이거나 알코올에 또다시 절여질 손이 걱정된다면 핸드크림이라도 잔뜩 바르고 누워야 했다. 이건 겨우 퇴근 후의 일정들이며 다음 출근까지 해야 할 일들의 절반인데, 벌써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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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과제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밀도 있게 처리하는 노력과 결과에 대한 대가로 내게 봉급을 주었다. 분명 집에 와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 도무지 되질 않았다. 빨래, 설거지, 택배상자 정리하기, 분리수거와 쓰레기 버리기. 병원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였다면 30분 안에, 아니. 15분 안에도 끝낼 것들이었으나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순간 그 일들에 드는 시간은 몇 날 며칠로 늘어났다.
나는 실제로 일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쓸데없는 우울 속에서 보냈다. 설거지거리가 눈에 보이지만 당장 할 기력이 없다는 사실이 절망을 주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13시간 정도인 것 같았다. 일할 때 쓰고, 출퇴근할 때 쓰고. 그리고.. 자는 시간은 카운트에서 뺀다면. 체감이 그랬다.
엄마는 보통 이런 나를 보고 '그것도 귀찮으면 죽지 왜, '라고 했다. 아, 근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그렇다고 내가 죽지 못해 사는 그런 건 또 아닌데.. 아무튼 이 삶이란 것은 내 역량에 비해 품이 꽤나 많이 들었다.
운동이라 부를 만한 것을 깔짝거렸던 많은 시기 내내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운동을 하면 체력이 는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운동을 한다면 나는 어제보다 더 피곤할 것이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체력이 느는' 것은 언제쯤일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지 못해서 운동을 지속하지 않았다. 누군가 답을 알려줬어도 안 했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어떤 운동이든 지속했던 적이 없다.
수영가방 안에 엄마가 넣어 주던 간식의 정체와 집에 가면 차려져 있을 저녁반찬을 궁금해했고, 그녀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했던 어릴 때를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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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은 빠지지 않았다. 식단과 운동을 병행한다는 다이어트의 정석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달리기 정보들을 찾아본 내게 유튜브는 '순례길 40km씩 걸어도 살이 쪘던 이유' 영상을 띄워 주었다. 이로써, 각각 한 가지씩은 해보았으나 둘 다를 성공한 적은 없는 반쪽짜리 경험들이 생겼다. 달리고 오면 잘라놓은 토마토마저 맛있었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제로콜라가 마시는 즉시 온몸에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달려서 간신히 '세이프' 하고 나면 죽을 것 같았던 지하철역까지의 그 짧고 짧은 거리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횡단보도의 거리를 가늠한 후 아, 이 정도면 몇 초쯤에 건널 수 있겠다, 하는 것을 예측하는 쓸데없는 능력이 생겼다. 데이든, 이브닝이든, 퇴근하고 나면 그게 빨래가 되었든 쓰레기 버리기든 아무튼 해야 할 일은 한두 개는 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그전보다 더 적은 시간을 잤다. 딱히 피곤하지 않았다.
진단검사실 싸가지 없는 남자의 목소리와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는 일에도 이전보다는 짜증이 덜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을 재확인하는 계기는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뛰지 않은 지 이틀이 넘어가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기분이 뭔지는 딱 잡아 말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방향으로 기분과 사고가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게 몇 시든 나가야 했다. 여의치 않으면 아주 일찍 일어나서라도 나가야 했다.
달릴 때의 무게중심이 내 무릎이나 발목이 아닌 냉장고에 남은 유통기한 지난 요거트 같은 것에 있으면 꼭 어딘가가 시큰하게 아픈 때가 왔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나 머리 모양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보도의 높낮이 차이, 지나치는 행인들, 내 팔의 움직임, 땅에 두 발을 착지시킬 때 발목에 가해질 힘의 세기 등. 당장 내딛게 될 것들만 몸으로 조정하다 보면, 아. 언제 저기까지 가나, 했던 곳도 벌써 지나쳐 있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출근 때의 무거운 마음도, 누군가와의 약속 전 같은 긴장감도 없이 쭉쭉 나오는 풍경들만 보며 해결책 없는 걱정들을 벗을 수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기분이었든 상관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루종일 열심히 했었는지도 잊었다. 땀 찬 무릎보호대의 찍찍이를 떼고, 워치를 풀고서 속으로 안도했다.
아, 오늘도 어떻게든 끝냈다. 내일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그런 날이 쌓여 갔다. 나뭇잎이 주황색 빨간색으로 변하고, 갈색으로 마르고, 종국에는 빗물에 쓸려 가 내 발밑에도 존재하지 않는 시기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이 활동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중3, 영어학원이 끝난 후이어폰을 꽂은 채 동생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가로등이 켜진 학원가와 상가를 잔뜩 지나쳐 집으로 돌아왔었다. 나는 단어시험이 추가됐다, 선생님이 잔소리하느라 수업을 늦게 끝내 줬다는 등 별 같잖지만 꽤 그럴듯한 핑계를 댄 후 집으로 가지 않고 옆동네까지 자전거를 탔다. 또래 애들이 학원으로 오가고 사람들은 식당을 들락거렸고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다. 잔뜩 늘어선 아파트 창문들로는 저녁의 일상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때의 행복이고 안도감이었다.
십 년이 넘어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하루의 끝을 맞은 길거리의 장면이, 퇴근을 하고 누군가와 산책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고 길에 가로등이 켜지는 것이 똑같았다. 이 맨몸으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 장면의 일부가 될 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게 전했다. 괜찮다고.
아빠가 그렇게나 하지 말라고 했던 대로 '이어폰 양쪽 다 꽂고' 자전거를 타던 사춘기 중학생이던 때와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을 뜨면 어딘가로 시간을 지켜 떠나야 했고, 미래에 대해 알 수 없고, 가끔 외로운 것도, 그럼에도 자주 즐거웠던 것도 똑같았다. 생각은 많았고 많은 것에 불만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소중한 친구들이 있고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내가 느끼는 불안이나 고민이 기만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삶은 비슷한 정도로 평안했고 그 근간은 비슷했다.
그동안은 저녁 길거리를 구경 못 한 것도 아닌데대체 왜 지금 달리기를 하며 새삼스러운 감상을 느끼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것이 확실히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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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내 어떤 문제들의 만능 해결책이자 일상의 낙원 같은 시간이 된 건 아니었다. 그냥 또 다른 일과였다. 안 하면 불안한 설거지처럼. 하지만 행복했다.
달리기는 매일이 달랐다. 다양하게 머릿속에 들끓는 그날의 잡념을 가라앉혔다. 다이어트, 안 나오는 보너스, 꼴 보기 싫은 누군가의 얼굴, 그리고 그것을 내일도 모레도 봐야 한다는 사실, 인력을 축소하고 인당 환자수는 파업 전만큼 늘린 병원, 교대근무를 유지하는 3년, 5년 후의 내 미래, 아니면 그 반대의 것. 그 미지수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하는 것 같은 일, 그러나 하지 않고 있는 일, 답장하기 귀찮은 메시지들.
휴대폰은 허리 뒤에 꽂아놓은 채로 양손을 비워 달렸다. 어쩌면 도망이었다. 알 수 없고 내 노력에 보답하지 않으나 앞으로도 힘을 써야 하는 많고 많은 짜치는 것들로부터의 도망. 이 도망은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내게 '괜찮음'을 가르쳤다.
퇴근 후에는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는 날에는 40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했다. 나는 늘 시간은 모자라고 잡념은 많아 슬프고 불행한 사람이었다. 안 하던 짓을 했더니 가용할 시간이 늘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뭔가를 빼내야 늘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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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안 변한다. 나는 여전히 당장 해결할 수 없고, 하지 않을 일들을 사서 걱정하고, 사소한 것도 정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인배의 일상을 산다. 그래도 하나의 해결책을 찾았다. 아무튼 달리러 나가는 것이다. 단 한 가지도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살이에 대응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다른 컨디션의 나를 달리게 하러 매일매일 다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미친 변수들이 가득한 세상에 던져진 한 마리 야생동물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감정도, 근심도, 목표도, 할 일도 잊고 단지 목과 입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와 종아리와 그 어드메의 통증만을 느끼면서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달리고 걷는다. 횡단보도에 서서 뜨끈해진 몸과 부지런히 뛰는 심장소리를 새삼 느낄 때, 땀을 흘려본 적이 없는 내 콧잔등에서 물기를 닦아낼 때 대체 불가능한 행복을 느낀다. 아프면 속도를 줄이고, 잔뜩 따뜻해진 내 온도를 느끼고, 또다시 찬 공기를 입김으로 내쉬며 오늘의 나를 버린다. 나를, 내가 괴롭게 했던 많은 것들이 털려 사라지길 바라며.
그리고모든 것이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고 읽혀야만 하는 나를 잔뜩 적응시키고 돌아온다.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가면 된다고. 똑같이 고된 내일로, 잡념의 저편으로, 더 예쁘고 깊은 하늘 아래의 어딘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