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고 니가 나야

#lifewithout왕자님

by 이븐도





뉴!이!스!트!떠블!유!! 웨얼! 유! 앳!






이틀 내내 출근 전에 바랐던 건 딱 하나. 제발, 제발 투약사고 안 나게 해 주세요. 두 갠가? 그 애가, 내가 안 치게 해주세요. 아니면 세 개? 그 애와 나와 우리 둘의 시너지에서 비롯된 모든 투약사고가 안 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났는지 안 났는지는 모른다. 이래저래 이제는 병원 전산 어플을 다시 깔 때가 됐다.


퇴근 후 카톡들에 답장을 하고 있자니 날이 10월로 넘어가 있었다. 셔틀버스 아저씨는 미친 것처럼 달려 버스로 뛰어들어오는 나를 보고서, 아휴 천천히 오셔도 안 도망가요 했다. 몇 년 전 다른 사람은 1분 더 일찍 출발하거나 코앞에서 쫓아가도 그냥 가버리기도 했는데. 스윗했다. 내내 스윗함의 시옷 자도 없을 시간을 보내고 그 말을 들으니 무슨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이 많이많이 시원해졌다. 어제는 러닝 전에 위층에 넣어둔 바람막이를 꺼냈다. 나이트를 빼면 이곳에서의 근무가 열 개도 안 남았다. 일부러 연휴 때 근무를 하겠다고 원티드를 찍었다. 아마 그렇게나 바쁜 날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하이라이트 초창기 활동 영상들을 봤다. 17-18년도의 음악방송들. 아니, 그게 벌써 8년이나 됐다니. 말이 안 됐다. 20살이던 내가 28살?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가 거의 10년 전 활동이라고? 그리고 뜨는 추천영상. 뉴이스트. 무대 위의 멤버들이 동작을 바꾸거나 대형을 조절하려 몸을 돌릴 때마다 촤라라 변하는 무대의상들. 가장 예쁘고 멋진 포인트들을 더 자르고 붙여놓은 교차편집 영상. 의문이 드는 거지. 아, 나 이 때 뭐 했지. 뉴이스트 안 좋아하고? 진짜 뭐했어, 나? 이 왕자님들 영상 안 보고 뭐 했냐고.






신입을 두고 일을 잘 한다 못 한다를 논하는 건 정말 의미가 없는 말 같았다. 어차피 다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잘한다 못한다를 따져. 이제 알파벳 어떻게 읽는지 겨우 외운 애한테 수능영어 하라면 해? 빈칸 채우기 풀으라 하면 풀겠냐고, 못 풀지. 내가 수험생일 땐 그랬다. 두 문제 정도가 어려운 게 나왔다. 그 두 문제를 맞추려 그런 것들만 모아놓은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

그런 나도 미치게 허덕인다. 요새도 그런다. 근데 올해 졸업해서 6월에 유니폼 입은 애한테 이런 걸 하라니. 말이 안 됐다. 그러나 되게 해야 했다. 돈 받고 일해주러 왔으면 그러라고 했다. 어디서? 병원에서. 어떻게 해? 별 수 있나. 투약사고가 빵빵 터지는 거지. 이 약 저 사람한테 주고, 두 배로 주고, 안 주고, 또 안 주고.




신규는 일을 못 했다.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였다. 일을 한다기보단 액팅과 오더와 보호자 요청과 전화와 콜벨의 파도에서 물을 꾸르륵 다 먹은 채로 온몸이 쓸려다니는 중이었다. 이틀간 내가 빽을 봐준 후 당장 다음날부터는 정말 혼자 일해야 했다. 양일 중 첫 번째의 환장할 이브닝을 보낸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고뇌에 빠졌다. 내일도 이렇게 내가 일을 다 해줘야 하나.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정말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뭐든 일이 추가로 떨어지면 무조건 엉덩이부터 떼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아니아니, 잠깐만. 이거 확인했어요? 하라고 했죠. 왜 하라는 대로 안 해요? 갔다가 다시 또 빠뜨린 거 가지러 오고 보호자들이 해 달란 거 다 해주다가 시간 다 보낼 거예요?를 되풀이했다. 작은 일을 그렇게 중구남방으로 하는 방식으로는 언제든 큰일이 터진다구. 그것도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아버렸을 때.






보호자는 그녀의 이름을 틀리게 말하며 오래 되신 분이냐고 에둘러 물었다. 손을 떠셔서 불안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어쨌든 그녀와 나는 똑같은 복장으로 일했다. 그녀도 엄연히 간호사였고 한 명의 직원이었다. 내가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나 했던 걸 말했다. 선생님, 안전도 안전인데, 이거 다 쇼예요. 보호자들 다 보고 있거든요. 선생님이 그렇게 초짜 티 다 내면 보호자들 분명히 나와서 얘기해요. 선생님 누구냐고. 모르겠으면, 못 하겠으면 나와서 다른 사람 불러요. 선생님이 알아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티 내지 마세요, 알겠어요? 그녀는 우물우물 대답은 못 하고 눈만 깔았다. 아휴.



나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나 같았어서. 우리는 쌍으로 열 시간 이상 아무것도 못 먹었다. 배 안 고파요? 그녀는 또 눈을 깔고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대답을 하는 것 같았는데 안 들렸다. 냉장고에서 삼각김밥을 꺼내와서 먹으라고 앞에 놔 줬는데 마스크도 안 내렸다. 왜 안 내려? 면도 안 하고 왔어? 라고 농담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나 역시 기운이 요만큼도 없었다. 점심은 먹었어요? 했더니 또 얼버무렸다. 먹었다는 거야 안 먹었다는 거야, 하니 안 먹었다고 했다.

병원에 몇 시에 와요 물으니 열한 시라고 했다. 원래 이브닝 근무 시작 시간은 세 시다. 나는 보통 두 시에서 두 시 이십 분 정도에 병동에 도착했다. 네 시간이나 일찍 와서 뭐 해요? 라고는 안 물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친구와 새로 생긴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지난 주에 회사를 그만뒀다. 표면적으로는 퇴사였으나 그녀는 인생 전반을 지탱해 오던 기둥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것, 실제로 해본 그 좋아하는 일. 본인에게 맞는 직무. 할 수 있는 선택. 어떻게 보든 등신같은 인간들과 근무환경 같은 필수적인 변수들.


날도 좋은데 바깥으로 나다니지 못하고 집에서만 있었다던 이유를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얘기를 듣다, 그럼 엄청 부자인 남편 만나서 그 사람이 다 해준다면 뭐 할래? 같은 질문을 하려다 말았다. 버스 정류장이고 사옥들이고 온갖 곳이 거대한 광고판이었다. 수지랑 김우빈이 새로 찍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오만 데서 홍보하고 있었다. 다 이루어질 지니.

다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존재, 어릴 때의 동화나 만화나 엄마 옆에서 보던 드라마에는 늘 구세주가 등장했는데. 엄청난 외모와 재력과 상대를 향한 미친 사랑까지 입고서. 지니든 그런 사랑이든 남자든 이제 그런 이야기를 현실의 신화로라도 믿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진행형이었다. 도망은 그냥 지하철에 앉아서 보는 유튜브 속 반짝이는 아이돌 영상 같은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가격은 절대 안 단순할 가구들이 많은 카페였다. 좋았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청계천에 있는 치킨집에 갔다. 비비큐 루프탑에서 치킨을 먹고 또 이야기를 하고 별 것도 아닌 것들에 신나게 웃었다. 옆자리의 남자들이 그저 그런 톤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한 명이 별안간 와하핳 하고 커다랗게 웃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면서 알았다. 내가 저랬겠군. 거울 치료네? 했더니 그녀는 그 말에 삼십 초는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사실 내가 급발진해서 웃을 때마다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몇 년을 봤는데도. 야, 진작 말하지. 이렇게 웃지 말고. 그녀는 자기객관화가 어쩌고 그러면서 더 웃었다. 아무튼 웃어서 좋았다.


서촌 북촌은 몰라도 광화문까지는 함께 그렇게까지 자주 오지 않았다. 그녀는 조정석을 좋아했다. 20년도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처음 나왔을 때 그녀가 거기서 한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슬의생 3을 촬영 중이라는 걸 어디서 봤다. 그것조차 4년이나 됐다니.

날씨가 그 날처럼 선선했다. SOL. 서울 아웃도어 라이브러리. 청계천변을 따라 의자와 작은 테이블과 랜턴과 책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이런 게 생기다니. 8년 내내 주기적으로 왔었지만 이런 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거 다 깔고 치우고 또 관리하고 품이 꽤 들겠다 생각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정말 책을 읽기도 하고 우리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그랬다. 멋졌다.






그녀와 걷거나 앉아 있는 동안 중간중간 생각했다. 우리 애기 투약에러 안 쳤으려나. 안 칠래야 안 쳤을 수가 없었을 것 같았는데 정말 뭐, 안 쳤기를 바랐다. 지니든 왕자님이든 여력이 된다면야 그쪽으로 좀 보내 주고 싶었다.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는 일. 사실은 있기야 하겠지만 이 개같은 병원놈들은 절대 안 해줄 일. 스스로 쥐어야 하는 인생. 알아서 감당해야 하는 선택. 오전 11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전산을 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해도 오늘내일 모두 크게 달라질 것 없을 역량.






집에 가서 뭐 좀 먹어요? 했더니 또 대답을 우물우물. 그러다가 대상포진 걸려요. 그래도 출근해야 돼. 너 손해야, 라고 해줬다. 어차피 본인이 안 겪으면 심각성은 죽어도 모르겠지. 나는 그녀와 함께한 첫날 간신히 막차를 타고 택시 신세를 면했다. 편의점에서 초코과자를 샀다. 단백질 쿠키 같은 걸로는 당이 떨어져 아릿한 머리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한 통 2800원 초코다이제 말고 3개짜리에 2200원인 누텔라 비스킷. 항상 궁금했었다. 맛있었다. 좋았던 점? 초코는 비스킷 안에 필링으로 들어있는 탓에 손에 묻지 않는다는 것. 먹고 달리기를 했다. 다음날 출근길에 그걸 또 샀다.




이틀차. 신규와 나는 역시나 바빴고 다행히도 아마 투약에러는 안 쳤다. 친구와 노닥거리다가, 아마 출근했을 동기들에게 야 우리 팀 인계 넘어오는 거 있냐 하고 단톡에 물었더니 답이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 확실하지는 않은 거지. 나와 그녀의 합작 이틀간. 아직까지 확인된 게 없는 것일 수도, 진짜 없는 것일 수도. 나의 신규는 애도 아니건만 과자 봉지를 다 까서 손소독제 바른 손으로 일일이 입에 넣어주니 먹었다. 아니, 머리가 돌아가요? 했더니 고맙습니다 했다.


그리고 내가 이틀간 내내 열 번은 들은 말. 저 때문에.. 어쩌고. 뭐라 말하고 싶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으나 언제까지 대답해 줘, 그런 걸. 사실 니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데. 이건 병원 잘못이라고. 십새끼들 잘못. 그것까지 예전의 나 같았다. 닥쳐올 본인 미래나 걱정하지 응당 월급 받고 할 일 하는 나한테 폐 끼치고 있다는 생각까지 여유롭게 하는 그 신규가.






친구에게도 누텔라 비스킷을 맛보여 줬다. 맛있었다. 그녀에게는 오아시스 내한 티켓을 전달했고 아무튼 별 일이 없다면 우리는 3주 후에 그 커다란 경기장에서, 1400명쯤을 앞에 두고 서 있을 것이다. 티켓에는 티켓팅 날짜가 적혀 있었다. 언제 일 년 가냐, 오긴 할까 했던 게 진짜 오고 있다.


2025년 10월 21일. 진짜 2025년이고 10월이다. 연휴가 길고 나한테는 장기오프가 남아 있으며 아마 이제 이렇게까지 많은 애들을 어떻게든 볼 일은 더는 없겠지. 알량한 이 짬으로 선배 노릇 하는 것도 정말 며칠 안 남은 거였다. 나이트에게 인계를 주고 이래저래 할 일을 한 후 신규는 울었다. 울지 마세요, 했을 때는 이미 울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서너 달 전인가, 병동에 처음 등장해 여느 때처럼 바빠 죽겠는 나를 따라다닌 날, 짜증과 울분이 머리끝까지 난 나는 억하심정에 물었다. 어때요, 보니까? 그 때 걔는 그랬었다. 애들이 귀여워요. 여길 공손히 손 모은 채 드나드는 실습생 애들과 한 치도 다를 게 없는 대답. 그렇구나. 더 할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도 없었고.




남은 일은 제쳐두고, 탈의실로 데리고 들어와 간호학과 왜 왔어요 물으니 소아과 간호사가 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 신규 중 누구 하나가 그랬다는 것 같았는데 얘였다니. 하필 이런 최약체의 꿈이었다니. 쯧. 꼰대인듯 아닌듯 분명 꼰대일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니 앞에서나 이렇게 날아다니는 것 같은 나도 그냥 너 같았다고. 이브닝이면 열한 시에 오고 나이트면 다섯 시에 가고 그러고도 제일 집에 늦게 가고 못 가고 그랬다 등등. 그렇다고 관둘 것도 아니잖아? 아산 세브 지원해서 갈래요? 아니면 로컬? 더 힘들어요. 괜찮아. 투약 에러만 안 치면 돼요, 알겠죠. 사실은 그 때와 별 다를 것도 없는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신규는 그러고도 집으로 안 갔다. 지하에서 전산을 보다 간다고 했다.






친구와 헤어져 보다 만 무대영상들을 또 봤다. 진짜 뭐했지, 2018년의 나. 대학교 2학년 때의 나. 내 맘대로 신청한 교양 듣고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울적한 채로 괜히 광화문까지 나와 책이나 보고 어슬렁거리면서 멍이나 때렸었다. 뉴이스트를 몰랐어서 그랬네. 차라리 덕질이라도 하지 그랬어. 어떤 루트와도 같았다.


노래를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몇 달 몇 년을 돌다가 무대 영상을 보게 되고 무대 아래 영상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지. 응원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뉴! 이! 스! 트! 팔과 손 사이로 얼굴을 숨길 듯 보여주는 안무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선선해진 날씨, 지구가 돌다가 다시 상반기의 어느 때처럼 공기가 시원해진 지금. 열기가 빠져나가 텅 빈 밤을 달리며 여전히 듣는 노래들. 그 노래를 무대에서는 이렇게 구현했구나. 왕자님들이잖아. 근데 없었다.

뉴이스트 더블유든 그냥 뉴이스트든 그들은 전설이 되어 있었다. 해체? 22년? 뭔, 씨. 난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다 끝나 있던 판. 참.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멋있는데, 왜?





꿈 같은 것들은, 그러니까 그 예전의 꿈이나 환상 같은 건 정말 다 깨진 지 오래였다. 없어진 건 아니었다. 이제 현실을 알았으니 그 조각을 모아서 다시 쌓으면 됐다. 구현 가능한 버전으로. 이직이든, 인생 플랜이든, 소아과 간호사의 꿈이든.

인생의 어느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겠냐는 흔한 질문. 어디서 어떻게 마주쳐도 한 번도 답해본 적 없는 질문. 돌아가고 싶은 날 같은 건 늘 없었다. 하이라이트 콘서트 애프터 토크 영상을 보다가였다. 아. 나 이제 있구나, 생겼구나.


2월 20일로 돌아가서 내일, 그 전화를 받지 말라고 나한테 말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지. 왕자님도 없고 왕자님 같은 아이돌 그룹도 없는 것처럼. 보이스피싱을 없던 일로 해 줄 구세주 같은 건 없고 그냥 내가 움직여 가는 내 인생만 있는 것처럼. 꿈, 환상, 목표. 뭐라고 부르든 형태만 다르고 본질은 비슷한 그 많은 게 요동쳐 흩날리고 있었다.




안 올 것 같던 날들이 왔고, 지난 주처럼 느껴지는 일들로부터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시간이 가서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어서 차라리 좋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기로 하는 거지.


어쨌든 가을의 써늘한 공기를 마시면서 그 우주 왕자님들 노래를 들으며 뛰는 것 같은 거. 당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