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안 하던 짓의 시작
달리기 이전의 것들
하얀 얼음 위에서 볼이 붉게 언 사람들이 쨍한 색깔의 패딩을 입은 피디를 향해 뻘건 피를 한 컵 건넨다. 김이 잔뜩 인다. '멱이 따인' 동물은 이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려 하는 상태로 누워 있다. 숨은 끊어졌지만 아직 체온이 식지 않아 화면에는 뜨끈한 수증기가 떠 있다. 빙판, 뒤의 설원, 거무죽죽한 피부의 사람들. 시커멓고 커다란 짐승. 빙하보다 하얗게 빛나는 해. 달릴 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막이 아래에서 데워졌던 피부가 따뜻하고 심장이 뛰고 있음이 온몸으로 번질 때, 코와 얼굴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가울 때. 사람들은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한 채로 나를 지나친다. 아니, 내가 지나친다. 미련도 목표도 없이. 통증, 걱정, 피로, 목표, 또 목표. 실체는 알 수 없으나 껍데기는 남아 머릿속을 달달 굴러다니는 모든 것들을 버릴 것처럼 움직인다. 나는 그렇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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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말하고 싶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달리기에 숙련이 될수록 (달리기라는 것에도 숙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본인에게 편한 자세를 찾게 된다는데.. 그런 것 같긴 하다. 다만 아직도, 여전히 어딘가는 아픈 날이 있다. 정강이, 종아리, 때로 허벅지, 어떤 날은 발목, 이틀 후에는 무릎. 괜찮다. 또 안 괜찮으면 어떤가. 아무튼 그러면 쉬면 된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내 몸은 그랬다. 양껏 먹은 날은 그렇게 먹은 날이라 몸은 무거워도 더 단단하고 모순적이게도, 더 가볍게 달릴 수 있다. 잠을 많이 잔 날은 많이 잔 날이라서 휭휭 더 잘 달릴 수 있다. 반대로, 적게 먹은 날은 다리가 무겁다. 잘 안 나간다. 사람을 많이 태워 버겁게 움직이는 자동차처럼. 적게 잔 날은 매번 똑같은 내 몸이었는데도, 몸뚱이 자체가 힘에 부친다. 지친다는 표현이 딱이다. 라면에 밥 한 그릇을 먹은 날은 그걸 아무리 한 나절은 전에 먹었어도 신물이 올라와 토할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 기분, 이 중요하다. 나는 기분을 위해 뛰기 때문이다.
시작은 아마 어릴 때 엄마가 컵에 넘치도록 따라 준 덴마크 우유였다. 엄마는 머그컵에 일 센티도 채 남기지 않고 우유를 찰랑이게 따라 줬다. 과자는 동생이랑 나눠 먹으라고 하나만 주면서 우유는 그렇게나 많이 주는 게 나는 항상 불만이었다. 어쨌든, 우유팩에는 달리는 소녀였던가 가족이었던가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뒤로 묶은 머리를 한 그 그림처럼 내가 키가 크고 활기찬 어른으로 크기를 바랐을 것이다. 별 뜻 없이 그냥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키를 키우고 싶었을 수도 있고. 여하튼 맛도 없고 차갑기만 한 우유와 달리 그 우유팩의 그림은 참 멋졌다. 나는 달리기를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우유를 먹을 때마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달리기를 못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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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스피드를 내야 하는 모든 종목을 못 했다. 수영 강습 도합 7년을 다닐 동안 나는 한 번도 순서를 지킨 적이 없었다. 아니지, 어떤 의미로는 순서를 지킨 게 맞나? 나는 항상 일찍 가서 첫 번째로 줄을 섰다. 그리고 물에 뛰어들어 아이들과 연이어 헤엄을 쳤다. 내 뒤로 두 번째에 서 있던 아이가 나를 지나쳐 가고, 그리고 세 번째, 조금 후 네 번째, 다섯 번째.. 뭐 그런 식으로 한 명 한 명이 나를 제쳐 가서 강습이 끝날 때쯤에는 나는 다시 첫 번째가 되어 있었다. 조금 많이 상처가 되는 경험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수영을 꽤 오래 다녔다. 주말에도 성인풀에서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 노란 모자와 빨간 모자를 차례로 받았다. 나는 수영이 싫지 않았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달리는 느낌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기가 나를 거부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누군가(라기에는 함께 달렸던 거의 모든 인원들) 나를 지나쳐 달리면 마음만 앞서서 다리를 내딛다가 넘어져서 바지며 손바닥이 자주 까졌다. 안 아픈 척했지만 안 아플 리가 없지. 나는 벗겨진 손바닥이 아파 샤워가 하기 싫었지만 엄마는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바지에 대한 타박을 하며 샤워기로 내 까진 곳들을 거의 '물청소'했다. 넘어진 기억은 가지각색이다. 깡시골 초등학교의 한낮 운동장 모래에서 나는 건조한 냄새와 성당 유치원 잔디밭의 이슬, 성모마리아상 앞의 찬 공기.
아. 종목은 다르지만, 신도시 호수공원의 잘 깔린 인도 위에서 앞바퀴째 전동자전거와 함께 뒤집혔을 때 손이 다 까진 적도 있다. 그날의 기억은 원래 그 공원에서 먹으려 했던 서브웨이 샐러드의 싸우전 아일랜드 드레싱 맛이다. 연고와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손등과 그걸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본인이 더 난리던 동행인의 호들갑.
요는, 나는 운동이나 운동 비슷한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인 호감이다. 내 인생의 사건들이 그렇게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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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1학기에 나는 뒤에서 두 번째 줄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다른 자리에 앉았다면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 든다. 아무튼 그 자리는 수업 때는 딴생각을 하고, 야간자율학습 때는 딴짓을 하기 딱 좋았다. 수업이나 급우들이나 내 미래나 성적 같은 것은 참 지루하고 다 지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깥에는 낮밤과 계절이 알아서 부지런히도 찾아왔다. 2학년은 꼭대기에서 두 번째 층을 썼다. 나름 고층이라 달에 따라 색이 변하는 나무와 해가 막 졌을 때의 하늘 색깔 같은 것이 참 잘 보였다. 창문 바로 옆 자리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나는 공부와 관련 없는 책을 읽었다. 한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 걸리니까, 어릴 때 번역서를 읽었던, 또는 난도가 높지 않은 영문 원서를 읽었다. 그중 하나가 '수요일의 전쟁'.
거기서 주인공은 달리기를 한다. 책의 목차는 월별로 나열되어 있다. 학기가 시작되고, 햇볕이 강해지고, 공기가 시원해지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잔뜩 내리는 등 시간의 흐름이 드러난다. 그 온도와 바람의 변화를 느끼며 홀링 후드후드가 달린다. 나도 달리고 싶었다. 잘 뛰지도 못하는 주제에 다 던져놓고 달리고 싶었다. 수학 문제, 국어 수행평가, 문송합니다, 영어 본문 외우기 뭐 그런 걸 다 버리고 뛰고 싶었다. 무서워서 떠나고 싶지는 않았고, 그냥 달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그 맥락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에 극지방이나 야생동물들이 나오는 책을 읽었다. 그중 하나가 '시튼 동물기'였다.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했다. 나는, 60년대 미국 중학교의 걱정 많지만 섬세하고 온순한 성품의 부잣집 아들인 홀링 후드후드가 되어 뛰었고, 마침내 자유를 얻어 죽음으로부터의 달음박질이 아닌, 진짜 뜀박질을 할 수 있게 된 멧토끼 워호스처럼 뛰었다. 기억상으로는 10월이나 11월이었을 것이다. 목이 칼칼했고, 구석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주황색이었다. 기록은 기억 안 난다. 괜찮았으면 그걸 먼저 떠올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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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었다. 7월인가, 8월인가. 한강공원에서 한 멤버가 러닝을 하는 뒷모습 사진이 올라왔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등을 꼿꼿이 세운 그가 저녁노을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그 멤버인 것을 대체 어떻게 알아봤는지 신기할 정도로 멀리서 당겨 찍은 사진이었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노을. 이목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까만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쓴 뒷모습으로 달리는 사람. 부산 광안리에서 해변가 인도를 어슬렁거렸을 때 혼자 고무바닥을 통통 딛는 것처럼 달려 지나치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때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불편한 옷을 입었고, 배가 잔뜩 부른 상태라서 도무지 뛰려야 뛸 수가 없었다. 잘 보이려는 옷차림을 하고 맛있는 걸 먹었고 자유롭지 못했다. 재밌지 않은가. 답답했다. 그는 참 자유로워 보였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한껏 뽐내고 즐거움을 어떻게든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지나쳐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기를 잘해 본 적이 없고 그랬기에 혼자 즐겼던 적도 없다. 헬스장을 결제해서 러닝머신을 강박처럼 뛴 적은 몇 번 있지만, 바깥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 바깥 달리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위에 쓰인 것처럼 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공부 외에 모든 것에서 오만 풍미를 느끼는 고등학생이었다는 맥락을 잊으면 안 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동경만 하고 있었다. 그 아이돌 멤버의 사진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어떻게 바깥에서 취미로 뛸 수가 있지. 그것조차도 너무너무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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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생기면, 내가 그에게 어떻게라도 덜 뒤처지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하는 퇴행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고 뭘 한다고 해서 절대 그 무엇도 어떻게든 따라갈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된다. '손민수'인 것이다. 달리기 손민수? 쉽지 않다. 하지만 마침 그룹의 다른 멤버는 팬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운동을 권했다. 하도 영상이나 사진을 보다 보니 그의 얼굴을 보면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운동을 안 하니까. 일주일에 1회 30분 이상 땀이 나는 운동을 몇 번이나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0번, 이 아닌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왜 내가 그 잘생긴 얼굴과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서 안 한 숙제를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는 학생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게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다. 나는 마음 편하게 덕질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헬스장을 등록했다. 더럽게 비쌌다. 비가 올 때도 저길 들어가 뛰고야 말겠다고, 미친 듯한 기온은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습도가 돌아버린 수준이었던 9월에 계좌이체를 하며 결심했다. 할부도 안 되는 45만 원짜리 손민수였다.
이 시점, 어쩌다 보니 참 부끄럽게도 나는 그 헬스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쓰고 나니 정말 더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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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본 결과 나는 꽤 잡념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키 좀 키워 보겠다고 엄마아빠가 데려간 한의원에서는 나를 앉혀 두고 '생각이 많으니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일찍 재우시고 잘 먹이시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당신들 키의 평균값을 웬만해서는 아이가 넘을 것 같지 않으니 어지간하면 체념하고 키워 보라는 말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말이 기억이 난다. 뭐,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쓴다고 다 글이 아니지만, 나는 무엇을 어떻게 쓰든 항상 남들보다 많이 썼다.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머리에 가득한 생각을 그렇게 비워내다 보면 두 장 내라고 한 걸 대여섯 장 채워가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내 자의식과 이 작은 삶에 대한 고민과 미련이 큰 것 같아 나는 자주 부끄러웠고 싫었다.
아무튼 나는 내가 몸을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구석에 눕거나 앉아만 있으면 한 개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 또한 내가 쓸데없이 생각만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는 만큼 잘 알았다. 헬스장을 나오면서는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나는 45만 원어치의 숙제를 구입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일단 그날도 그다음 날도 가지 못했다.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긴 했다. 쳐야 할 시험이 있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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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더 며칠이 지나 추석 연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병원에서 근무할 때 신으라고 지급했으나 한 번도 신지 않은 운동화를 신고, 면은 좋았지만 사이즈를 잘못 골라 너무 큰 티셔츠를 입고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하늘 색깔이 예뻤다. 학교가 막 끝나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집에 가던 초등학생 때처럼 팔다리를 내둘렀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의 노래를 들으며 뛰었다. 그린 데이와 오아시스와 폴아웃보이와 리버틴스의 곡들을 들으며 달렸다.
다리가 아팠고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어떤 짐도 없이, 생각도 없이 움직이기만 하는 상태가 정말 자유로웠다.
그게 9월 중순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