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days

젊고 건강한 날들

by 이븐도





허무는 영혼의 피 냄새.






사실은 허무가 아니고 피곤이다. 나도 뭐라는지 모르겠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진짜 너무 피곤하다. 근데 연휴가 지나가고 있잖아.


역시 사람은 맘을 곱게 먹어야 한다. 어차피 정해진 일수를 일해야 한다면 쉬운 날 일하는 게 백번 낫다고. 연휴 내내 뇌 빼고 앉아만 있으려던 심보로 스케줄을 신청했는데, 뇌는 무슨 잠을 못 자서 내 영혼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차라리 다행이다. 혼이 나가는 대신 투약에러는 안 쳤다구. 당연히 안 쳐야 하는 거지만.





신규는 성인 팀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봐야 했다. 그걸 근무 시작 5분 전에 알았다. 어쨌은 남들은 넷플릭스 보고 루미큐브 하고 얌전히 앉아 피씨카톡을 할 때 나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면서 항암제와 기타등등 주사제를 달고 또 달고 또 달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도 몸무게도 어쩌면 종양 크기도 비슷한 탓에 그 용량마저 유사한 카보플라틴과 파클리탁셀을 달고 메스나를 달고 어쩌고를 달고 떼다가 퇴근했다.


이제는 그들이 그렇게 가엾지는 않다. 예전에는 좀 가여웠나봐. 역시 좀 자주 노출돼야 한다. 유행을 받아들이는 데 한참 늦는 내가 이제야 요새 애들이 입는 레이스 바지 같은 걸 산 것처럼. 막상 입어보니 그렇게 짧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았다. 진작 좀 사서 입을걸.




항암조제실도 할 일이 없는지 약을 엄청 빨리 조제해서 올려 줬다. 이브닝이 출근했을 때 아직 달아야 할 게 많이 남아 있으면 빡칠 테니 올라온 대로 최대한 안 밀리게 달고 또 달았다. 미치게 바쁘지도 견딜 만하게 바쁘지도 않았다. 그냥 할 일이 계속 있었다. 할 만했단 뜻이다. 그래도 싫다고.

나는 멍하니 여덟 시간 때우다가 오려고 했단 말이야. 하지만 하루종일은 걸릴 항암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평일처럼 검사실이나 응급실에서 재촉해 대는 것도 아니고 추가오더가 잔뜩 나는 것도 아닌 날. 빨간 날. 무념무상으로 앉아 있다가는 일이 밀리는 날. 전적으로 나 하나 때문에. 어제 오늘의 일은 그런 일이었다. 나 혼자 건너는 일. 연휴가 끝난 뒤로 미룰 만큼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일.






암에 걸린 사람은 두 종류 같았다. 인지가 명확하거나, 아니거나. 당연한 건가. 명확한 아주머니들이었다. 1년 반 전 2교대 부서에서 없는 노동력까지 다 짜내서 일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있다. 눈썹 문신, 두건인지 모자인지 알 수 없는 그것. 왜인지 좀더 또렷해 보이는 눈빛들. 그리고 수첩 또는 공책. 그들은 노트들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대개 정갈했다. 투약을 해야 하는데 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의 것.


내가 거기서 알아볼 수 있는 건 헤모글로빈을 위시한 알파벳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달 약의 순서와 용량을 모두 다 기억했다. 6차 항암인가 그랬으니까 외우실 때도 됐나 했는데, 그랬다기보단 그냥 그게 당장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아마도.




옆자리의 그녀들은 오전 새에 친해져서 내내 이야기를 했다. 어디 요양병원은 간식을 어쩌고, 나는 이게 전이가 어디까지 됐는데 저쩌고. 나란히 앉은 그녀들에게 똑같은 항암제를 차례로 다는 사이에도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의 사정은 사실 이 분보다는 낫군. 그 자리에는 포장을 언뜻 봤을 때 버섯인지 대왕 구렁이인지 알 수 없는 게 인쇄된 한약 박스같은 게 있었다. 몇 달 전에 어디 누구 교수님한테 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좋아했는데 4월에 그 교수를 다시 1층에서 봤다고 했다. 반가웠는지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했는데 본인이 성질을 냈다고 했다.


아니, 괜찮다고 하셨는데 암이래잖아요. 이게 어떻게 괜찮아요, 선생님. 그러고 그 교수 양반이 뭐라고 했다는지는 못 들었다. 내가. 한 명은 아마 남색 두건, 한 명은 아마 핑크색이었나 자주색이었나.






둘 중 한 사람의 정맥주사는 아랫팔 밑에 있었다. 그러니까 팔을 뒤틀어야 보이는 거기. 에어가 차서 수액세트를 다 바꿔야 했다. 피가 하얀 병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마추어같이. 스테이션에서는 나를 파티에 초대해 놓은 루미큐브 팀원들이 히히덕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소아는 안 움직이는 게 관건이었으나 이들은 주사가 꽂힌 살의 탄성이 관건이었다. 낯설었다.

애들은 단지 꽉 붙들고 더더 꽉 눌러서 붙들면 됐으니까. 그러나 항암제에 지쳐 버린 이 어른들의 나이든 몸은 그게 아니었다. 그 쳐지고 얕은 살이 수액세트 끄트머리를 못 감당한 탓에, 자꾸 말랑한 정맥 카테터가 아래로 빠져나오려 했다. 안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애나 어른이나 안 될 일이지. 하지만 애들은 미치게 징징거릴 뿐 말을 못 했다. 어른들만큼은 못 했다고. 이래저래 시끄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어르신 말을 뚝 자르기는 좀 그렇잖아?


하지만 그들은 정말 끊임없이 말했다. 저번에는 여기를 어떻게 찌르고 뭘 맞았는데 어땠고 몇 차를 하니까 주사를 잡을 데가 없어서 어쩌고. 하여간 소중한 정맥주사였다. 빼뜨리면 안 된다고. 진짜 혈관 없는데. 중요한 약 맞아야 하는 걸 그르쳐 버리면 쓰나.




이브닝번이 출근하기 전에, 그러니까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항암제 자체를 모두 다 달아놓자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자리로는 딸인 것 같은 여자가 찾아왔다. 딱히 슬프지 않은데 그렇다고 즐겁지는 않을 대화를 나누다 내게 물었다. 몇 차까지 하기로 했는데 왜 다음번에 재입원이냐. 피검사 결과 나왔느냐. 이 약은 원래 이렇게까지만 하기로 했는데 이건 항암 선생님한테 물어야 하냐 주치의한테 물어야 하냐.


나는 항암 선생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마 전담간호사일 거라고 추측했다. 전담도 주치의도 어차피 교수한테 확인을 받을 테니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이 주치의한테 물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지. 병원은 목요일까지 먹통이며 사실상 금요일에도 알 수 있는 건 없다는 거. 검사실도 빨간 날에는 논다. 응급검사실에서 받아주는 항목은 정해져 있었다. 종양표지자 같은 고급 항목은 당연히 접수가 안 됐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실상 다음 주까지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상의 내용을 얘기했다. 그들은 대충 알아들었으나 그래도 찝찝해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한창 영화관을 그래도 자주 가던 때, 현대해상 광고를 엄청 봤다. 이정재가 나왔다. 그러니까 인생의 시기를 거칠 때마다 토픽이 달라질 당신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같은 내용이었다. 아마도.

지금 나의 토픽? 22년에 해체한 뉴이스트, 그들의 교차편집 영상을 미친 퀄리티로 말아놓은 어느 금손 유튜버는 이제 탈덕했을까 하는 것. 그리고 오늘의 날씨 등등.

그들의 토픽? 노트에 빽빽히 적힌 각종 검사 수치들과 용어들과 성경 말씀 같은 것들. 알 수 없지만 당신들 선에서는 끝까지 알아내려 한 것들. 그런 게 슬프지는 않았다. 당사자들이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인 상태일랑은 모르고 울기만 하는 애들 대신 심연을 끌어안은 것처럼 침울한 소아과 보호자들만큼 체념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그래서 좀 상상해보게 됐다. 나는 어떡할까. 나를 견디게 할 것들은 뭘까, 뭐여야 할까. 죽고 싶을까? 저 사람들이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한 동기는 암에 걸리면 그냥 항암 안 하고 죽을 거라고 했다. 어떻게? 라고 했더니 몰라 걍 디질래, 했다. 뭐 이런저런 걸 많이 본 탓이겠지. 이해했다. 존엄은 꽤 사치스러운 단어잖아. 뇌신경센터, 신약, 저녁이나 아침 프로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데 효능이 있다고 광고해대는 식재료들, 요양병원과 대학병원과 완화치료 그리고 잡곡밥, 진밥, 지난 번에는 이쪽에 잡은 주사,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뒤집어쓰는 두꺼운 모자, 남들은 장갑을 끼고 만지는 저 약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광경과 느낌. 어느 때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 당연히 그 때도 무대영상이나 보면서 좋아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허무는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거라고 했다. 살아 있으면 응당 따라오는 거라는 거지.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내가 지은 말이 아니고 책에 나온 어구다. 나는 그 책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 나오는 구상도, 가 인상 깊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었는데 그건 지금도 기억이 났다.


고운 여자가 시체가 되어 부패하고 뼈로 돌아가 결국 길바닥에 흔적도 거의 남지 않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림으로 남긴 것. 일본 거였나. 몇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냥 병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던 그 피를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역한 냄새다. 소독제 묻은 티슈로 두 번에 걸쳐 닦아야 한다. 끈덕끈덕하고 자국이 남는 뻘건 그것. 강렬한 인상을 남긴단 말이지? 내가 이렇게나 초보입니다, 하는 뜻이 된다고.




나는 허무하지는 않았다. 허무한 인간이 그렇게나 신발이며 열쇠고리에 돈을 써댔을 리가. 나는 녹색 신발이 좋았다. 녹색 레인부츠를 샀다. 그런데 같은 걸로 까만색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퇴근하고 판교에 갔는데 겨울 부츠만 다 들여놨다고 했다. 안 되지. 나는 그걸 오늘 사려고 했는걸?


잠실까지 갔다. 사람들이 미치게 많고 더워서 걷는데도 졸려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샀다. 내일은 엄마 아빠가 온다고 했다. 데이 - 이브로 꺾이는 근무. 코빼기도 안 비치는 속 좁은 딸래미에게 아마 추석 음식을 먹이고 쌀쌀한 날씨에 골병이 들지 않게 해줄 수많은 옷가지들을 가져다 주러. 파카는, 하는 카톡에 그냥 코트 짧은 것들만, 했더니 병원 관두나? 했다.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아.




난 못 그만둬. 이것 말고는 쓸모가 없는 인간이란 말이야. 보라색 장갑을 낀 손으로 다 들어간 항암제 껍데기를 정리하고 트레이를 박박 닦으면서 생각했다. 그럼, 나는, 나에게는 저런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돌아보게 될 건 뭘까. 내가 어떤 치료든 처치든 받으면서까지 인생을 쥐려고 하는 이유는 뭐여야 할까. 허무? 인생이 허무해?


맞겠지. 맞아. 맞는데, 그래도 저 할머니들 보라고. 색색깔의 두건을 쓰고 어느 병원이며 치료가 더 나을지, 머리카락 한 톨만큼이나 나아지면 다행일 수치에 그렇게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저 아주머니들을 봐. 작년의 어떤 환자는 이거 끝나고 막국수 먹으러 가야 하니까 빨리 끝내달라고 말했다. 웃으면서. 그 자리 뒤 창가에 연산홍인지 철쭉인지가 엄청 피어 있었다. 4월. 친구와의 약속이라고 했었다. 쿨한 옷차림이던 기억이 났다.






나는 오늘 꽤 깔롱지게 입고 출근했다. 잔뜩 샀으니 뽕 뽑아야지. 비싼 신발들. 그렇게 갔던 쇼핑몰. 아닌 척 이런저런 데를 거닐어 보기는 커녕 정말 일 분이라도 빨리 나오고 싶어서 매장에 들려 목적 달성만 하고 나왔다. 그렇게 뭔가를 사올 때마다 갖는 의문이다. 대체 이럴 거면 왜 이 돈 들여서 사는 걸까. 왜, 아예 그냥 집에서도 신고 있지? 원래 좀 밖에 오래오래 나다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어떡해. 피곤해 죽겠다고. 진짜 졸리다니까? 사실 그러면 안 왔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안 할 순 없었어. 오늘의 내 할 일이었어. 항암을 달고 퇴원을 보내고 아주머니들 주사를 보전해 준 것처럼.




지하도 전체의 공기가 텁텁하고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은 잠실역에서 강남역으로 환승하면 신분당선의 그 빨간 표지가 보인다. 운임이 독보적으로 비싼 탓에 예전에는 그게 보이면 무조건 열이 받았다. 병원이 있는 동네로 돌아간다는 뜻도 되어서 그렇기도 했다. 그 때는 그럴 때였다.


지금은? 그 노선에 있는 나의 집, 은 아니고 월세방이 있는 곳. 내가 뛰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란과 토마토와 고구마를 사고 쿠팡에서 뭔가를 배송받고 분리수거를 하는 곳. 집이 있는 곳이 되어버린 그 킹받는 빨간 노선. 빨간색. 헌터 부츠의 시뻘겋고 커다란 종이가방. 오늘의 핏자국. 전조 같은 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 11월부터는 이런 식으로 예상치도 못한 난관 같은 것들 사이에서 구르게 되겠구나. 10월, 11월.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눈알이 아파서 못 뛴다. 언제던가, 한겨울이었을 때 이파리가 딱 하나 남아 있던 그 단풍나무 끄트머리가 벌써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열받았다. 난 아직 못 놀았는데. 가을이 벌써 가고 있으면 안 된다고, 이 연휴처럼.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가로등 아래에서 보면 얕은 눈이 오는 것처럼 보였다. 눈이 오면 길이 얼어서 달리기를 못 한다. 나는 올겨울에 눈싸움을 할 것이다. 십오 분 이상. 상대를 찾아 놓고 눈이 풍족하게 오면 맞짱을 뜨자고 약조할 것이다.


수선생은 나한테 부서이동 후 성인 환자들을 보게 되면 다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넵 알겠습니다, 했다. 가족? 말은 쉽죠 생각했다. 근데 차라리 가족인 게 나았다. 병원에 있는 모든 이들은 어느 시점의 내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었다. 애들이야, 뭐. 걱정은 부모 몫이니 어쩔 수 없는 거고. 내가 거꾸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갈 건 아니잖아?





내 버전의 현대해상 광고 속 뇌구조 같은 것. 사실은 그 생각을 한다. 내일 엄마아빠를 보면 보고 싶었다고 할까, 말까. 고민을 좀 했는데, 아무래도 가닥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분명 나를 보자마자 머리 꼬라지가 그게 뭐냐, 라고 할 거거든, 엄마는. 아니면, 옷이 그거밖에 없냐? 라든가. 뭐 입지.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보고 싶긴 하니까. 참, 보고 싶다는 건 뭘까. 보고 싶다는 거지. 신기한 관계다. 가족이란 건.


나한텐 온통 나뿐이니까. 새 신발, 아이돌 영상, 항암, 내일 내가 인계를 줄 사람. 버려야 할 쓰레기. 오늘의 달리기, 책 속 구절, 이외에 또 못한 일들. 대전에서 용인까지? 가깝지는 않은데, 나랑은 두 시간쯤 있을 건데. 신기한 관계다. 그들의 버전에는 내가 몇 퍼센트쯤일까.




아마.. 70프로? 사실 그보다 적었으면 좋겠다. 나한테는 내가 더 중요해서. 생은 유한하고 나는 아직은 건강하단 말이야.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행 같은 걸 보면서 남인지 나인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입한 후 시간을 또 내야 한다고.

뭘 하고 싶지, 눈싸움 말고?

일단 소풍. 맨날 뛰던 거기서 도시락 먹기.

손동운 전우치도 보러 가야 한다고.


아무튼 엄마가 그 말들을 안 하면, 나도 말하긴 해야지.

보고 싶었다고. 정말 그 두 가지 말을 안 하면.



근데.. 할듯. 하겠지, 뭐.