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븐도 Dec 10. 2024

2/3. 달린다는 사치

매일 똑같고 매일 다른






나는 스무 번을 채우기로 했다. 결심은 아니었다. 어차피 며칠 하다 말 것 같아 스스로에게 넌지시 던진 제안이었다. '혹시나 40번 채우면 저기 설빙 가지, 뭐.' 하고 덧붙였다. 공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프랜차이즈들이 있었다. 20번을 채우면 저쪽 포토이즘을 찍고, 만에 하나 40번을 채우면 저 뜬금없는 설빙에서 빙수를 사 먹자고 생각했다. 그 빙수집을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십 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설빙에 가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낮은 일 같았다. 러닝화를 신은 복장으로 바깥에서 40번을 뛰고 걷는 사건은.

이왕 기념하는 거, 초코치즈케이크 어쩌고 빙수와 함께 다이소 공주 왕관세트라도 들쓰고 앉아 뻑적지근한 자축도 할까 상상했다. 물론 축하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글을 쓰기 며칠 전 엄청난 눈이 내렸고 공원은 엉망었다. 며칠 새 나무와 긴 들풀이 서로 머리채라도 뜯고 싸운 것 같은 몰골 펼쳐져 있었다. 나무 산책로는 어설프게 녹다 만 얼음길이 되어 있던 탓에 아직 그전처럼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1월을 넘기기 전에 어떻게든 40번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에 이틀간은 등록한 지 두 달이 훨씬 지난 헬스장에 가서 대충 비슷한 거리를 뛰었다. 달리는 게 아니라 체력 단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힘들었다. 그제야 다시 느꼈다. 나는 생각보다 달리기가 주는 잿밥을 좋아했다는 것을.











해가 막 뜨기 이전의 빨갛고 파랗게 시린 하늘을 보려고 여섯 시가 채 되기 전에 운동화를 신고 나간 적이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던 늦여름 흐린 오후의 습한 공기에서 쑥떡 냄새를 맡았다. 해가 막 지려는 짙은 오렌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하늘이 궁금해 나이트 전의 잠을 한 시간 포기했다.

가벼운 옷을 입고 아무런 짐 없이 재우쳐 지난 강남대 색달랐고 공기 찝찝했다. 왜 잠원한강공원은 사람들의 피크닉 스팟으로 잘 언급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안국역으로 나와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의경들을 지나쳐 달려 서울역 대우빌딩 옆 산책로를 돌아오면 약 7킬로미터가 된다는 걸 알았다.



가을이 오려는 한낮의 호수에는 인근 유치원의 아이들과 물오리 떼들이 소풍을 나와 있었다. 러닝크루 사람들은 다큐멘터리의 아프리카 들짐승들처럼, 그러나 먼지는 일으키지 않고 '우다다다다' 나를 지나쳐 갔다. 시간이 얼마나 늦었든 한두 커플은 구석에서 튀어나와(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튀어나온 거였겠지만) 손을 붙잡고 조용히 찰싹 붙어 걸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모양대로 뛰었다. '왜 저렇게 뛰지, 웃기다'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으며 내 꼴도 그렇겠다고 느다. 자유로웠다. 주말의 백화점 앞에서 들떠 보이는 사람들을 스쳤다.

폴바셋 앞 횡단보도를 막 건너면 전속력으로 뛰어야 그다음 횡단보도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15초 정도만 초록불이 남아 있어도 충분히 호텔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길 그렇게 건너고 나면 예전에는 반드시 한 번 쉬듯 걸어야 했다.




디뎌 지나친 것이 맨 땅이 아닌 갈색으로 변한 솔잎들과 낙엽이 된 시점에 나는 속도를 줄이는 것을 잊었다.

'힘든 지점'이 어제보다, 그제보다 멀어졌다고 느끼는 날이 반복됐다. 엄청나게 뿌듯했다.











이전에 가족들과 고기를 잔뜩 먹고 아빠가 차를 몰아 딱 한 번 공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도로로 십 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내가 올 일은 없겠다고 느꼈다. 한여름 날벌레가 얼굴로 달라붙던 그 공원 다리를 가족과 걷던 중 주변에 잔뜩 깔린 연인들을 보며 경이를 느꼈다. 이 거대한 공원은 상대를 잘못 골라서 오면 안 될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빠질 곳도 없어 친하지 않은 사람과 왔을 경우 꼼짝없이 이 긴긴 산책로를 어색함 속에 돌파해내야 했다.

코스는 길었고 날은 습했다. 막상 와보니 별 게 없었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그때도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이 지겹게 긴 거리를 어떻게 뛰는 건지 신기하다고 느꼈다. 호수 너머를 배경으로 가족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빨리 집에 가자고 생각했다.




-




추석연휴 중 그나마 덜 더웠던 , 호수공원을 내가 사는 곳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해가 지면 스케이트보드를 들쳐멘 채 낑낑거리며 걸었던 법원 앞을 지나 굴다리를 건너자 익숙한 풍경이 나왔다. 맨몸에 짐도 없다는 사실이 즐거워 아무 생각 없이 이동하던 중에 공원 앞의 작은 다리가 등장했다. 냅다 나가 달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싼 월세 내 이 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오전에 나는 겨우겨우 공원의 1/3 지점까지 걷고 뛰었다. '진짜'들은 천천히 뛴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어설픈 나는 잔뜩 뛰다가 제풀에 지쳐 어기적거리며 걷기를 반복했다. 폼도 안 나고 분명 힘에 부쳤지만 못 보던 풍경들이 펼쳐져 기뻤다. 뭐, 정말 언젠가는 여길 한 바퀴 다 도는 날도 오겠지, 생각했다.





달리기 다섯 번을 채우기 전에 한 바퀴를 다 뛸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큰 곳이 아니었다고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컨디션이 좋고 다음날 출근이 늦은 에는 두 바퀴를 돌았다. 그런 날은 집에 도착하면 10킬로미터가 찍혀 있었다. 매일이 같았지만 매일이 달랐다. 다리와 발목의 통증이 달랐고, 내가 달려 지나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랐다. 안개가 낀 날은 변해 가는 나뭇잎의 색이 잘 보였고, 맑은 날에는 하늘의 별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커다란 꿀단지를 가지고 앉은 곰돌이 푸는 어느 날 퍼질러져 누워 있었고, 어느 날부터는 창고로 처박혀 겨울잠을 자는지 보이지 않았다. 못 보던 풍경 낙엽을 다 떨어뜨린 나무 사이로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

사람들은 얼음이 든 음료를 마시며 몰려다니다 슬슬 그 수가 줄었으며, 학생들은 정말 예상치도 못한 시간대까지 백팩을 메고서 터덜터덜 걸었다. 한밤중에도 가끔 오리들이 떠다녔다. 모든 장면의 생뚱맞은 안부가 궁금했고 반가웠다.














열여덟 번을 채웠을 때,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포토이즘 테마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짜릿해서 믿기지가 않았다. 퇴근 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속으로 잔뜩 춤을 췄다. 굴다리를 나와 내리막길을 달릴 때 플레이리스트에서 그들의 노래가 나오던 순간, 상대적으로 지루한 구간을 지날 때 함께하던 목소리와 멜로디. 이어폰을 끼고 밤과 새벽과 한낮 햇빛 아래와 강변을 달리던 그 순간들이 뭐, 나와 그들의 특별 콘서트였다. 나는 간헐적인 달리기 덕에 운동 전도사나 다름없는 멤버의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던 죄책감을 잊었다. 뜀박질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로운 덕질을 하는 중이라는 착각 같은 기쁨을 얻었다.


그들을 떠올리다 보면 '.. 열심히 살게요.'로 귀결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건지는 그때도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악을 듣고, 혼자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그 다분히 개인적이고 실체 없는 시간들이, '열심히 살았니? 우리와 사진을 찍도록 하렴'으로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내돈내산'의 행복을 누렸다. 러닝을 마친 몰골 그대로 허연 아침이 밝은 부스로 들어가 열심히도 찍었다. '열심히 살게요.'라고 느끼면서.





-





시작은 덕질과 무료함과 죄책감 비슷한 것의 보상이었으나, 새로운 재미가 된 이 활동은 항상 새롭게 반가웠다. 바뀌는 계절이 재미있고 마주치는 것들은 항상 빛났다. 찬비가 너무 강하게 내리거나, 눈이 잔뜩 얼어 있거나, 내가 너무 많이 먹었거나, 시간이 야속할 만큼 늦었을 때는 만나지 못하는 시간과 장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당연하지 않게 맞물려야 밖에서 뛰는 것이 가능했다. 어떻게 소중하지 않겠는가.

날이 몹시 추워졌고 나는 두 달 내내 입던 바람막이들을 모두 세탁하고 플리스 후드티와 내복들을 꺼냈다. 짧은 하의가 아닌 긴 하의를 입은 지 열흘이 됐다. 저편에 하얗게 채 녹지 않은 눈을 보며 달리는 날이 올 줄 정말 몰랐다.


대충 얼고 녹은 차가운 공원을 달리자 뜨끈해진 내 몸에서 잔뜩 김이 오르는 것 같았다. 스키장에서 하루종일 구른 듯한 뒤에 오는 이상한 안락함에 미치게 행복했다. 무릎보호대는 쓸모가 잠시 없어졌고 이제는 오른 발목이 가끔 시큰거리는 때가 있다. 괜찮다. 하루이틀 쉬면 된다. 장비가 필요한 것도, 내게 많은 자격을 요구하지도 않는 이 활동. 내가 이 친근하고 사치스러운 행복을 가능한 길게 누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40번을 넘겼으나 아직 빙수를 함께 먹을 사람을 찾지 못했다. 오십 번을 채우면 집 옆의 와플대학에서 와플을 사 먹을 것이다. 육십 번째에는 무엇을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백 번은 역시 너무 먼 것 같아서, 팔십 번을 채우면, 그 해에 열릴 미니미니미니 마라톤 정도의 공고를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정말, 또다시 만에 하나 백 번 정도가 된다면, 그 미니미니미니 마라톤을 나갈 정도의 계절이 올 것 같다.

그때에도 내가 신기해하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