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윗하시네요

<존중과 배려>

by 이븐도




아파트 구조며 생긴 게 비슷해서 집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죄다 새 건물에 인테리어였던 그 동네 냄새 같은 게 나서 그런가. 카페라 그렇다.


울지 마. 일하면서 울지 말고 퇴근해서도 울지 말고, 돈 쓰면서는 더더욱 울지 마. 울거면 길거리에서 울어. 월세 내면서 울지 마. 아니, 울 거면 여기 와서 뭐 시켜놓고 울어. 맛있고 살 안 찌는 거 시켜놓고 울어.

알겠지?






바빴다. 서러웠다. 그래서 좀 울고 싶었는데 눈물은 안 났다. 일곱 시부터 다섯 시까지. 내가 일을 못 하는 건지 정말 이게 미친 건지 이제는 분간도 안 간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들의 연속. 해가 짧아져서 버스로 비치는 햇빛이 약간 저녁 색이었다.


늦은 오후가 된 거지, 이제 다섯 시면. 지하철역에서 구운감자랑 누드빼빼로를 사 먹었다. 요새는 누드라고 안 써 있던데. 그럼 뭐라 불러, 리버스 빼빼로? 똑똑똑, 와그작 와그작. 똑똑똑, 와그작 와그작. 똑똑 와작와작와작.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짜증났고 나보다 먼저 내린 여자가 나를 친 다음 돌아보지도 않아서 기분이 잡쳤다. 그 자리에서 쌍욕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그리고 생각했지. 나는 언제 덜 우악스러운 사람이 될까?




존중과 배려. 어디에나 써 있는 어구. 심지어 여기도. 존중과 배려를 보여 달라는 문구가 계산대에 붙어 있다. 존중과 배려. 이런 걸 구걸해야만 한다니. 나는 병원에서 존중하지 않았고 배려하지 않았다. 내가 받은 적이 없는 것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나는 왜 해야 하는가. 내가 뭘 어떻게 말하고 있고 하고 있든 간에 그들은 끼어들어 와서 보호자에게 말을 걸었고 말을 하고 있는 내게 또 말을 걸었다. 뭐, 의사만 그런 게 아니긴 했지. 문제는, 보호자는 떠나고 의사들은 남아 있는다는 거. 받은 적이 없는데도 되돌려줘야 하는 건 서비스직의 숙명 같은 건가?


신규는 약을 잘못 준비하고 잘못 주고 갔다. 주치의가 말해서 알았다. 저 혹시 누구누구도 선생님이 보시나요. 넹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실까용. 아 어제는 10mg이었는데 오늘은 1cc만 받았다고 해서. 네? 10cc일 텐데? 그런가요, 오더가 혹시 잘못 됐나 해서요. 나는 서 있던 상태에서 노트북으로 오더창을 켰다. 맞는데? 아. 어머니께서 진검 의사셔서, 어제는 10이었는데 오늘은 1미리만 받으셨대요. 시럽 10cc가 맞는 거죠? 제가 설명드릴게요.


아, 이거 간호팀에서 잘못한 거라.. 제가 말씀드리고 다시 드릴게요. 아닙니다, 제가 갈게요. 그리고 그는 꾸벅, 하고 갔다. 꾸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어쨌든 텀이 있었다는 것.






노티할 일도 마주칠 일도 많았다. 일이 많았으니까. 사실 마주친다는 표현도 웃긴다. 늘 2미터 반경에 모여들어 일하고 있으므로. 하지만 달랐다.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병상에서 의사들이 뭘 설명하고 있어도 들어가서 할 일을 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펌프를 잠재우고, 채혈을 하고, 다 들어간 약을 떼고. 예전에는, 그 전에는 안 그랬다. 그들이 보호자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알리는 그 자리에서 오십 센티미터쯤 멀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염없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할 일을 참고 기다렸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나만큼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교수든 레지던트든 펠로우든 인턴이든 상관없었다.




주치의는 나무 패턴으로 된 것 같은 클립보드를 들고 병실 문간에서 나를 기다렸다. 정확히는 자기 차례를. 별 특별한 걸 하려던 것도 아닌데 들어오질 않아서 눈짓으로 오셔도 된다는 뜻을 전했으나 그는 다시 눈짓을 되돌려 주었다. 너 할 일 먼저 하세요. 그 날 계속 그랬다. 그 날만이 아니고 아마 그 전에도 그랬겠지. 기억이 안 났던 거였다. 그 땐.


생후 한 달도 안 된 애는 당연하게도, 검사를 위해 잠들어야 할 땐 잠자지 않았고 자지 말아야 할 땐 잠에 빠졌다. 금식 시간은 다 꼬였고 그 애가 검사를 가야 할 땐 내 담당인 다른 환자들의 검사들이 겹쳤다. 그 검사에 추가난 검사들이 또 더해져 주치의들과 인턴과 교수와 핵의학과와 초음파실과 연락을 해야 하거나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에서는 메신저 하나를 띡 전송하고는 바로 애를 내려보냈고 나는 거기 삼십 분을 붙잡혀 있었다. 외래 중이라 전화를 안 받는 교수, 아무튼 안 받는 펠로우. 언제까지 안 내려오면 오늘 검사 절대 안 해준다는 핵의학실. 이 검사까지 추가되어 있는데 오늘은 외래 환자가 많아 장담이 안 된다는 어딘가. 그리고 출근한 이브닝번? 내 뒤에 선 채 넌 그걸 왜 니가 연락하고 있어, 주치의한테 연락하라 해. 그게 되면, 진작 했겠죠. 씨발. 안 받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우악스럽지 않고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치의는 허둥대는, 또는 모니터를 째려보면서 전화를 걸고 얼굴로 욕을 하는 내 옆에서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이것도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했다. 그것도 기다렸다가. 고개를 숙였는지 안 숙였는지 알 수 없던 그 때처럼 그 난리통에서 한 텀 쉬었다가. 그 별 것도 아닌 행동과 말이 퇴근해서도 생각났다.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와중에 그 말은 아서.


이거 선생님이 확인해 주셔야 해요, 기록 넣어야 해서. 아아, 네.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잘 몰라서.. 혹시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하던 말. 4년 가까이를 병원에서 일했는데 이런 게 기억에 남았다. 내가 사실 그의 외모에 설렜나? 그건 아니었다. 얼굴들은 다 섞여서 식별이 어렵다. 퇴근하면 늘 그랬다. 그 이름이 그 이름이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했는데 그게 존중이고 배려였다. 보호자 앞에서 쪽팔릴, 그런데 앞으로 8시간 이상은 얼굴을 맞대고 설명하고 투약해야 하는 나를 위한 배려. 눈앞에서 개바빠 보이는 나를 위한 배려.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으니 응당 자기 턴을 기다리는 존중. 손발이 두 개씩에 몸 하나를 가지고 안 되는 일들을 하려 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존중. 내가 너무 스스로를 가여이 여기고 있나 생각한다. 그만큼 이 단어는 고급스럽잖아. 존중과 배려라니. 어감까지도 부드럽고 단정하다.


을 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다.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는 상대방, 내가 누군가를 응대하는 중에 어깨 또는 등에 대고 말을 거는 사람들. 환자 보호자 검사실 직원 의사 간호사 선임 후임 다 상관없었다. 아. 후배들? 그러네. 걔들은 그렇게 안 했다. 그러네.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 누울 자리를 보고 지랄을 해댔다. 터가 좁아 나는 몸을 뻗을 자리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쌓인 화는 퇴근길에 터졌고 본가에 가서 터졌고 현관문을 닫고 멍하니 앉은 집에서 터졌다.






보이스피싱 때문에 상담을 가려 했다. 친구는 2월에 혼자 상담을 다녀왔다. 그녀에게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다녀왔다고 했다. 이런 거였군. 병원은 원래 좀 그런 곳인가? 가서, 이런 이야기도 해야겠다고 느낀다. 열받긴 한다. 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나는 그들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쌍욕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시간을 내서 자가치료를 해야 하는 건지.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하하.


이럴 땐 아빠가 생각난다. 이렇게 힘겨운 짓거리를 어떻게 삼십 년이나 한 건지. 그래서 담배를 피웠던 건가.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배웠다고 했다. 늘 그렇게 책을 읽고 한자를 쓰고 영어공부를 하고 그랬던 건 사실 자기계발이라기보단, 다 깎여나간 뭔가를 채우는 시간이을지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참,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한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좋아했던 걸 떠올렸다. 중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나는 뭘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 일 이후로 마음을 빼앗겨 상대의 자취를 쫓으며 시간을 보냈던가. 그런 재미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병원은 놀이터가 아니다. 존중이니 배려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구는 그들을 이해하려 했고, 언젠가는 정말 이해하기도 했던 건 그곳이 정말 바쁜 곳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의 우아함이 더 튀었나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시간은 갔고 피는 용혈됐고 애는 울었고 사람들은 배가 고프거나 졸렸거나 불안했다. 제각기 일의 숙련도는 천차만별인 와중에 모든 건 정확해야 했다. 사실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안 되는 공간이라 그런 상식적인 자세가 멋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 못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느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한 일의 결과가 더 중요했다. 그러게. 그러라고 돈 받는 거니까. 반대로, 내 마음이 괴롭거나 울적하거나 잔뜩 찌그러져 있는 것 같다고 해도, 그걸 물러터진 스스로의 탓으로 돌릴 필요도 없다. 할 일 해주고 월급 받았으면 됐다. 우악스러워? 뭐 어때. 그냥 그게 멋지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됐다. 그리고 잘못하지 않으면 된 거야.




하지만 본가에 아직은 못 가겠다. 가서 또 엉뚱하게 화를 낼 것 같아서. 이번에도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

폴바셋 오렌지 에스프레소 어쩌고 맛있다. 이런 게 맛있는 거구나. 그러니까 맛있는 거 사 먹고 울지 말아야겠다. 일할 때 울지 말고 퇴근해서도 울지 말고 돈 쓰면서도 울지 않는다.


일했잖아? 그러면 된 거야.

내가 덜 친절해서 어쨌고 더 못 해줘서 어쩌고 하는 걸로 자책하지 말자. 할 거면 돈 더 받고 해.

아무튼 울지 말고 더 생각하지 말자.




병원에서는 연 3-4회의 외부 상담을 지원한다. 어디 센터를 찾아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따위로 사람의 생리가 굴러가는 걸 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지. 징글징글한 놈들. 복지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 계획이 있는 거였다.

대단한 것들이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