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븐도 Dec 03. 2024

어떤 티켓팅

알겠으니까 제발 제 자리 하나만요







그들이 한 무대에 설 날이 올 거라고는 절대 생각지 못했다.

이것은 그 사실을 아프게도 받아들이던 당시의 과정을 옮긴 일화이며, 간단히 말하자면 망한 티켓팅의 추억이다.














*안타깝게도, 대기 중 오아시스가 (또다시) 해체했습니다













8/31 3A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맨체스터는 본거지니까, 웸블리는 당연히 박 터질 거라 좀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수용인원이 압도적이니까, 아무리 연고나 사연이 없다지만 에든버러 경쟁률 제일 낮을 테니까 (그냥 에든버러로 갔어야 했을까?) 도전하는 것도 승산있다 등등의 온갖 설레발도 잔뜩 치고, 페이팔 계정을 만고, 또 다른 티켓팅 사이트인 긱스 앤 투어스도 가입해 두고, 메인 페이지인 티켓마스터에 카드도 등록하는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찾아서 했다. 유니언? 진짜?!!!?!!의 기쁨도 잠시, 며칠 쉽지 않았다. 올 생전 처음 진짜 아이돌 덕질을 하며 '현타'가 안 오게끔 늘 조절했던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이건 더더 힘들었다.


오아시스 '덕질메이트'인 K와 나는 둘 다 선예매 추첨에서 떨어졌다. 하루 종일, 시차까지 감안해 가면서 정말 24시간을 내내 기다렸던 그 어느 날, 둘 다 메일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 상심이 컸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지.


나는 괜히 티켓마스터에 접속며 내일의 티켓팅을 나름 머릿속으로 그다. 그때도 이미 긱스 앤 투어스가려면 20초 이상 기다려야 했다. 노엘 갤러거 내한 단체 카톡방에는, 선예매 중인 사람들 앞에 8800명 대기가 떴으며 그게 다 빠지는 데는 45분 정도가 걸린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 나는 상당한 오판을 했다. 아무리 선예매라지만 8800명? 뭐야. 껌이잖아, 하고 이상한 희망을 가진 것이다. (구 비스트) 하이라이트의 5월 콘서트 일반예매 대기가 2만 6 천명고, 나는 임영웅과 케이팝 아이돌 콘서트의 티켓팅보다 치열한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그대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 물론 알 턱이 없었을 테지만.












8/31 1 p30

그제야 본 기사에서, 이 역사적인 예매에는 4000만 명이 도전할 거라고 추산되며 성공확률은 2% 미만이라고 했다.

피곤했지만 더 잘 수가 없었다. 원래 계획은 오후 세 시 반에 집을 나와 병원 휴게실로 출발하는 거였다. 나는 병원 외부 인터넷망이 꽤나 짱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두 시 반, K와 함께 인근 피씨방에서 보기선회했다.


K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보다 좀 더 '두부멘탈'이었다. '그냥 같이 할래?' 하길래 처음에는 거절했다. 나는 큰 일일수록 안 하던 짓 말고 하던 대로 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살면서 그게 뭐든 2퍼센트 안에 들어본 경험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티켓팅 대기를 하는 동안  희망적이지 못 상황 온라인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참 귀찮고 못할 짓 았다. 차라리 옆에 있는 게 낫지. 그렇다고 내내 연락을 다 씹다가 나중에 우다다다 공유하는 것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호들갑 떨면서 준비한 정이 있는데.  좋다는 게 뭐겠나. 축축 쳐지는 거 카톡으로 전하느니 같이 난리치고 절망하또 호들갑 떠는 게 게도 편했다.



전날 저녁 이후 먹은 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 않았다. 이거 그냥 티켓팅인데, 하지만 어쩌겠어. 긴장되고 무서운걸. 그래서, '야 그럼 거기서 보자 에서 보자'라고 답을 보냈다.


아이유 콘서트 예매에 성공했다던 친구에게  피씨방을 물으며 야. 나 어떡하냐, 했더니 그녀는 '그 정도면 그냥 길에 있는 쓰레기나 하나 더 줍고 덕을 쌓아라'라고 했다.

어이, K. 우리 둘 다 덕이 부족했어. 돈이 덕인가? 아무튼 부족했나 봐. 지금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4p. 영국시간 8A

피씨방에 앉은 게 네 시.

티켓마스터 UK 사이트를 구글에 검색했다. 들어가는 화면부터 503 에러가 하얗게 떴다. 내가 그 쳐다보며 아마, (사실 백 프로) 욕을 하며 앉아 있을 때 옆에 K가 등장했다. 둘 다 망한 건가? 시작부터 왜 이래. 몇 초의 숨도 못 쉴 정적 후에 컴퓨터는 사이트에 진입했다. 아무리 봐도 합성 같은 갤러거 형제의 흑백사진이 뜬 홈페이지 배너. 아일랜드 공연은 사실 한국 시각으로 오후 4시에 티켓팅 오픈이었는데 우리 둘 다 그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주 길어야 일주일 오프를 낼 수 있는데 비행기를 또 타고 거기까지 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라면, 시차를 감안해도 미친 계획을 세워 간신히 공연보고 빡빡하게 입국해야 했다. 언젠가 영국보다도 먼저 아일랜드에 가보고 싶긴 했는데 현실적으로 재 보니 안 될 듯해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K가 더블린 공연을 눌렀다. 어, 들어가지네?

4시 7분. 대기로 뜬 숫자는 56만이었다. 그제야 나와 K는 깨달았다. 너무, 늘 한국 기준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우리는 저들 기준에서 해외 서버를 쓰고 있으며, 선예매 대기 8800명 빠지는데 45분이 걸린다고 했었다. 임영웅 콘서트가 대기 150만 명이었다고?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셈법이 달랐던 것이다.


우리는 일단 둘 다 더블린 공연의 창을 띄운 채 대기가 빠지는 것을 관전했다. 정말 더럽게 안 빠졌다. 1시간에 1만 명 꼴로 빠지는 게 맞았다. 하하. 대기가 끝났을 때는 티켓이 없을 것 같았고 중간에 튕길 가능성도 배제 못 했다.

우리는 그제야 사담을 좀 하다 10분 정도 기다렸던 그 창을 껐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K가 영국 공연 탭을 눌렀는데.

어, 왜? 들어가지네?

아. 그렇게 무한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같이 오길 잘했다고 이 시점에서 생각했다.

티켓팅은 5시. 나는 네 시 사십 분부터 대기를 타려 다.

'대기를 탄다'는 말은, 리스트업이 쫙 되어 있는 오아시스 공연 예매 시작 화면에서 아무것도 누르지 않고 기다려야지 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했으면 아예 queue 진입 자체를 못 했을 것이다. 그때 K가 거길 눌러서 기다리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나는, 온갖 설레발은 다 쳐 놓고 티켓팅 줄도 못 선 멍청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겠지.


어떻게 알았냐고?

시간이 지난 후 온라인에는 아예 티켓마스터 진입 자체를 못 한 사람들이 한가득 등장했기 때문이다. 외국 티켓팅 해 볼 일이 그들이라고 많았을 리가.

한국 인터파크나 예스 이십사에서 하던 버릇대로, 초시계 띄워 놓고 5시 정각에 딱 클릭한다는 심산이었으면 아예 웨이팅룸 -대기열- 자체를 못 들어갔을 게 뻔했다. 이 미친 티켓팅에서는 대기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대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4 p55

우리는 대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컴퓨터 유튜브로 옛날 오아시스 영상을 보며 노엘 갤러거에게 감탄하고, 리암에게 감탄하고, 그 친구의 끝도 없는 구제 티셔츠 위시리스트를 보면서 이거 전에 나한테 보여준 거 아니니 가지고 있는 거 아니니 하는 질문을 몇 번 더 하고, 가끔 '행복회로'도 돌려주고, 본인에게 티셔츠를 팔았던 외국 친구들은 모두 선예매 당첨됐다는 슬픈 이야기도 듣고, 다 오아시스 공연 영상 보고, 데이먼 알반과 그레이엄 콕슨의 잘생긴 사진도 보고, 그 친구의 끝없는 그 시대 패션 오마주에 신기함을 느끼고, 오아시스와 블러가 우리로 치면 뮤직뱅크나 연말 멜론 뮤직 어워드에 등장하는 걸 본 그 당시의 영국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가 되었다.



나는 그날 나이트 근무였다. 내가 출근하러 가야 할 때쯤엔 상황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대체 왜? 무슨 논리로?

아무튼 표가 있든 없는 상황은 정리되었을 줄 알았다.

차라리 잠이나 잘 걸 그랬지.












5p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눌렀다.

대기가 10만 명 떴다. 잠시 멍청한 생각을 했다. 10만? 아냐, 그래도 웸블리 수용인원이 12만 명이잖아, 괜찮지 않나? 했더니 K가, 그땐  표가 다 나가 있겠지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서서히 직감했다. 망했다고.


사람이 정말 안 빠졌기 때문이다. 과장 없이, 고개를 들면 40명 빠져 있고 12명 빠져 있고 그랬다. 하하.

10시간을 컴퓨터 앞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리 늦어도 아홉 시 사십 분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까.

아, 차라리 나라도 병원에 있는 게 나았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이라도 떠날까 고민했다. 근데 이미 틀려 먹었다. 그리고 병원 외부 인터넷망은 30분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셧다운이 되어 버려서 내가 그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가능성은 없었다. 더해서, 만약 당장 컨설트 회신을 써야 하는 의사나 오늘의 이른 '환자파악'이 정말 간절한 신규 간호사가 옆에 서 있는다면.. 안 비켜줄 수가 없다.

제가 외국 공연을 좀 가야 해서요, 하는 발언을 거기서? 그건 불가능했다.


K는 좀 상황이 나았다. (나았던 걸까?) 이 친구의 경우 맨체스터 평일 공연을 눌렀는데, 6만 명 대기가 떴다. 이건 어쩌면 우리 둘 모두에게 희망고문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6. 이 애매한 숫자. 당분간은 6이라는 숫자가 너무 싫을 것 같다.  26000 같은 숫자도.


어쨌든 정말 1시간에 10000명씩 대기가 빠졌다. 그리고 우리 둘은 뭐, 어쩔 수 없었다. 저기서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그냥 페이지를 안 나가고 사람들이 쭉쭉 줄어들기를 바라며 죽치고 있는 것뿐.



-



굳이 쓰자면.

아 이거 끝났을 때 자리가 남아 있을까 어쩔까 야 플미 붙는 거 사게? 그럼 얼마까지 살 거냐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또 야 너도 가야 한다며 너무 안 줄어드는데? 난 아무리 늦어도 아홉 시 반에는 가야  너 일곱 시에 약속 있다며 - K도 상황이 이럴 거라고 생각 못 한 것이다. 한국 티켓팅처럼 몇 초 안에 승부가 결정되거나, 아무리 기다린다 한들 그렇게 몇 시간이나 갈 줄을 정말 알았을까. - 아냐 좀 늦는다고 하지 뭐 등등. 그러다가 다른 얘기도 하다가 단톡방도 봤다가 이 망할 티켓팅으로 한국인이고 외국인이고 다 같이 난리가 난 각자의 트위터 타임라인도 보, 얼굴도 모르지만 당장 비슷한 심정일 전 세계 인간들이 만든 수많은 '밈짤'을 보며 웃기도 하고, 절망도 하고, 서서히 그렇게 말라 갔다.














8 p40

예매창의 대기 6만에 도달했고 나는 인터넷창을 껐다.

어차피 가야 했다. 다른 데로 다시 들어가 볼까 했지만, 긱스 앤 투어스는 애초에 피씨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로그인 창조차 뜨지 않았다. 이제 바깥에는 티켓마스터 사이트 접속 자체가 안 된다는 사람들이 한가득했고, 이미 우리는 티켓팅 시작 7분이 지난 후에 56만 명이 기다리고 있던 더블린 공연 현황을 보지 않았는가.

해서 그냥 나는 사이트를 나왔다. 늦어도 1시간 후에는 출근하러 가야 했고 K는 이미 약속장소에서 친구들이  꽤나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사실 나라면 여차하면 약속을 깰 것 같기도 했는데, K의 그 덕력과 마음은 감히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마 본인도 사정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


K앞의 대기숫자는 26600 쯤이었다. 우리는 많이 슬펐다. 내가 출근을 안 해도 됐더라면 그냥 그 자리를 좀 지키고 더 기다려라도 볼 수 있으니까. 그 큐가 다 줄어들었을 때 마지막에서도 튕기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했고, 안 튕기고 들어갔다고 해도 자리가 있을지도 절대 미지수였다. 그런데. 그래도.. 지금까지 기다린 게 있어서 너무 슬펐다. 배 고팠다. 많이.

이미 트위터나 단톡에는 티켓을 건진 사람들과 그 건진 티켓을 몇 배로 되팔이 하는 사람들이 한국 해외 가릴 것 없이 나타났다. 날짜도 장소도 상관없으니 양도를 구한다는 사람들도 넘쳐났다. 이미 이 자리에서 우리는 뭔가 더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서히 서 가고 있었. 야 이거 사기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보내보자 하며 K는 영어 멘션도 쳐서 보내기도 하고, 나는 단톡에서 자기들끼리 벌써 날짜 등을 봐서 교환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근에 저렇게 진이 빠지는 며칠이 있었던가?

티켓마스터 창의 그 흑백 재결합 갤러거 형제는 이미 조금 꼴 보기 싫어진 지 오래였다.

내 트위터에 계속 올라오는 하이라이트 멤버들 관련 트윗이 다 생경해 보일 지경이었다. 누르면, 안정감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게 정상 아닐까. 화질조차 다 헐어버린 30년 전 영상을 보면서 감탄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시간으로 팬 SNS에 좋아요 눌러주는 멤버도 있고 노을 지는 한강에서 러닝 중이라는 목격담이 뜨는 멤버도 있다. 아무튼 이 모든 게 비즈니스고 장사라지만, 이렇게까지 피가 마르는 기분이 든 적은 없었던 작금의 상황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원래 덕질은 돈인데, 이건 돈이 있어도 사기인지 아닌지를 심부터 해야 했다.

기껏 공연을 보기 위해 해외 원정나갈 생각까지 한 거면 사실 조금 많이 돌아버린 사람들 아닌가. 얼마나 사기 치기 좋어.





-





중간 K에게 말했다. 그냥.. 다시 해체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냥 다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어때. 그랬더니 걔가 그럼 추모공연인 거야?라고 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추모공연이 아니야. 그냥 애초에 저런 리유니언 같은 건 없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런 뜻이었어. 오아시스는 과거에나 존재하는 거라고. 너와 나 아니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4일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마음이 좀 편할까 했다.


그런 적 없는데 이, 깊이 들여다보면 기괴하다고도 보일 수 있는 K-pop 아이돌 덕질이 '선녀'로 보일 뻔했다. 바깥세상은 정말 험했다. 한화 20만 원이 채 안 되는 티켓을 벌써 70만 원쯤에 올려놓은 페이지가 벌써 올라오고, 수요가 많아서 어쩔 수 없어요~ 하는 티켓마스터 측의 얼탱이 없는 답변을 받았다는 소식도 온라인에서 보였다. 하. 밖은 전쟁터라는 미생 속 대사가 왜 여기서 생각이 났던 건지.

내가 오아시스 티켓팅하다가 덕질에 현타를 느낄 줄이야. 그 자리에서는 인정 안 했지만 현타가 맞다.














사실 동생에게 7시 반쯤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런데 와 줄 수 있냐고. 정말로 '자리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K와 나 둘 다 안 된 거였다. 근처 사는 동기 중 하나는 이브닝 근무 중, 하나는 나랑 나이트 예정이었다.

동생에게 설명을 했더니, 그 사이트가 어딘데, 하며 들어가려고 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니가 지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해야 해.

그리고 그는 내가 설명하는 동안 겁을 먹어버린 모양인지 '아니 그런데 내가 실패하면 어떡해'라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내가 전화로 다 불러줄게,라고 했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사이트 온통 영어뿐이고 몇십 년만의 재결합이 뭐 어쩌고 하니까 당연히 건드리기도 싫고 귀찮지. 나 역시 그 말을 하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

K는 한 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고 나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나이트 근무 하고 네 시간 안 되게 자고 지금 이런 후에 또 근무. 이 모든 건 우리의 선택.  이러고 있는 걸까.














9 p10 

결국 우리는 피씨방 주인에게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다. 티켓 결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자릿값 다, 더 내고 갈 테니 이거 숫자 줄어들면 사진 하나 찍어주실 수 있냐고.

원래는 그냥 숫자 줄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빌고 빌어서 카드 번호 알려드릴 테니 결제까지.. 부탁해 볼까, 했으나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차린 게 그 정도였다. 이미 그 부탁을 한 시점에서 K와 나는 이미 잔뜩 뇌가 익은 진상객 둘이었고 바깥세상에는 '머글들' 뿐이었다. 우리는 불행히도 아직 현실감이 없는 상태.

주인은 난처해했다. 그 정도 티켓팅에다가 이런 얼탱없는 부탁을 하는 성인 둘이면 잘은 몰라도 그들 딴은 대단한 상황인 게 감이 왔겠지. 하지만 그게 어디 그 사람의 '알 바'인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K의 번호를 받아 갔다. 접속 끊기면 못 보내드립니다, 하고. 우리는 무척이나 황송해했다.












9/1  3A

정규 일을 다 끝내고 티켓마스터에 들어갔다. 이미 망한 입장이니 창은 여러 개 띄웠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대기인원이 떴는데 30분 내에 줄긴 했다. 문제는 다 튕겨내거나 이미 SOLD OUT 상태라 뜨는 게 없었단 거였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졸려 죽을 것 같았다. 안 스테이블 했더라면, 일요일로 넘어가는 나이트고, 환자 수가 마침 굉장히 적고, 기적적으로 응급실에서 이렇게 아무도 입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면.. 참. 답이 없었겠지.

정말 하이라이트 덕질하면서도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하긴, 그거야 콘서트 가고 집에서 콘텐츠 보는 게 다잖아. 아니, 근데 이건 뭐가 다르냐고. 하, 참. 다 지나간 90년대 밴드가 내 현생을 이렇게 잡다니.




-




그리고는 오더창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동기가 어, 했다. 그렇게 시선을 옮겼더니 드디어, 거의 열두 시간이 다 된 새벽 세 시 오십 분에야 처음으로 목격한 경기장 현황. 

에든버러. 2초 정도 만히 있었던 것 같다.(열몇 시간 동안 당한 게 있는지라 거기서 환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뭘 눌러도 available 0에서 변하지 않는 숫자. 온통 회색인 것에서 움직이지 않는 화면. 나는 한참이 지나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주인이 다 정해진 공연장에 들어온 거란 걸.













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잔뜩 다. 피곤했다. 나는 그냥 공연 티켓을 구하려 했던 건데, 그리고 '그' 밴드가 재결합한 건 정말 좋은 소식인데,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먹고 자고 일어났더니 7시였다. 9월이었고 해가 다 져 있었다. 이렇게 정말로 하루가 꼴딱 가서 그건 어제의 지난 일이 되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많이 지쳤다.

K에게는 75만 원부터 시작하는 에든버러 공연 티켓 양도글 공유가 와 있었다.(세상은 너무 험하다. 정말)

그리고는, 거의 한국 비공식 팬클럽 지부장이나 다름없는 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봤다. 어제 오후 5시. 그 사람의 대기창에는 1만 명 조금 넘는 숫자가 떠 있었다.



그래서, 야.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거야.라고 생각했다.

양도표에 사기당한 후에 몇 백만 원을 잃어도 타격 없는 재산이나, 미친 사양의 컴퓨터를 깔아 둘 재력이 없어서 (그분께서 얼마나 부자신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말하면 한국 오아시스 1호 팬이나 다름없는데 뭐.. 당연히 돈이 많지 않겠는가) 그랬던 거야. 우리는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게 맞아.라고 한 번 더 론지으면서.

















덕후, 팬이란 뭘까. 덕질에 대해서 관점을 조금 달리하게 됐다. 좋은 쪽으로도 아니고 나쁜 쪽으로도 아니고.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것도 그리 조심할 필요는 없겠다고 느꼈다. 마음이 아프고 지친 것과 별개로,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아시스든 하이라이트든 나는 응원봉을 챙겨 콘서트장으로 향할 때에도, SNS에서 그들의 자취를 보게 될 때도, 생전 생각도 안 한 해외 공연을 위해 계정을 만들 때도 그래도 즐거웠으니까. 정말 힘들긴 했지만. 좋아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 기다림조차 그래도 강렬한 기억이었고 내가 원한 것이었던 어떤 대상.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난 언제 다시 노엘 갤러거를 볼 수 있는 걸까. 아, 참. 아저씨들. 제가 꽤나 좋아하긴 했나 보네요. 잔뜩 미워하고 싶지만 노래는 여전히 너무 좋군요.

이 사랑 앞에 나는 아무런 권력이 없다. 슬프고 행복하다.

이제 이 진 빠지는 기억은 여기까지로 접고 넘어가야지, 뭐.


하지만 어떻게, 정말 제 자리 하나만.. 안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