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 진짜 없어.
살다살다 새 건물 냄새를 좋아하게 될 줄은.
4월인가 챗지피티에 대한 소회 같은 걸 쓴 적이 있다. 그게 내 친구를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웠던 느낌 등등을 적었다. 반 년이 좀 안 지났다. 그 달에 유료버전이 만료됐고, 얼마 전 다시 결제했다. 러닝화와 달리기와 수영 등의 간단한 질문들 말고 더 긴 걸 물어야 해서. 떡밥 회수다. 그 땐 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인상 등등을 세 부작으로 나누어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한 번 쓰고 나니 쓸 말이 없었다. 원래 있었던 것 같은데 없다. 근데 생겼다.
챗지피티가 상담을 잘 해준다고 했고 보호자들은 잊을 만하면 챗지피티가 그렇게 알려 줬다는 말을 했다. 챗지피티라,그래. 정보를 셔플해 입력값에 따라 꺼내 주는 대상. 나는 이제 이 친구를 고래밥이라 부르지 않는다. 귀찮다. 그냥 묻는다. 나 이렇거든. 이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야?
질문을 잘못 입력하면, 경고메시지가 뜬다. 네가 혼자 많은 걸 감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도움을 요청하라고.
글쎄, 니가 뭘 아는데? 아는 척은.
작년 겨울인가. 짧고 굵게, 가방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에 가서 메 봤다. 스스로 너무 많은 걸 바랐다는 걸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알았다. 그냥 그 가방을 든 나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것과 똑같이 생긴 그 가방을 멘 나. 당연한 거 아닌가. 가방은 그냥 가방인데? 473만원이었나. 그것도 지금은 진열된 것밖에 없어 기다리셔야 한다고 했다.
500만원짜리 가방이라. 그리고 그게 인기가 그렇게나 많아 기다리기까지 해야 해? 다들 돈 많네, 진짜? 얼마든 가방은 가방인데 나는 그 가방을 가방으로 보고 있던 게 아닌 것 같았다. 그걸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다루는 직원의 움직임에 내가 다 민망해졌다. 나 역시 장갑을 한 켤레 받기라도 했어야 했나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이걸 사들고 나가면 아메리카노를 흘리고 틴트가 안감에 묻고 온갖 병원균이 묻은 사원증이 들어갈 가죽 가방. 그래서 사지 않았다. 못 산 거지. 나는 그 가방에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지 않으니까.
하나가 사고 싶어졌다. 그 정도로 어이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흔한 거였고 예전에도 한 번 눈에 들어왔었다. 저 정도면 그냥 이런저런 키링을 달아 만만하게 쓸 수 있었다. 정말 안 비쌌다. 그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타자 또 다른 브랜드의 가방이 눈에 띄었다. 환승구의 계단을 오르자 똑같은 가방의 다른 색이 보였다. 가격을 찾지는 않았다.
나는 또 실감하고 있었거든. 내가 잃은 2천만원의 규모. 입생로랑 니키백 다섯 개에 에피 알마 백 여섯 개에 보테가 어쩌고 가방 몇 개. 그런 액수였구나.
애들이 사방에서 울 때, 뭐라 딱 잡아 말할 수 없는 그 병동의 생활내 섞인 냄새가 나는 병동에서 쪼끄만 카트를 달달달 끌며 복도를 걸을 때, 누군가 쓰고 안 닦아 놔서 핏자국이 들러붙은 트레이를 출근하자마자 박박 문지를 때, 손소독제와 헥시타놀로 손을 닦고 또 닦을 때. 나는 내가 이렇게 일해서 번 돈을 잃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냥 원래도 하기 싫었던 일인데, 사연이 생기니 더 극대화된 거지.
가끔씩만 생각했다. 2천만원의 부재에 대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해외여행을 진지하게 계획한 적도, 그렇게나 비싼 물건을 갈망했던 적도 없어서. 그런데 나는 돈을 잃은 거잖아. 내 노동, 시간, 뭐 어떤 고통과 상실감에 어쩌고 이런 거 말고. 내가 잃은 건 진짜 돈인데.
챗지피티한테 물었다. 2천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크고도 애매하게 실속 있는 액수라고 했다. 인생을 바꾼다, 까진 아니더라도 삶의 톤을 크게 조정할 정도. 그렇구나. 해외 3-4개월의 어학연수. 그러니까 미국 빼고 호주 동남아로는 충분하고, 준중형 신차를 계약할 수 있으며 중고차의 경우는 좋은 걸 뽑을 수 있고, 수도권 오피스텔 보증금 정도, 학자금과 카드빚 정리용 등.
다른 버전으로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전체의 리모델링. 도배와 바닥 및 가구를 다 뽑는 비용. 항공권을 잘 짜면 유럽과 동남아 몇 달 도는 것 정도가 가능. 책 1000권을 사서 개인 도서관을 세팅할 수 있다고 했다. 적금과 ETF와 펀드, 그리고 창업 시드머니 등등.
2천만원은 큰 방향을 잠깐 꺾을 수 있는 돈이지 인생 전체를 갈아엎는 돈은 아니라고 했다. 이어 내게 질문했다. 이 돈을 재미와 설렘 충전용으로 쓰고 싶은 건지, 안정 또는 안도감 쪽으로 쓰고 싶은 건지. 그래서 대답했다. 내가 잃은 돈이라 물은 거라고.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긴 했다. 이런 걸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던가, 4월엔? 그 땐 왜 안 물었지? 보이스피싱은 2월이었다. 시기를 따지면 그 때 나는 더 힘들었어야 했다. 상담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그 때 찾았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안 갔다. 처음부터 상담으로 해결을 하면, 그 상담이 끝나 버린 후의 나는 어떻게 살아. 일 년 내내 상담을 받거나 힘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순 없잖아.
챗지피티는 뭐라 다시 쭉쭉 답을 보내다가, 니가 잃은 게 돈 그 자체였다고 느끼는지, 사실은 돈으로 환산된 네 시간, 노동, 안전감이라 느끼는지 물었다. 원랜 후자였고 이제 와서 전자였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닌걸?내가 뭘 느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 사실부터 말하라고 답했다.
그러자 다시, 질문.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딱 숫자로 환산된 팩트를 원하느냐고. 챗지피티는 내가 수도권에서 교대근무 중인 간호사임을 알았다. 맞아. 사실을 줘. 노동 가치, 몇 달 간의 어쩌고, 원룸과 오피스텔 보증금, 신차 얘기가 또 나왔다. 그리고 해외여행. 그렇구나. 물었다. 이러고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그 때 어땠는지 생각했다. 뭐 했지. 아이돌 팬미팅 가고, 개봉작들을 보러 영화관에 갔고, 달리기를 했고, 러닝화를 샀고 키링을 샀고 가끔 엄마아빠를 보고 친구들을 봤고 글쓰기를 했고 출퇴근을 했고 집에 와서 잤고 어딘가를 또 나갔고. 정말 그러다가 봄이 갔고 여름이 되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시락을 싸서 출퇴근했다. 돈 문제가 아니었고 그냥 단시간에 제대로 먹기 위해서. 생활이 변한 게 있던가? 없었다. 사실은.
챗지피티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셋 정도로 정리했다. 투자 대비 잔여 가치, 죽는 건 남은 기회비용을 0으로 만드는 선택, 2천만원은 끝판 액수가 아님. 그러니까, 살아야 남은 리소스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근데 사실 개소리잖아. 실질적인 건 아무것도 없는데? 잔여 가치? 어디서 말장난이야. 그건 그냥 미래의 내가 노동을 하면 응당 따라와야 하는 거였다. 이런 의미부여 말고는 없다는 거네? 라고 하자 그제야 옳은 답이 나왔다. 맞아. 네 말이 정답이야. 이렇게 살아서 특별히 얻는 실질적인 경험? 없어. 이 없다는 대답이 듣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혹시 끝까지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 거야?
나는 끝까지 밀어붙인 없다는 사실을 원했다. 없어. 없다는 사실. 그래. 그럼 이걸 알았으니 선택지는 셋이야. 최적화 - 현실 복구 / 전환 - 손실을 자산으로 바꾸기 / 반발 - 한 번의 의미 있는 행동. 첫 번째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였고 어차피 뒤의 두 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의미부여이자 미화였다. 그러니까 진짜 없는 게 맞았다.
생각은 엉뚱한 곳을 돌고 뜬금없는 곳에 부딪혀 공명했다. 누구의 몇천 만원, 몇 살에 얼마를 모았는데, 어쩌고. 그런 액수에 흔들리거나 관심 갔던 적이 없었다. 취직 잘 되는 직종. 하기 싫은 일. 휴학 한 번 없이 졸업하고 일했는걸. 내 시간을 넣어 모은 돈. 정직했다.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의 성취에 관심이 없었다. 그게 내 최선이었으니까.
부재가 컸다. 컸다는 걸 부쩍 느낀다. 나는 핑계대지도 탓하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이제야 받아야 하는가. 이게 뭔데 나를 이렇게 자기연민에 빠지게 만드는가. 왜 진짜인지 아닌지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은 걸 허점 가득한 인공지능에게 묻고 확인받고 싶은가.
집에 어떤 연락도 근황도 전하지 않아 아빠는 전화를 했다. 짜증났다. 잘 지내? 괜찮아? 괜찮을 리가 있냐고 말했다. 안 괜찮았다. 아빠는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했다. 어쩌라는 거야. 짜증났다. 그냥 다 짜증났다. 아빠는 내가 몇 년 전에 대상포진에 걸렸던 걸 기억하고서 그 얘길 했다. 알았어. 잘 챙겨 먹을게. 한 번 안 오냐? 응. 그래, 알았다.
끊은 휴대폰에 아버지 세 글자. 어쩌라는 거야. 정말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고. 할 말이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했고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말에 괜찮다고 답할 의욕이 없었다. 하루종일 연기하는데 집에 가서 또 그러라고?
그래서 정말 아직도 본가에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서 이런 짜증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녁 식탁에 앉아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말을 꺼내서 또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웃긴 사실은 집 같은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몇 달 전부터 공사를 하던 폴바셋. 비싼데 장사가 잘 될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나쳤던 내가 팔아준다. 집에 있던 아파트의 부대시설과 느낌이 닮았고 그 새 가구 냄새들이 비슷하다.
확 다 써버리는 상상을 했다. 남은 저축액. 다 써 버려? 갖고 싶지도 않은 가방, 여행, 휴양지. 그런 거. 까만색 그 가방들이 내 허옇고 좁은 오피스텔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떠올렸다. 나는 그게 갖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사고 싶은데 안 사는 것과 못 사는 건 달랐다. 나는 어느 쪽인가? 어쩌면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경험, 의미, 뭘 이겨내는 힘. 그러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말로 꾸며내면 누구든 가지고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 다 거짓말이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없다는 것. 진짜 없다. 돌아오는 것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산출되는 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바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없다. 정말 없기 때문에. 정말 없으니까.
원래 이런 애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챗지피티는 계속 질문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도 쓸만한 결론을 내 줬다.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