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갤러거 덮고
이브닝 때는 그 다음 날의 준비를 한다. 예를 들어 오늘이 19일이면, 20일의 준비. 모든 건 20일 기준이다. 그 날짜를 볼 때마다 조금씩 놀란다. 벌써, 이렇게 됐다고? 하루 차이인데 더 그런 날이 있다. 그렇다. 20일이다. 9월 20일. 쓰면서도 구라 같다. 시간이 왜 이리 빠르니.
4년 전 다른 병원에서도 신기한 점이었다. 왜 인턴들은 자기가 쓴 쓰레기를 자기가 치우지 않는가. 그 때의 나는 당시의 인턴들보다 어렸으므로, 그냥 그 나이대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했다. 실제로 별로 차이도 안 났건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해서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쓰고 침상에 내버려둔 장갑 껍데기와 드레싱 세트와 포셉과 뭔가가 묻은 소독솜이나 미끈한 젤이 들러붙은 관 같은 것들을 모아서 버리는 건 나였으니까. 어차피 내가 해야 하니까. 거기 누워 있는 환자한테 치우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녀는 나한테 그 사람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다. 알려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기밀도 아니었고, 여차하면 보호자가 그냥 그 사람의 사원증에 쓰인 이름을 본 거라 쳐도 그만이니까. 그 의사가 뭐 어떤 욕을 먹든 내 알 바도 아니었고 실제로 욕을 먹지도 않을 거였다. 하지만 알려줄 수 없었다. 그 방은 1인실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병실에서 숨죽인 채 있을 커튼 너머 너댓 명의 보호자들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게 싫었다.
그러잖아도 낮부터 보호자가 하도 소리를 질러 대고 니들이 뭔데 어쩌고, 하는 난리를 쳐서 구경거리가 쏠쏠했을 텐데. 비 오는 무료한 한밤중, 얼마나 재밌어. 지랄하는 부모, 엉터리로 해 놓고 토낀 의사, 곤란해 하는 것 같은 간호사. 하루종일 엉엉대면서 우는 콧줄이 어쩌고 하는 애. 가엾지만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고 흥미로운 일들.
인턴 이름 따위 불어도 그만 안 불어도 그만. 다만 지쳤다. 이제야 자각이 들었다. 우리는, 의사와 간호사는 절대 한 팀이 아닌데, 이렇게 보호자 앞에 설 때면 한 병원 아래 식구로 묶이는구나. 그들은 나를 전문가로 보지 않지만 딴엔 전문가인 그들과 하나로 퉁쳐 나를 세워놓고 의사 앞에서나 할 말을 잔뜩 했다. 이 정도 규모 병원에서, 이렇게 어린 애를, 그런 생초보가 보는 게 말이 돼요?
되지 왜 안 돼요, 라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나 똑똑하신 분이 간호사랑 의사는 왜 구별 못 하는지. 왜 저한테 지랄하세요, 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냥 할 수 있는 말들을 했다. 표정도 머릿속 단어들도 어떻게든 부드럽게 내놓느라 대가리가 아팠다. 안 그래도 안 돌아가는데. 열 시간을 물만 마시면서 일하면 그렇게 된다. 나는 내 표정에서 체념 같은 게 안 보이도록 꽤나 애를 썼다.
병원 규모? 싫으면 딴 데로 가시면 될 일이었다. 더 작거나 더 큰 데로. 아니면 뭐 원장실 문이라도 두드리던가. 오만 헛점들을 나열해 봐야 아무런 힘도 없을 나한테 이러는 게 아니라. 하긴, 그걸 분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았겠지. 당신 자식은 그렇게나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초짜 의사가 감히 볼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애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걸. 참, 애가 하루이틀 아픈 것도 아니고. 엄마는 나한테, 이름을 알려주면 난처하게 되시냐고 했다. 그 사람이 뭐가 되든 나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는 또 말할 수 없었다.
주치의와 교수는 오후 내내 떠들었다. 애 아빠가 교수 이름이 어쩌니 뭔 대학병원이 이러니 한 걸 면전에서 들은 게 충격이 꽤 컸는지 뒷담화를 끊임없이 했다. 이어, 앞으로는 이런 게 흔할 거라는 말이 배경처럼 깔리는 그 소리가 웃겼다. 그게, 그렇게나 충격인가? 바깥으로 빼 놓으니 느껴졌다. 아, 그런 크고 작은 그들의 지랄이 나한테는 너무 일상이었구나.
데이번은 그래도 기분이 덜 나쁜 상태로 인계를 주었다. 그 중증도와 일이 꼬이는 수준과 인간들 하나하나의 개 같음을 겪고서는 약간 맛이 간 것 같았지만, 꽤 괜찮아 보였다. 울분은 없어 보였거든. 아마 그 보호자가 간호사에게만이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공평하게 지랄했기 때문에. 드문 일이었다.
나는 절대로 애를 낳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싫다는 같잖은 이유와 근거를 조목조목 혼자서 잘도 생각했던 십 년 전과 다르지만 똑같이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아픈 애가 나올지 모르고, 멀쩡히 나와도 안 아플지는 정말 미지수라는 걸 쓸데없이 깊게 느껴서. 그러니까 그런 망한 뽑기를 구태여 하고 싶을 이유가 없잖아.
한 달 반을 조금 남긴 이곳에서의 근무를 디데이처럼 은근히 세며 속으로 진저리친다. 별 것도 아닌 애를 너무나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진상이 되고 유별난 인간들이 된 부모들이 싫고 괴롭다. 차라리 그들이 다 악당이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그 애들에 붙들린 포로 같았다. 내 눈엔 그랬다.
보호자는, 튜브에서 피가 나오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 말을 안 하고, 바지에 다 흐르게 해 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난장판을 해 놓고선 나몰라라 가는 게 맞는 거냐고 물었다. 물었나? 화를 낸 거지. 그러나 대상이 틀렸다. 그 인턴이 아닌 나한테 그랬으니까. 나는 그들과 한 편이 아닌데. 놀랍다. 내가 받는 월급에,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는 값도 있는 건지.
인턴 또는 레지던트 1년차들이 거진 내 또래가 되었을 지금도 신기하다. 그들은 왜 쓰레기를 사람이 있는 침대에 그대로 놔두고 가는가. 아무리 사람을 기계처럼 치료해 내는 게 병원의 목적이고 기능이라지만, 정말 신기하다. 그들은 그들이 떠난 자리에 멀쩡히 눈을 뜨고 귀를 열어두고 입을 연 채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 같거든.
그 머리에, 그 노력으로 거기 선 그들의 눈에 그게 안 보일 리가 없는데. 결국 사람들이 불쾌해 하는 건 그런 거였다. 무례한 것. 어지럽히고 양해를 구하지 않는 것. 한 마디 말을 대충 한 후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사과의 뜻을 내비치지 않는 것.
레지던트는, 인턴들이 다 그렇죠, 라고 했다. 그런지 아닌지는 알 바가 아니었으나 중간에서 말을 순화하고 걸러내 전하느라 상당히 귀찮았고 머리가 아팠다. 기운이 없었고 더 할 말도 없었다.
간호사실에, 무슨 의료소송인지 사건에 관련된 탄원서에 서명을 해 달란 서류가 돌아다녔다.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거든. 그러든 말든, 소아청소년과와 의료계와 대한민국 신생아 어쩌고의 미래가.. 그래서 뭐?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그 서류를 여기로 돌린 저의가 궁금했다. 이쪽이 그 정도로 바보인가. 이건 뭐, 자본가 편 드는 프롤레타리아도 아니고. 수간호사조차도 그랬다고 했다. 만약 간호부에 이런 일 생기면 의사들이 이런 거 해 줄까, 라고. 수쌤치고 드물게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래서 드라마가 싫다. 어떤 메디컬 드라마들은 정말 너무 싫었다. 이제껏 내가 본 병원은, 정말로 면피에 면피를 거듭하는 공간이라서. 피하고 피하다 욕을 먹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인턴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레지던트가 대신 방패를 쳐 줬으니까. 눈물겨운 연대의식이다. 눈물. 눈물? 나는 진짜로 울었다. 비가 많이 왔다. 택시를 불러 문을 닫고 앉으니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무슨 사연이 있나 생각했다. 울음이 터지는 것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는데 못 찾았다. 중학교쯤 가서 아저씨는 뭘 뒤적이더니 휴지를 줬다. 나중에 보니 물티슈였다. 긴팔을 입고 있어서 그냥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아저씨는, 물티슈를 도로 앞자리로 건네면서 고맙다고 하는 나를 고개를 틀어 지그시 봤다. 가서는 참지 말고 울어요. 참으로 드라마 같은 순간이고 대사였다. 편의점에 가려 했는데, 그 말에 그쳤던 울음이 더 나서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대성통곡하지는 않았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정도로는 안 나왔나 봐. 퇴근길에도, 출근길에도, 일할 때도 안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만에 깨졌다. 역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던 거였다. 왜 울었을까. 좀 서러웠나. 안 먹어도 되는 욕을 먹은 거라서? 지랄 같은 밥벌이다.
나에게는 워커가 열 켤레 넘게 있다. 일부러 비올 때도 신으려고 에나멜 씌운 가죽인 것도 샀었다. 나는 유행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 레인부츠라. 레인부츠. 장화. 이제야 좀 살까 생각한다. 목 긴 신발이 없어서 그걸 또 사? 생각했는데. 뭐, 비가 많이 오잖아. 가죽 상해.
작년인가, 퇴근하고 쇼핑몰에서 50만원 가까이를 한 번에 쓴 적 있다. 사온 것들을 바닥에 펼쳐 놓고 내가 뭘 한 건가 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했었다. 그런데 그리 자책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그날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내일 집 가는 애 혈뇨 없으면 그냥 컨펌 없이 퇴원시키라고 했었다. 그들 소변보다 내 소변을 더 챙겨야 할지도 몰랐다.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이제는 진짜 시원해져서 밤에는 다시 바람막이를 걸치고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어제인가는,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는데 Half the world away가 나왔다. 왜 이건 리암에게 노래를 안 시키고 본인이 했는지 새삼 놀라웠다. 약간 쌀쌀한 공기에 싸구려 담요를 한 장 덮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았다. 에드시런은 신보를 냈다. 핑크색.
십 년도 더 전 이맘때쯤 들은 주황색 앨범은 컬쳐쇼크였다. 주황 초록 파랑 빨강 노랑 분홍. 중간 중간 흰색 검은색 등. 프리덤, 좋았다. 랜덤으로 돌려서 나온 노래였는데 좋았다. 그래서 다시 안 들었다.
몇 달 전인가도 딱 이렇게 비가 왕창 올 때에 퇴근이 너무 늦어 택시를 탔다. 그 때 차 안에서는 노엘 갤러거 노래를 들었다. 이번엔 아무것도 안 들었다. 우느라 그냥 앉아 있었다. 지금은 듣는다. 오늘도 그냥 그런 날들의 하나니까. 십 년 전이나, 4년 전이나. 오늘이나. 시간은 빠르고 어떤 위로는 쉽다.
진짜로 장화 사러 가야지. 내일 눈 뜨자마자 가야지.
십 년 전의 내가 생각하던 모양새로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